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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밀어준 첫 10km 완주

남의 나라 마라톤, 내 일기가 되다.

by 햇살 드는 방

쉬지 않고 10km를 달린다는 건 늘 남의 이야기 같았다. 한 시간 넘게 어떻게 멈추지 않고 달리겠나 싶었으니까. 그래서 하프나 풀코스는 애초에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카카오런 마라톤 대회 추첨에도 떨어진 터라, 내 도전은 꽃 피는 내년 봄쯤으로 미뤄둔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도 10km를 달렸다. 1시간 하고도 6분이 넘는 시간을 쉬지 않고. 사실 멈추지 않고 더 달리고 싶었는데, 왼쪽 허벅지가 자꾸 뭉쳐서 어쩔 수 없이 멈췄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가 10km를 뛰다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기꺼이.


내가 얼떨결에 10km를 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날씨와 풍경 덕분이다. 한창 더웠던 8월에 달리기를 시작한 나에게 요즘 날씨는 그야말로 선물이다. 뛰면서 느끼는 시원한 바람, 좌우로 흔들리는 초록의 풍경들, 한강까지 이어지는 강물의 출렁임, 나날이 높고 푸르게 빛나는 가을 하늘까지. 달리며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매일, 매 순간 달라지는 그림이고, 영화다. 집 근처에 이렇게 달리기 좋은 트랙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뛰면서 감사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집 앞에서 시작되는 트랙에서 시작해 한강 합수부 근처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풀 냄새, 흙냄새를 들이마시며, 기분 좋은 바람의 응원에 힘입어, 푸르게 눈부신 하늘을 지붕 삼아 시원하고 기분 좋게 땀을 흘렸다. 어쩌면 달리며 만나는 풍경들이 내가 달리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바쁜 도시의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연의 품을 향해 마음껏 달려가는 시간. 그 순간이 하루 중 가장 자유롭고, 설렌다. 다 뛰고 나면 정말 시원하고, 개운하다.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피곤함을 이긴다.


아무리 그래도 10km가 몰고 온 피로감은 역시나 만만치 않다. 이 글을 발행하고 나면 폼롤러로 다시 돌아가 뭉친 근육들을 풀어줘야지. 시원하게 스트레칭하고 침대에 누우면 어쩌면 바로 코를 골고 잠들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꺼풀이 무겁다. 그래도 오늘은 꼭 일기처럼 기록하고 싶었다. 나의 첫 10km 완주의 기쁨을.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쁘고 뿌듯할까. 어쩌면 오늘은 꿈에서도 달릴지도 모르겠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이제 10km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운동 기록>
- 달리기 10km
#오늘의러닝 #10km완주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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