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 건네는 위로
푹 쉬고 온 여행에도 여독은 따라온다.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잠자리에만은 까다로운 건지 여행지에서 잠을 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연휴 여행에서도 역시나 잠들기까지 수십 번 뒤척이고, 자주 깨어났다. 게다가 안 마시던 막걸리를 연달아 마시고, 매 끼니마다 참지 못하고 과식을 해버린 미련함의 여파로 분명 잘 쉬고 왔고 오늘까지도 잘 쉬고 있음에도 괜히 몸이 찌뿌둥하고, 속도 더부룩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가벼운 산책과 건강한 집밥 처방. 슬슬 집 앞을 걷고 들어와 속을 편안하게 다스려줄 따끈한 국물을 곁들여 집밥 한 끼 먹고, 익숙한 내 침대에서 푹 자고 일어나면 비싼 영양제와 피로회복제도 부럽지 않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봄동을 꺼내 여독을 개운하게 풀어줄 시원한 봄동 된장국을 끓이기로 한다.
지난 신정, 친정 엄마가 정성 들여 끓인 사골국물을 3팩이나 주셨다. 2팩은 진작에 떡국으로 맛있게 먹었고, 마지막 소중한 한 팩을 녹여 육수를 준비한다. 큼직하고 부드러운 살코기가 숭덩숭덩 들어간 육수가 끓어오르는 자태를 보고 있자니, 무얼 넣어도 맛있는 한 그릇이 탄생할 거란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친정 엄마표의 든든함이란. 반 백 살이 가까워진 지금까지도 맘 속 깊이 뿌리내려 힘이 되는 존재는 역시나 엄마인걸까.
봄동을 데쳐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서 끓이라는 엄마의 조언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귀차니즘과 쉽게 타협하고마는 나는 끓고 있는 육수에 된장을 바로 풀어 버린다. 지난 가을, 엄마가 주신 집된장 두 큰 술이 뽀얀 사골 국물에 기꺼이 몸을 풀어 정겨운 황톳빛을 만들어낸다. 구수함에 약간의 칼칼함을 더하고 싶어 시고모님표 집고추장을 반 스푼 더한다. 시제품엔 방부제도 화학조미료도 너무 많이 들어간다며, 때마다 집에서 담근 장류를 보내주시는 어른들의 정성이 새삼 감사하다.
이제 주인공인 봄동이 등장할 차례다. 언젠가 무쳐먹고 남은 억센 이파리들을 층층이 겹쳐 어슷하게 썰어낸다. 배추 같은 잎채소를 손질할 땐 두꺼운 줄기 부분을 비스듬히 썰어야 간이 골고루 밴다는 것도 언젠가 요리하시던 엄마 어깨 너머로 보고 들은 요리 상식이다. 엄마가 무심코 전해준 삶의 지혜와 노하우들은 내 안에 스며들어 일상의 여러 선택의 순간들에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나도 딸들 곁에서 이런저런 잔소리 같은 조언을 하게 되는 걸까. 지금은 귀찮고, 성가실지라도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국물에 너무 힘을 실었나? 자투리 봄동이 국물에 입수하니 너무도 초라해 보인다. 냉장고를 뒤져 봄동의 기를 살려줄 지원군을 찾아낸다. 청경채 두 뿌리. 그래, 너로구나. 깨끗이 씻은 청경채를 손질해 봄동 사이사이 초록빛 힘을 보탠다. 대파는 흰 뿌리 부분만 송송 썰어 넣는다. 초록과 황톳빛 사이에서 자기만의 존재감을 드러내길 바라며. 다진 마늘 살짝 넣고 한소끔 끓여내자니 가족들이 하나, 둘 주방을 기웃거린다. 뜨끈한 집밥의 위안이 필요했던 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봄동 된장국에 총각무와 김. 집밥 힐링을 외친 것 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한 상차림이다. 급히 든든한 식탁 지킴이, 달걀을 소환한다. 급할 땐 달걀, 너만 한 게 없지. 코인 육수 퐁당 담가 육수를 끓여내는 동안 달걀 다섯 알을 풀어 계란찜을 준비한다. 계란물에 파 듬뿍, 연두 한 바퀴, 참기름 두 바퀴 둘러놓으면 계란찜 준비 끝. 코인 친구 덕분에 3분 만에 구수하게 우러난 육수를 계란물에 붓고 전자레인지 데우기 6분을 세팅한다. 그러다 문득 지난밤 해동 시켜놓은 코다리가 떠올랐다. 아니, 너를 잊고 있었다니! 앞뒤로 약불에 구워내기만 하면 훌륭한 메인 반찬이 되어줄 너를. 계란찜이 익어갈 6분은 코다리 익히기에도 딱 알맞은 시간. 덕분에 알록달록 푸짐해질 상차림을 상상하니 콧노래가 나오고, 어깨가 펴진다.
곧 한 상 차려질 아점의 최최최종본. jpg를 떠올리자니 아침도 거르고 잠시 사무실에 나간 신랑이 걸렸지만, 더 이상 지체했다간 청소년들이 배달 어플을 켜고 마라탕 시위를 시작할지 모른다.
“얘들아, 밥 먹게 준비하자!”
계란찜과 코다리가 익어가는 사이에 딸들이 식탁을 닦고, 수저를 놓고, 각자 먹을 만큼 밥을 퍼온다. 그동안 나는 총각무와 김장 김치를 소담히 썰어 담는다. 노오란 작은 언덕 봉긋이 솟아오른 계란찜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코다리 양념 구이를 상 한가운데 놓고 나니 제법 그럴듯하다.
“밥 먹자!”
“잘 먹겠습니다!”
“크으으으으!!”
“캬!!”
첫 술은 셋 다 된장국으로 향했다. 뜨끈한 국물 한 입 떠먹으니 목구멍을 넘어가는 시원함에 ‘ 아재적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집에 돌아왔구나. 비로소 즐거웠던 여행이 제대로 마무리 되는 기분이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 했던가. 이번 여행에서도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딸들과 함께 따듯한 집밥 앞에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과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신랑까지 함께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늦은 시간까지 먹고 잔 다음 날은 공복 시간을 길게 갖고 싶어하는 그의 결정 또한 존중하기로 한다.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집밥은 위로와 사랑의 기억으로 몸과 마음에 새겨진다 믿는다. 몸이 기억하는 집밥의 따사로움을 품고, 이제 나는 내가 차려낸 별거 아닌 집밥도 맛있게 먹어주는 딸들과 신랑을 보며 힘을 얻고 위로 받는다. 오늘도 별일 없는 보통의 하루를 잔잔히 함께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한 끼의 밥이 우리 가족이 남은 겨울을 씩씩하게 뚫고 나갈 수 있는 갑옷같은 든든함이 되어준다면. 조금은 과장되지만 기분 좋은 바람을 안고 다시 숟가락을 든다.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집으로 불러서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어져요. 엄마가 입원하셨을 때도, 코로나에 걸린 이웃들이 고열로 힘들어할 때도, 친한 언니가 방사선 치료를 받았을 때도 직접 만든 반찬을 나눔하며 마음을 전했었지요. 고향을 떠나 타지인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는 후배들을 생각하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짠해져서 집으로 초대해 밥 한끼 같이 먹곤 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집으로 초대해 갓 지은 집밥 함께 나누고픈 얼굴들이 떠오르네요. 맘이 헛헛한 날, 엄마 밥이 그리운 날엔 언제든 문 두드려주세요. 따끈한 밥 한 끼,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