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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전어 말고 가을 비염

찬바람과 함께 너는 왔다

by 햇살 드는 방

찬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은 곧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30년 가까이 매년 11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포의 그 이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을 둔 집이라면 어느 집이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쯤부터 본격적으로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나 또한 내년에 고3이 되는 딸을 둔 예비 수험생 엄마로서 이 계절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이 계절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만은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찬 바람이 데려온 불청객, 알레르기 때문이다. 어젯밤 기분 좋게 바람을 만끽하며 6.5킬로를 뛰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했다. 요즘 꽤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올해는 혹시나 조용히 지나가주지 않을까 했던 나의 섣부른 기대가 요란한 재채기 소리와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재채기가 훑고 간 자리에는 퉁퉁 부은 얼굴과 멈출 줄 모르는 콧물이 남는다. 이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 눈까지 가렵기 시작하면 그땐 그야말로 대혼란의 시대가 열린다. 콧물, 재채기, 눈 가려움의 삼단 콤보는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다행히 아직까지 눈은 무사하다. 알레르기 약 덕분에 재채기도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약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오늘은 안 먹던 비타민에 영양제, 피로회복제까지 열심히 먹었다. 저녁 내내 잊을만하면 존재감을 드러내던 콧물도 잠잠해진 걸 보면 영양제가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저 우연일까.


이렇듯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9월은 나에게 시련의 계절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쁨의 달이기도 하다. 둘째 생일과 나의 생일 그리고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 모두 9월에 몰려 있다. 1년 중에 케이크를 먹을 일이 가장 많은 달이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새로운 즐거움이 추가되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딱 좋은 계절이 시작되는 달이라는 것. 재채기가 폭발하고 콧물이 바람 되어 날리더라도, 가슴까지 뻥 뚫리게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이 즐거움은 못 참지!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엔 마냥 나쁘기만 한 일도, 마냥 좋기만 한 일도 없나 보다.


수능과 알레르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한숨이 새어 나오지만, 다행히 이 모든 근심과 스트레스를 날려줄 두 다리가 나에게 있다. 답답하고 우울할 땐 신발장 앞으로. 오늘은 회복을 위해 하루 쉬었지만, 내일 아침엔 운동화 끈 질끈 묶고 달려 나가리라. 알레르기약 한 알 털어 넣고, 주머니엔 휴지도 넉넉히 챙겨서. 찬 바람을 맞이하러 나가볼 테다.

기쁘게, 힘차게, 시원하게.




<오늘의 운동 기록>
- 6,700보 걷기 + 폼롤러 스트레칭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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