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어머니 제발 그 봉다리 좀 그만 만져요"
옆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잠에서 깼다.
손으로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3시.
몇 년 전 교통사고로 허리 디스크가 터졌었다.
허리 통증이 다리까지 내려왔다.
당시 논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터라
수술을 한다고 시간을 빼면
다시 잡아야 할 보강이 눈앞에 뻔히 보였기에
엄두가 안 났다.
참다 참다 결국 걷지 못할 정도가 되어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로도 2주 동안 입원을 해야 했다.
오랜만의 휴식이라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2인실을 원했지만 자리가 없어 4인실을 배정받았다.
312호.
병실에는 58세, 73세 아주머니 환자와
90세 할머니 환자가 계셨고
나는 58세 아주머니 환자 옆 침대를 쓰게 되었다
58세 환자는 73세 환자한테는 "언니 언니",
90세 환자한테는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나는 입원해서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그 병실의 막내가 되어 "00아"가 되었다.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를 돕고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312호 공동체가 되었다.
할머니 환자는 아침밥과 점심밥, 점심밥과 저녁밥 사이에 간혹 입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럴 때면 침대 옆에 있는 캐비닛 가장 아래 칸에서 까만 봉투를 슬며시 끄집어내신다.
살짝 묶어두었던 봉투를 열고 봉투 속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사탕, 캐러멜 등을 꺼낸다.
하나를 까서 입속에 쏙 넣고 오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312호 식구들에게도 하나씩 나누어 주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까만 봉투의 양쪽 손잡이를 두 손으로 나누어 잡고
한 바퀴 빙 돌려 묶은 후
다시 캐비닛 가장 아래 칸에 집어넣는다.
입원하고 얼마쯤 지났을까.
누워있던 할머니 환자가 갑자기
뭐라고 중얼중얼 말을 하다가
"여가 어데요?" 라고 묻는다.
58세 환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고 어머니, 왜 그런디야! 여가 어딘지 모르겄어?"
"몰라요 몰라요"
58세 환자가 다시 한번 묻는다.
"어머니 내가 누구여. 알아보겄어?"
"첨 보는 것 같은디..누구요?"
할머니 환자의 처음 보는 모습에
312호 식구들은 모두 놀랐지만
잠시 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할머니 환자에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8시쯤 이른 잠자리에 들었던 할머니 환자는
어느샌가 일어나 혼잣말을 한다.
"네. 맞아요. 맞아. 저예요 저."
그러더니 주섬주섬 캐비닛에서
검정 비닐봉투를 뒤적거리다, 침대에 앉았다를 반복한다.
작년 폐결석으로 입원하셨던 아버님이 떠올랐다.
남편 말에 따르면 아버님이 입원 도중
별안간 손까지 휘휘 저어가며
"먼저 가셔요. 나는 더 있다가 갈라니깐." 하셨다는 것이다.
놀란 남편은 아버님을 흔들며 불렀고 아버님은
"야, 내가 죽으려나 보다 자꾸 죽은 이모가 와서 같이 가자 그런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아버님의 증상에 대해 문의하던 남편은
한 간호사에게 이런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입원환자분 중에 000환자님처럼
섬망 증세를 보이는 분들이 종종 있으세요."
"섬망이요?"
생소한 단어에 남편이 되묻자
간호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대체적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많이 볼 수 있는 증상인데요.
그게 아니더라도 000환자님처럼
연세가 좀 있는 분들은
'혹시 내가 잘못되면 어쩌지'하는 불안 때문에
정신력이 약해져서 섬망 증세가 나타나기도 해요.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간호사는 자신에게 섬망 증세에 대해 말했던
환자 대부분은
자신과 친했던 사람이나 먼저 돌아가신 가족들이
자신을 데리러 왔다고 하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할머니 환자는
전화로 택시를 부르더니 서둘러 퇴원했다.
나도 2주 동안의 짧고도 긴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수업 준비를 하려 책을 읽다가
문득 병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밤새 까만 봉다리에서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를 찾아 온,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분께
할머니는 무엇을 주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