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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드는 방 Dec 04. 2024

무엇을 써야 할까?

선배들이 전수해 준 매일 쓰기 꿀팁

매일 써보기로 결정하면서 제일 고민되었던 것은 "무엇을 쓸까?"였습니다. 매일 뭐라도 쓰려면 쓸 수야 있겠지만 그 '뭐라도'가 무엇이 되어야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즐거울까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더 솔직해지자면 비록 내가 좋아서 쓰는 일기 같은 글일지라도 이왕이면 읽는 이에게 소소한 의미라도 전하고 싶고, 작은 공감의 끄덕임 하나 끌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글쓰기의 바구니에는 어떤 글감을 골라 담아야 할까요? 그 많은 매일 글쓰기 선배님들은 매일 어떤 이야기들을 쓰며 나아갔을까요?


브런치 검색창에 '매일'을 검색하니 798개의 글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매일 글쓰기, 매일 산책하기, 매일 체중 재기, 매일 3분 나 마주 보기, 매일 줄넘기....... 다양한 '매일'의 기록이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누군가 숨겨둔 보물창고 속 보석처럼 가득 채워져 있었네요. 자물쇠도 비밀번호도 없이. 읽으면 읽는 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매일 실천하기에 대한 글들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역시나 글 쓰는 작가들의 놀이터, 브런치답게 '매일 글쓰기'에 관한 고백과 기록과 다짐이 넘쳐납니다. 얏호. 심봤다!! 더 이상 매일 무얼 쓸까 혼자 고민하지 않고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합니다. 열심히 읽고 받아 적습니다.


"오! 그래그래, 맞아 맞아." 감탄의 추임새를 내뱉으며 한참을 읽고, 받아 적다 보니 슬슬 출출해지네요. 뜨거운 라떼 한 잔과 담백한 샌드위치 한 조각이 간절해집니다. 뭘 좀 먹어볼까?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고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어?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맞은편 벽면 책장을 빼곡히 채운 책, 책, 책들. 가만가만, 내 책장에 글 쓰기 책들만 몇 권이더라...... 아이쿠. 선생님들, 제가 지척에 훌륭한 글쓰기 선생님들을 이렇게나 잔뜩 모셔두고도 혼자서 눈 가리고, 귀 막고 끙끙대고 있었네요. 선생님들께서는 거기서 그렇게 언제나 저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말이죠. 당장 책꽂이 앞으로 몸을 날려 오늘의 영감이 되어줄 글쓰기 스승님들의 말씀이 담긴 책들을 한 권, 두 권 꺼내옵니다. 은유 작가님은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다정한 친구분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얘기하셨죠. "<글쓰기의 최전선은>은 <수학의 정석> 같이 기본 원리를 일러주는 책이고, <쓰기의 말들>은 사전처럼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는 책이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자습서 같은 책"이라고.  나의 책장 속 수많은 글쓰기의 정석과, 사전과 자습서가 되어줄 책에 기대자! 그래, 맞아. 매일 쓰려면 역시 매일 읽어야 해. 매일 읽고, 경험하고, 보고, 듣고, 말하고, 질문하고, 생각하고, 깨닫고 그리고 쓰고.... 내가 매일 쓰려는 이유는 어쩌면 매일 생각하고, 질문하고, 깨닫기 위해서가 아닐까? 무엇을 쓸까를 고민하며 책상 앞에서 일단 뭐라도 쓰기 시작했더니 어느새 생각은 내가 쓰는 이유에까지 맞닿아있었습니다. 쓰기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마음만은 이미 오늘의 초고 완성, 퇴고퇴고퇴퇴고를 무사히 마치고 발행 버튼 탁! 누른 듯 웅장해집니다.


그리하여 여러 선배님과 스승님들 덕분에 얻은 "매일 무엇을 쓸까?"에 대한 내 식대로 안내서를 적어보는 것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할까 합니다.


#글감은 일상에서 찾는다. 자꾸 생각나는 것, "가슴에 들어와서 나가지 않고 남아 있는 말이나 상황을 글의 소재로 삼자."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 은유 / 김영사 )


#나의 테두리는 열려있다. 뻐끔 열려 있다. 나는 그곳으로 세상의 굴튀김과 민스 커틀릿과 새우 크로켓과 지하철 긴자선과 미쓰비시 볼펜을 잇달아 받아들인다. (... 중략 ...) 뭐든 좋다. 뭐든 좋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내게는. 진정한 내게는. (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 비채 )


#일상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 프란츠 카프카 )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평소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무리 형편없는 글과 그림이래도 매일 그리고 쓰고 있어야 진짜 좋은 생각이 났을 때 그 생각을 놓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 아홉 번의 형편없는 글 없이 열 번째의 좋은 글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부족하고 엉망일지라도 매일 그리고 쓰기 위해 나 스스로 하는 다짐. 그러니 오늘도 이토록 형편없는 일상을 기록하자. ( 귀찮지만 매일 씁니다 / 귀찮 / 아멜리에북스)


#괴테는 왜 그렇게 써야만 했을까요. (... 중략... )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면, 신기하게도 그 문제를 감당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 중략...) 무엇인지 알고 싶고,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요. 그러니 쓸게 늘 많았지요. (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전영애 / 문학동네 )


 

일상을 흘려보내다 문득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순간들, 나도 한마디 거들고 넘어가야겠다 싶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 우리 집 식탁에서 주고받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들, 설거지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다,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다가, 공연장 객석에 앉아 손바닥이 부서져라 박수를 치다가, 울다가, 웃다가, 실망하다, 자책하다, 행복하다, 뿌듯하다..... 그렇게 살아내는 매일매일 중에 깨달은 이야기들을 써볼게요. 나를 멈춰 서게 한 이야기, 나를 나아가게 한 이야기, 나를 울리고 웃긴 이야기들을. 많은 선배님들과 스승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꾸준히, 멈추지 않고. 나의 일상을 쓰고, 또 쓰며 나아가겠습니다.



매일 글쓰기 4일 차에 얻은 덤은, "마음 정돈"입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대통령의 밑도 끝도 없는 비상 계엄령 선포로 온 나라가 흔들렸습니다. 일상은 무너졌고, 불안과 분노의 불길에 휩싸 여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국회의사당 지붕 위로 날아드는 헬기와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탱크를 황망히 바라봐야 했습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블랙 코미디도 울고 갈 현실 앞에서 마음은 헝클어지고, 머릿속은 뒤엉켰습니다. 무언가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써지진 않았습니다. 생각과 감정을 글로 뱉어내려니 자기 검열의 촘촘한 망을 거치기도 전에 꽉 막혀 고인 채로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오늘까지 끌고 오고 싶진 않았습니다. 잊을 수도 없고, 있고 싶지도 않았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정신 차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몽롱한 정신을 털어내지 못해 오전 내내 잠으로 보내고 일어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습니다. 땀과 때를 닦아 흘려보내고, 간밤에 목구멍까지 차올라 결국엔 뱉어냈던 험한 말들을 헹구어 하수구로 내려 보냅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아 정갈하게 차려입고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서가에서 피톤치드 못지않은 책톤치드로 명상하며, 속은 비었지만 마음은 단단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어 오후에는 열심히 일하고 쓸 수 있었습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물리적으로 쓴 '쓰는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 남짓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계속 쓰고 있었던 기분입니다. 생각하고 정리하고, 묻고 답을 찾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리고 굴려 종일 쓰고 또 쓴 느낌입니다. 그렇게 24시간이 지나니 조금은 정돈이 되더군요. 이제 욕을 뱉는 대신 촛불을 들고 나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쓰다보니 정리가 되고, 쓴 덕분에 정돈이 되었습니다. 쓰는 시간은 어느새 제게 이렇게나 소중하고 유용한 일상이 되어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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