나를 ‘나’로 살게 해 준 당신에게
모든 것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 나와는 정반대인 당신과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지도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장밋빛 꿈을 향해 열리던 시절에 서로를 만나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의 당신과 나를 오롯이 지켜보며 함께 하다 보니 오늘이 왔습니다. 푸릇푸릇한 캠퍼스 커플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번갈아 새치 염색을 하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중년의 부부가 되었네요.
스물일곱, 스물여덟. 우리가 오랜 연인에서 신혼부부가 된 나이입니다. 요즘 식으로 치자면 만으로 스물다섯, 스물여섯 살이었네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한창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을 두 청춘은 서로의 무엇을 믿고 그렇게 덜컥 결혼이란 걸 했을까요. 겁도 없이. 부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서로를 위해 무엇을 나누고, 기다리고, 희생해야 하는 것인지 제대로 고민해 볼 생각도 해보지 못한 채, 퇴근하고 각자의 집으로 따로따로 돌아가는 게 싫어 결혼을 했습니다. 같은 집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고, 같이 눈을 뜨고, 함께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는 삶. 그러다 일주일에 몇 번은 퇴근길에 만나 둘이 장을 봐온 재료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구워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저녁밥을 먹는 삶. 주말이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산책길에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한 주의 피로를 녹여내는 삶. 그런 평범하고 소박하다 믿었던 드라마 속 신혼부부의 일상을 막연히 꿈꾸며 스물여섯의 나는 설레는 새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신혼은 어땠나요. 사회 초년생인 당신과 결혼과 동시에 야심 차게 이직을 한 나는 같이 잠들고, 눈 뜨며 다정한 인사를 주고받을 틈도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을 만회하려 주말이면 특별한 브런치 데이트를 마련하기도 하고, 날 잡아 교외로 놀러 나가기도 했지만 주중이면 또다시 야근과 잔업의 파도에 휩쓸려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죠. 가끔 나 혼자 일찍 퇴근한 날에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에 불을 켜고 들어갈 때면, 무거운 적막과 고요에 압도당할 것 같아 현관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온 집안의 형광등을 다 켜놓고는 했습니다. 이게 맞나? 다들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건가? 우리는 분명 부부가 되었는데,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된 게 맞는데 왜 가끔씩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당신 대신 내 곁을 채우는 걸까.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때 나도 당신도 참 많이 애썼고, 가끔씩 외로웠지만, 서로를 위해 최대한 괜찮은 척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시절, 당신은 어떤 시간을 살았나요?
결혼 4년 차에 우리는 엄마와 아빠가 되었습니다. 어설프고 허둥지둥하며 큰 아이를 키우던 우리는 더디게나마 부모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둘째가 태어났고, 그렇게 우리는 둘만을 바라보던 부부에서 두 딸을 키우는 부모라는 자리에 더 많은 무게추를 매단 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많이 웃고, 새롭게 배우며 성장하고 거듭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엄마로서 부족한 나를 마주할 때마다 한없이 약하고 초라한 나의 민낯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잘하고 있다고, 고맙다고, 당신 정말 대단하다고 번번이 나를 격려해 준 당신이 없었다면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로 어른으로 아이들과 함께 자라며 겪어낸 성장통의 시간들이 얼마나 더 버겁고, 어려웠을까요. 좋은 엄마로서도 좋은 아내로서도 많이 부족한 사람임에도 언제나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서 계속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열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아 우리는 둘이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었죠. 14박 16일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15주년, 20주년에는 뭘 할지 부푼 꿈을 트렁크에 가득 채워 돌아왔습니다. 남프랑스가 좋다더라, 스페인도 꼭 가보고 싶은데, 아이들이랑 같이 가기에는 미국이 더 나을까? 계획하고 꿈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렌 시간이었습니다. 15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코로나가 한창이었습니다. 아쉽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꼭 더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자며 아이들과 작은 케이크를 자르며 약속하는 것으로 축하를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스무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사이 고2, 중2가 된 두 딸들. 딸들의 중간고사가 코앞인지라 이번 기념일도 역시 여행은 꿈나라 이야기로만 남게 되었네요.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당신은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을 하고 자리에 없었습니다. 아직 해도 다 뜨지 않는 이른 아침 6시, 당신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보,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20년이라는 단어가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항상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흔한 이모티콘 하나 없는 담백한 인사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당신의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나도 당신을 따라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메시지를 보내고선 아이들을 등교시키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며칠 전 당신이 새롭게 알려준 코스를 뛰어보기로 합니다. 주말 밤, 넓진 않지만 곧게 잘 정비된 그 길을 함께 뛰며 즐거웠던 기억을 찬찬히 떠올려 봅니다. 그날은 밤이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요. 밝은 아침 다시 찾은 그 길은 예쁜 꽃들이 한참을 이어진 아름다운 꽃밭이고, 꽃길이었습니다. 주황색 꽃들이 줄지어 흔들리는 그 길을 혼자 뛰며 나는 우리의 시간들을 조용히 돌아보았습니다.
늘 꽃길만 걸었던 시간은 아니었을 겁니다. 넘어지고, 구르고, 깨지면서 견뎌낸 순간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내가 나답지 못하게, 괜찮은 척, 행복한 척 흉내내며 산 시간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화나면 참지 않고 화를 냈고, 슬프면 목 놓아 울기도 하고, 기쁠 때는 대책 없이 날아오르기도 하면서, 당신 곁에서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우선시하며 살아도 당신은 늘 받아주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당신은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당신 앞에서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보다 더 솔직하고 나다운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나답게, 내가 원하는 나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나서도, 운이 좋아서도 아닌 바로 당신 덕분이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알려준 꽃길을 혼자 뛰며 그걸 알아차리고는 조금 눈물이 났습니다. 고마워서, 감사해서, 행복해서 눈가가 빨개져서는 꽃길을 계속 달렸습니다.
스무번째 결혼 기념일 아침, 나는 꽃길을 달렸습니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고, 혼자였지만 함께인 듯 충만하고, 충분했습니다. 당신과의 20년은 나에게 그 어떤 꽃길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나를 나로 살게해준 당신, 고마운 당신에게 나라는 꽃밭 가득 피어난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오늘의 운동 기록>
- 2.6km 달리기 + 20분 걷기 + 5.1km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