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방정

by twinkle twinkle

"거실에서 조용히 있어.

이 방에는 들어오면 안 돼. 알았지?"

남편은 두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나를 작은방 으로 불렀다.

"자기야! 준비 다 했으면 빨리 와."
작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평소 5~6인용 책상이 놓여있는 넓지 않은 방이다. 남편은 그 큰 책상을 한쪽 구석으로 밀었다.

대신 책장 앞에 작은 책상을 하나 가져다 두고

캠핑 때 사용하는 LED등을 스탠드에 걸어 환하게 켰다. 구석으로 밀어둔 큰 책상에는

노트 북과 거치대에 고정된 아이폰이 있었다.
남편은 큰 책상에, 나는 작은 책상에,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준비됐으면 말해."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000입니다
.....
.....
'좋아요'와 '구독' , '알림설정'까지~

다음에 다시 만나요]]




입이 방정이었다.

남편과 TV를 보고 있었다.

한 프로그램에 병원에 다녀온 뒤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지급을 안 해준다며 불만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진짜 저렇게 안 주기도 해?"

남편이 물었다.
"아니지~ 약관에 부합하지 않으니까 지급이 안 된거지. 보험회사는 약관 토씨 하나 가지고도 해석이 달라진다니깐."
"그래? 일반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모르지. 그래서 내가 콜센터에서 근무할 때

왜 보장 안 해주냐고 계속 욕 들어먹은 거잖아.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하면 보장된다고 말해주고 싶어도 다 녹취가 되니까 말해줄 수가 있어야지."
순간 남편 눈이 반짝였다.
"아 그렇네. 자기 콜센터에서 오래 일했으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거 많이 알고 있을 거 아냐."
모른다고 했었어야 했다.


"그치~ 내가 또 탑을 찍었으니까 잘 알지."
"그럼 아까 티비처럼 설계사들이

잘못 알려주는 경우도 있어?"
지금이라도 기억이 안난다고 했었어야 했다.


"엄청나지. 보장만 물어보면 다행이게.

아예 설계사들이 전화해서 고객 바꿔줄 테니까

신상품 설명 해주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 진짜 웃기지."
"이거네 이거야. 자기야, 우리 이거로 유튜브 찍어보자. 이런 거는 보험금 받을 수 있고,

서류는 어떤 거 있어야 하고, 뭐 이런 것들 있잖아."
못 한다고 했어야 했다.


"에이, 그런 걸 사람들이 볼까?"
"당연하지. 자기한테는 쉽지만 사람들한테는 어려운 거잖아. 거기에다가 팁같은 걸 같이 주는 거지."
"올~좋은데. 그럼 이제 나도 유튜버 되는 거야? 오예~"



그날 이후 우리 집 작은 방은

갑자기 스튜디오가 되었다.

남편은 촬영 감독이 되었고,

나는 유튜버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은 장비 담당, 나는 말 담당이었다. 처음 몇 편은 꽤 순조로웠다.

'보험금 청구할 때 꼭 필요한 서류',

'많이 물어보는 보험금 질문',
'병원 다녀온 뒤 바로 해야 하는 것들' 같은 내용이었다.
촬영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말이 꼬이기도 하고,

같은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찍기도 했다.

그래도 영상 하나가 완성되자 둘 다 괜히 신이 났다. 남편은 편집을 하며 말했다.
"이거 잘 되면 우리 구독자 10만 가는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나 실버 버튼 받는 거야?"

아직 구독자는 10명대였다.

그중 네 명은 가족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영상을 몇 개 찍다 보니 점점 말이 조심스러워졌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는 분명히 떠올랐다.

'이럴 때 이렇게 하면 보험금 받을 확률이 높다.'

'이 경우는 약관상 이렇게 해석된다.'
콜센터에 있을 때도 속으로만 삼켰던 이야기들을 하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막상 카메라 앞에서 입을 열었다가도 멈칫하게 되었다.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누군가는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도 있지만,

법적으로 애매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콜센터에서는 녹취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면, 유튜브에서는 공개라는 이유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조심해야 했다.

결국 영상 속 나는 점점 평범해졌다.
누구에게도 문제되지 않을 이야기들만

골라 말하게 되었다.


"자기야… 이거 너무 교과서 같은데?"

편집을 하던 남편이 말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교과서가 아니라 '팁'이라는 걸.
하지만 그 팁은 생각보다 쉽게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몇 편을 더 찍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계속 걸렸다.


말하고 싶은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조회수도, 의욕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느 날은 촬영 준비를 하다가 그냥 불을 꺼버렸다. "오늘은 그냥 쉬자."
남편도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의 유튜브 채널은 조용히 멈췄다.
정확히 몇 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열 편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작은 방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큰 책상은 다시 가운데로 나왔고,

LED 조명은 캠핑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가끔 TV에서 보험 이야기가 나오면

남편이 장난처럼 말한다.
"자기야, 그거 유튜브로 찍었어야 했는데."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았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알고 있어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우리의 유튜브는 시작은 거창했지만,

열 편도 채우지 못한 채 조용히 끝나버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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