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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남이 이룬 것들

100번째 글

by 햇살 드는 방

얼마 전부터 SNS에서 ‘N년차, 내가 이룬 것’ 시리즈가 유행했다. 달리기 n년차, 직장인 n년차, 자취 n년차… 대단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아아 15,000잔 마시기, 팀장님 몰래 웹툰 7,600번 보기’ 같은 소소한 성취들이 반전의 재미를 줬다.


다음 달 말이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된다. 그리고 이 글은 내가 브런치 작가로서 발행하는 100번째 글이다. 나는 브런치 작가 생활 1년 동안 100편의 글을 통해 무엇을 이뤘을까.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며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 나는 생각보다 숫자에 연연하는 사람이었다. 조회수, 라이킷, 구독자, 댓글 그리고 페이스, 거리, 마일리지..... 브런치와 달리기의 세계에도 이 세상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숫자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숫자들의 눈치를 보며 자꾸만 초조해졌다. 사실 이 숫자들이 나에게만 붙는 꼬리표라면 아무 상관이 없을 터였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어제의 나 혹은 한 달, 1년 전의 나 정도일 테니까.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떤가. 수많은 비교군들이 나보다 훨씬 나은 숫자들을 달고 앞서 나간다. 브런치에서는 매일 메인 화면에 누군가의 글이 걸리고, 구독자 급등 작가가 소개된다. 브런치 북은 1위부터 20위까지 순위가 매겨져 줄 세워진다. 달리기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10 km를 몇 분만에 달리는지, 풀 코스를 몇 번 완주했는지, 한 달 마일리지가 얼마인지에 따라 그 러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숫자는 힘이 세다. 구독자가 천 명이 넘는 작가님들의 글은 왠지 어딘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발행할 때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내 글도 어쩌다 운이 좋아 다음 메인에라도 걸려 조회수가 솟구치면 갑자기 효자글로 등극한다. 브런치북 순위 1위에 오른 작가님의 브런치북은 제목부터 이미 될성부른 나무의 향기가 난다. 이 정도면 숫자란 어쩌면 초강력 콩깍지, 곧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이 지독한 숫자에 대한 맹신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뼈 때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호선 교수님은 40대를 두고 ‘강박적 불안’ 세대라 정의한다. 강박적으로 무언가에 빠져있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야, 아파라. 내 뼈야, 괜찮니?’

죽어라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는 것도 불안해서 그런 거란다. 일종의 문화 강박, 유행 강박이라고. 글쎄, 나도 그런 건가? 그래서 이렇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외치며 24시간이 모자라게 책을 읽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달리는 걸까. 내가 이렇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또 하며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달성하고 싶은 숫자는 무엇이며, 그 숫자를 이루고 나면 그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정성 평가보다 정량 평가가 더 공정하고, 정확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숫자로 측량된 성취와 성공에 대해 크게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숫자 뒤에 숨은 진짜 성과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브런치 n년차, 달리기 n년차에 많은 것을 이루어 왔으며 지금도 더 많은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들 앞에 붙은 화려한 타이틀과 영광의 숫자들은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다. 반짝이는 숫자 뒤에 숨겨진 셀 수 없이 많은 고민과 노력과 실패와 도전의 시간들이야말로 내가 보고 배워야 할 진짜 성과일 것이다.


강박적 불안 때문이건, 자기만족을 위해서건, 개인적 성취나 성공을 위해서건 이유나 동기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뒤에는 꾸준함과 성실함이라는 노력의 시간들이 존재한다. 내가 브런치에 100편의 글을 쓰는 동안 이룬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잘 읽고, 잘 쓰는 법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정작 글쓰기와는 너무 먼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다. '이 정도 글 밖에 못 쓰면서 누굴 가르친다고?'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자 두려움보다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나를 이끌었다. 쉽게 지나치던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글이 되어 쌓일수록 나의 삶도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기 또한 마찬가지다. 약 한 달 반 전,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3km가 내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최대치였다. 5분만 달려도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흘러 이런 저질 체력인 내가 감히 <무쇠소녀단>을 운운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는지 기가 막힐 때도 있었다. 그러나 주 3~4회를 꾸준히 달리는 지금, 5km 정도는 크게 힘들지 않게 달릴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게다가 달리기를 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상쾌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는 것도 큰 변화다.



SNS 밈처럼 말해 보자면, 브런치 1년 차 내가 이룬 것: 100편 쓰기, 달리기 3킬로에서 7킬로로 늘리기, 그리고 숫자에 덜 흔들리려고 애쓰기. 사실 가장 큰 성취는 ‘남이 이룬 것’ 앞에서 초조해하기보단, ‘내가 이룬 것’을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거다. 숫자는 여전히 무섭고, 비교는 여전히 괴롭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진짜 성과는 꾸준히 달리고 쓰는 그 순간에 있다는 걸. 100번째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속 좌표는 아주 단순하다. 어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나.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의 운동 기록>
- 7.1km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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