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어지는 시간과 써야 할 때에 대하여
하루 중 언제 쓰는 게 좋을까?
매일 쓸 결심을 선포해 놓고 나니 매일 쓰려면 언제 쓰는 게 가장 유리할지가 제일 먼저 궁금해졌습니다. 매일 쓰고, 퇴고해서 발행 버튼까지 누르려면 아무래도 이른 새벽부터 쓰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전날 밤에는 다 써놔야 다음날 생활하며 짬짬이 덧붙이고, 고쳐 써서 매일 무사히 발행 가능할 것 같은데? 하지만 전날 써놔 버리면 매일매일의 생생한 글감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 시간을 정해놓기보다는 쓰고 싶은 글감이 딱 떠오르는 그 순간, 열일 제쳐두고 어떻게든 일필휘지로 써보는 거야! 오늘은 그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통해 고민해 본 "나는 언제 써야 잘 써지는 사람일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하루 중 글이 제일 잘 써지는 시간은 언제일까요? 또 글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글을 써야 하는 때는 언제일까요?
브런치를 시작하고 처음 3주간은 주로 밤에 글을 썼어요. 스스로를 올빼미 체질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예전에 미라클 모닝에 섣불리 도전했다가 엄청난 피로감과 무기력감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거든요. 게다가 동거인들의 늦은 귀가와 취침 시간도 저의 심야 글쓰기를 부추겼습니다. 아이들이 크고, 남편의 직급이 올라가고, 저의 <독서교실> 마지막 수업 시간이 늦어질수록 저희 집 소등 시간도 매년 함께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숙제와 취미생활을 마치고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낮동안 놓친 집안일을 하다 보면 밤 12시를 훌쩍 넘기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깜깜한 밤 비로소 식구들이 모두 각자의 침대로 들어가 누우면 그제야 저는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때로는 식탁에서 때로는 서재에서 노트북을 펼쳐 [작가의 서랍]을 열면, 낮동안 머릿속을 떠다니던 여러 생각과 다짐들이 연결되지 않는 단어와 완성되지 못한 문장으로 잠들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자, 이제부터는 밤의 마법에 기대어 그들을 반죽할 시간입니다. 어떤 글감은 아직 밀가루 그대로 남아있기도 하고, 어떤 글감은 이제 막 반죽이 시작됐나 싶었는데 무언가 재료를 넣는 걸 빼먹었는지 제대로 부풀어 오르지 못한 채 주저앉아 있기도 합니다. 아무도 말을 걸지도, 찾아오지도 않는 그 시간은 어둠과 적막을 응원가 삼아 나의 글감을 반죽하고, 발효시키고, 성형해서 맛있게 구워낼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라고 믿었습니다. 몇 번의 밤샘을 경험하기 전까지는요.
왜 쓰다 보면 가아끔 있잖아요, 그분이 오시는 순간. 심야에 그분이 찾아오면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 다시 와줄지 모르는 영감님을 놓아드릴 수 없어 바짓가랑이 꼭 붙들고 버텼습니다. 물론 그분이 찾아왔다고 해서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문장과 대단한 글을 써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희멀건 노트북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만 꿈뻑꿈뻑 바라보며 몇 시간을 흘려보내진 않아도 되니까요. 뭐라도 계속 쓸 수 있는 그 상태에 감격해 멈추지 못하고 쓰고 또 썼습니다. "나의 초고는 쓰레기가 아니다, 다듬으면 보석이 되는 원석이다." 스스로에게 되뇌고 격려하며 열심히 쓰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이 뻑뻑해지고, 어깨가 돌처럼 굳어옵니다. 시계를 보니 아차차, 벌써 4시네요. 30분만 더 쓰고 마무리하기로 결심합니다. 대부분은 너무 졸려 그 결심을 지켜냅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의욕이 과해 멈추지 못하고 기어이 남편의 알람이 울리는 5시 반까지 노트북 앞을 지킵니다. 노트북 앞에 좀비처럼 웅크리고 앉은 제 모습을 발견한 남편은 "뭐야? 밤샜어?" 긴 눈을 최대한 세모나게 뜨고 놀랍니다. 6시 반에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이제 곧 고등학생 딸을 깨울 시간이네요. 괜히 지금 잠깐 누웠다가는 딸들 생기부에 지각이라는 오점을 남기는 일등공신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둘째가 등교하는 8시 반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꼬박 밤을 새웁니다. 그렇게 브런치 시작 후 3주 동안 세 번의 밤샘을 경험하고 나서 깨닫습니다. 40대 중반 이후의 무분별한 밤샘은 극도의 피곤함과 급격한 노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밤을 새우고 써도 눈이 제대로 안 떠졌는데, 매일 글쓰기를 하며 심야 또는 밤샘 글쓰기를 한다? 한 달 후 폭삭 늙어있을 제 모습을 상상하니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브런치는 먹을 줄만 알던 저를 포크와 나이프 말고 작가의 서랍이 있는 브런치의 세계로 인도해 준 <슬초 브런치>(이하 슬브). 6주 안에 안 쓰던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온갖 비밀 장치들이 정교하게 설계된 과정 덕분에 저는 강제적으로 다시 도전하게 됩니다. 미라클 모닝에. 몇 년 전, 한창 코로나로 대면 모임이 어렵던 시기에 제 인생 첫 미라클 모닝을 경험했었습니다. 함께 책 모임을 하는 선생님들과 매일 아침 5시 줌에서 만나 2시간 동안 글을 쓰거나 책을 읽자는 취지였죠. 고백하건대 저는 5시에 제대로 들어가 본 기억은 없습니다.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겨우겨우 눈을 뜨고 다 떠지지도 않은 눈꺼풀을 한쪽만 겨우 올리고 줌에 접속해 멍한 상태로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했죠. "이게 맞나?" 매일 늦게 자는 올빼미지만 일단 일찍 일어나면 뭐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이른 아침 기상의 기적이라 믿었기에 한 달 정도를 꾸역꾸역 새벽 회의실에 참여했습니다. 힘겨운 한 달을 보내고 선생님들께 선언했죠. "전 미라클 모닝과는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침 쓰기 카톡방에서 나오기 버튼을 눌러 탈출했습니다.
그때의 실패를 돌아보건대 아무래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했던 것이 패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든 일찍 자야 다음날 일찍 일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슬브 미라클 모닝을 위해서는 전날 밤 11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 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게다가 슬브의 미라클 모닝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아침 6시에서 8시까지. 이 정도면 실패의 아픔을 딛고 충분히 다시 도전해 볼 만하다 싶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일주일에 딱 한 번, 일요일에만'이라는 조건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약속도 수업도 없는 일요일. 무리해서 일찍 일어났다 해도 낮잠 세 시간 정도는 거뜬히 잘 수 있는 날. 부담 없이 미라클 모닝 하기 딱 좋은 요일인걸? 그렇게 저는 개운한 미라클 모닝 글쓰기를 위해 전날 일찍 자기로 한 계획을 너무 쉽게 수정해 버립니다. 일요일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수업이 없는 날. 그러니 토요일 밤에 그냥 일찍 자버릴 순 없지. 식탁에서 저녁 먹으며 시작한 맥주 한 잔이 어느새 티브이 앞으로 옮겨가 넷플릭스를 안주 삼아 마시는 두 캔, 세 캔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놀고 다음날 6시, 전날의 일탈을 만회하기 위해 2시간 바짝 썼습니다. 그리고는 가족들 아침을 대충 챙겨주고 침대 위로 풍덩. 깊은 잠에 빠져 세, 네 시간을 그냥 날려버리기를 여러 번. 흐드러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볼 위에 깊게 파인 베갯자국을 보며 중얼거렸죠. "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늦은 밤 그리고 이른 새벽. 많은 이들로부터 글쓰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추앙받는 글 쓰는 이들을 위한 프라임 타임. 쓰는 사람들을 계속 쓰게 만드는 집필 시간의 양대 산맥. 그러나 두 시간 모두 오래 지속하기에는 저의 생활 패턴과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유가 뭘까? 남들은 되는데 나는 왜 힘들까? 생각하다 보니 원인은 바로 그거였습니다. '남들은 되는데'에 밑줄치고 별표 친 나의 갇힌 생각. 나를 위한 글쓰기 좋은 시간을 찾기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추천해 준 시간에 무리해서 나를 끼워 맞추려고 했던 게 화근이었던 건 아닐까? 각자 생활 패턴도 컨디션도 다르고, 집중이 잘 되는 시간도 다른데 왜 나는 '남들이 좋다 카더라'는 말만 믿고 내게 맞는 시간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프리랜서입니다. 집 한편에 마련한 서재이자 작업실이자 공부방에서 초, 중등 아이들과 책 읽고, 글 쓰는 수업을 하고 있지요. 프리랜서에게 시간 관리는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누구도 나에게 마감 기한을 정해주지 않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스스로 엄격하게 마감을 정하고 지켜야 구멍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이자 두 딸을 보살펴야 하는 엄마이면서, 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집이 곧 일터이고, 일터가 곧 집인 셈이죠. 이런 환경에서 선택과 집중은 시간관리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질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죠. 반면 일상과 업무 사이, 수업과 수업 사이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매우 유리한 환경이기도 합니다. 아이들 등교 후 오후 수업 시작 전까지는 오롯이 제 시간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집안 곳곳을 나만의 '집필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오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업과 수업 사이 비는 시간 노트북만 펼치면 언제든 오전에 하던 작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퇴근 후에는 또 어떤가요? 만원 전철에 시달릴 일도, 환승과 교통 체증에 지칠 필요도 없이 1초 컷으로 작가 모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제게 주어진 몇 개의 자투리 시간 중 제가 매일 쓰기 위한 고정 시간으로 정한 것은 주중 오전 8시 반에서 12시 반까지, 매일 (최대) 네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후,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시간이자 오후 수업 시작하기 2시간 전. 이른 새벽은 아니지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이 시간만큼은 어쩌면 지속 가능한 나만의 미라클 자투리 모닝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약 한 달 동안 이 시간만큼은 다른 일은 최대한 제쳐두고 쓰는 일에만 몰두해 보려고 합니다. 전업 작가도 전문 작가도 아닌 제가 하루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글만 쓰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루 24시간 중에 네 시간 정도는 쓰는 즐거움을 누려보고자 합니다. 중간중간 방해받을 일이 왜 없겠어요. 격주로 도서관 봉사도 가야 하고, 가끔은 나가서 커피도 마셔줘야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아침 일찍부터 수업과 일정이 있어 별도의 시간 계획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 밖에도 툭툭, 예상치 못한 변수와 예외 사항들은 언제든 도로 위 빌런처럼 깜빡이도 없이 훅훅 치고 들어올지 모릅니다. 그런 날은 또 그런대로, 30분이든 1시간이든 써보려고 합니다. 그런 예외적인 시간들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무의미하게 인스타나 유튜브, 넷플릭스를 오가며 낭비하는 시간만 제대로 쳐내도 저의 오전 자투리 글쓰기 시간은 충분히 지켜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동안 꽤 바쁘고 부지런히 살아왔다 자부했건만 냉정하게 돌아보니 버려지고 낭비된 시간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자, 이제 매일 쓰기 2일 차를 무사히 넘기고 발행의 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언제 써야 잘 써질까?"라는 제목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잘 쓰기보다는 오래, 계속 쓰는 게 목표인 왕초보입니다. 오늘의 매일 글쓰기 시간이 제게 준 덤은 '나만의 루틴 정리하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그냥 쓰자, 일단 쓰자, 어쨌든 쓰자를 목표로 되는대로 써왔다면 어쩌면 이 30일의 매일 글쓰기를 통해 차곡차곡 나에게 맞는 글쓰기 루틴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겨우 2일 차에 이렇게나 희망적인 목표를 논하는 걸 보니, 어제 덤으로 받은 '긍정 회로 풀가동'의 선물이 아직 유효한가 봅니다.
"2024년 12월 2일, 매일 글쓰기 이틀차, 일단은 발행! (퇴고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