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일, 30일 매일 쓰기를 시작하다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나도 매일 쓸 수 있을까?"
결심의 시작은 작은 질문이 불러온 떨림으로부터였어요. 브런치에서, 인스타에서 그리고 풍문으로 매일 읽고, 쓴다는 글쓰기 무림 고수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생각했죠. 저분들은 어떻게 매일 쓸까? 나도 할 수 있을까? 매일 쓰면 어떻게 될까? 매일 쓸 말이 있을까? 하다가 중간에 실패하면 어쩌지? 만약 '30일 매일 쓰기'에 성공한다면, 그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럴수록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봐도 떠오르는 답은 단 하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직접 부딪혀볼 수밖에 없다는 것.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1일. 무언가를 시작하기 딱 좋은 날짜죠. 게다가 12월 1일이라면,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 아닌가요? 이사로 치면 손 없는 날, 결혼으로 보면 길일... 그리고 또 뭐가 있죠, 좋은 날? 여하튼, 어쨌든 바로 오늘 12월 1일이 제 궁금증을 시험대에 올려보기에 가장 적당한 날이더라 그 말입니다. 정말 뭐가 달라질까요? 매일 쓰면, 조금은 글쓰기에 힘이 붙을까요? 무언가 변화를 기대하기에 30일이란 시간은 턱없이 짧고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해 보는 것은 지금껏 한 번도 매일 써보며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책 읽기와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사람이 말이죠.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8년째 <독서교실>을 꾸려온 사람이 정작 본인은 8년 동안 단 한 번도 매일 쓸 결심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수업 준비하기에도 너무 바빠요."
"아이들 밥은요? 매일 싱크대에 쌓이는 설거지는요?"
"하루에도 수천 가닥씩 바닥을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은요?"
매일 쓰지 못할 수많은 이유가 지금도 쉴 새 없이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모두 다 비겁한 변명일 뿐입니다! 시도해 보기도 전에 안 될 이유, 못 할 이유부터 찾으면 안 된다면서요? 딸들에게, 독서교실 아이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모든 선생님의 푸른 꿈은 '청출어람 청어람'이라지만, 그래도 적어도 선생으로서 선배로서 먼저 푸른빛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네, 이야기가 점점 거창해졌습니다. 떨려서 그래요. 브런치북을 덜컥 발행하긴 했는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시작도 하기 전에 소심이와 불안이가 자꾸만 저를 찾아와 “너 진짜 괜찮겠어? 할 수 있겠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서 말이죠. 그런데 또 한 편, 떠올려봅니다. 저를 브런치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걱정 말아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요." 이 얼마나 힘이 되는 말인가요? 내가 무엇을 쓰든, 매일 쓰든, 일주일에 한 편을 쓰든, 쓰다가 중간에 에라 모르겠다 포기해 버리든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을 거라는 얘기잖아요. 이거 정말 럭키비키잖아! 그 말은 결국 '매일 쓴다는 결심'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결심이라는 뜻이니까요. 2024년을 마무리하며,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위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결심. 그거면 충분하다 싶더라고요.
"오늘부터 요이, 땅!"
쿨한 척 간단하게 열어본다는 것이 역시나 구구절절 길어지고 말았네요. 너무 비장해지진 맙시다, 나 자신이여. 어깨에 힘 빼고, 마음은 가볍게, 머리는 맑게, 손가락은 부지런히 그렇게 가보자고요! 브런치 작가라는 거창한 부캐를 갖게 된 지 이제 겨우 한 달 하고 팔일이 지났어요. 여전히 작가라는 호칭은 너무도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글 쓰기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여갈 기록들이 나의 역사가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우주에서 바라보면 한 톨의 미세 먼지 정도 될까 말까 한 미미한 존재지만, 나 자신에게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인생이자 우주니까요.
언젠가 '세바시'에 출연한 진서연 배우가 '엄마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봤어요. 그녀가 말하는 '엄마적 사고'란 말 그대로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 스스로를 진심을 다해 돌보자>는 사고방식이래요. 즉,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로서 대하며, 나에게 필요한 응원, 위로, 사랑을 다른 누구를 통해서가 아닌 내가 직접 제공하자는 것이죠. 이러한 엄마적 사고를 통해 그녀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엄마적 사고', 참 좋은 말 아닌가요?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엄마가 되어줄 수 있는 거죠. 엄마의 마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것, 멋진 것, 맛있는 것, 깨끗한 것, 건강한 것, 소중한 것,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는 것.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 중에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을까요?
앞으로 매일 쓰며 살아갈 30일은 '엄마적 사고'로 저를 돌보고, 아끼며, 키워주고 싶습니다. 매일 쓰는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다독이며 한 챕터씩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가고 싶습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그 일을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 기쁩니다. 첫 글을 발행하기 직전인 지금, 제 마음은 이 글을 처음 쓸 때보다 많이 차분해져 있네요. 이제는 두려움이나 불안함 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훨씬 큽니다. 오늘의 글쓰기가 제게 선물해 준 덤은 '긍정 회로 풀가동'인가 봅니다. 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호랑이 기운이 샘솟습니다. 헬요일이라는 월요일의 시작을 코앞에 둔 이 시점. 뜻밖에 넘치는 엔도르핀을 느끼며 저의 첫 브런치북, 첫 글을 마무리 지어보려 합니다. 두근두근하네요! 매일 쓴다는 결심은 저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2024년 12월의 첫날, 매일 써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