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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냐, 러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운완의 비결은 우선순위

by 햇살 드는 방

오늘은 진짜 절실히, 한 캔 따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오전 회의부터 오후 수업까지 빽빽한 일정을 충실히 소화했고, 중간중간 청소하고, 밥 하고, 이메일 업무 처리까지 낭비 없이 살아낸 하루였다. 게다가 마지막 수업마저 학생들 일정으로 휴강하게 되었으니, 이런 날 퇴근 후에 맥주 한 잔 하지 않는다면 그건 열심히 산 스스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시원한 맥주잔이 뿅뿅뿅 날아다녔다. 설상가상으로(?) 오늘따라 저녁 메뉴로 낙불새(낙지 돼지불고기 새우)를 볶아버리고 말았다. 칼칼한 불고기 한 점에 낙지와 새우 고이 감싸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먹다 차디찬 맥주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켜면...... 캬! 하루의 피로쯤은 한 방에 저 멀리로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완벽한 저녁 계획에 딱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무쇠소녀단의 약속이었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지만, 내 발등 내가 찍은 나 자신과 약속한 매일 최소 10분 운동, 10분 글쓰기의 약속.


딱 한 캔만 마시리라 맥주 캔을 따겠지만, 한 캔 마시다 보면 넷플릭스라도 켜게 될 테고, 아껴보던 드라마 한 편 시작하면 한두 시간은 우습게 날아가겠지. 드라마 보며 맥주 한 캔 홀짝이다 보면 한 캔으론 아쉬울 테고, 딱 한 캔만 더 먹자 냉장고에 손을 뻗으면 이번엔 각종 안주들이 내게 손짓하겠지. 배고프진 않지만 입이 심심해진 나는 분명 과자 창고와 냉동식품 칸을 기웃거리다 건어물 정도로 타협을 하고는 소파 앞에 제대로 자리 잡고 앉아 두 번째 맥주캔을 따고야 말겠지.

"에라 모르겠다. 오늘 애썼으니 이 정도는 필요한 보상이지!"

머릿속에서 '합리화 세포'가 <괜찮아, 오늘만이야> 버튼의 전원을 켜는 순간 게임 끝. 그날 밤은 맥주와 드라마 그리고 유튜브로 채워질게 뻔했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오늘의 엔딩씬일까?"

저녁을 차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맥주 마시며 드라마를 보다 빵빵한 배를 안고 잠들 것이냐, 러닝화 신고 뛰어나가 땀 흘리고 개운하게 잠들 것이냐. 침대에 누워 오늘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어느 쪽이 더 뿌듯하고 행복할까. 정답은 너무나 쉽게 정해졌다. 지금 당장 운동복 입고 튀어!


결심을 하고도 설거지와 빨래 앞에 잠시 멈칫했지만, 흐린 눈으로 못 본 척하고 재빨리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지금 나의 우선순위는 맥주도, 휴식도, 집안일도 아닌 '운동'이니까. 갖가지 유혹과 망설임을 먼지 털듯 털어버리고 집 밖으로 나와보니 밤공기는 선선했고, 풀벌레 소리는 청아했다. 발걸음 가볍게 천변으로 향하는 동안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가을밤,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채우려던 갈증을 러닝으로 해소한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질수록 몸은 가벼워지고, 성취감이 피어오른다. 한 잔의 맥주는 잠깐의 기쁨을 선사하지만, 한 번의 러닝은 오랜 행복과 충만함으로 나를 채워준다. 우선순위를 운동에 둬서 얼마나 다행인가. 덕분에 이렇게 글감까지 얻고, 나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오운완, 오글완 할 수 있는 비법은 다름 아닌 우선순위. 순간의 기쁨보다 오래갈 행복에 우선순위를 둔 오늘의 나의 선택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 싶다.

#참잘했어요 #도장꾹




<오늘의 운동 기록>
- 19,000보 걷기 + 3.4 킬로미터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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