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은 하지 말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했다.
특히 친한 사람과는 더더욱.
나는 그 말을 크게 믿지 않았다.
사람들이 동업에 실패한 이유는 그 사람들의 문제일 뿐,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친하게 지내던 동생과 함께 초등학생 교과 학원을 시작했다.
우리는 반씩 투자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공평하게 시작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작은 생각과 달랐다.
약속했던 투자금은 제때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우선 내 돈으로 학원을 열었다.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는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좋게 넘기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믿었다.
건물 재계약을 2년으로 연장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동업자 동생이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학원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수업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하지만 그보다 먼저
“축하해.”
라는 말을 했다.
동생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반응이 예상과 달랐던 것 같았다.
그때는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동생은 출산 후 3개월만 쉬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동안은 다른 선생님을 쓰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출산 이후, 새로 온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상한 점을 알게 됐다.
그 선생님은 자신이 잠시 오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근무하는 선생님인 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동생은 나에게는 돌아온다고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떠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학원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고,
수업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운영은 점점 엉켜갔다.
그리고 그 시기에 COVID-19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줄어들었고, 버티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결국 학원은 문을 닫게 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미 2년 재계약을 한 상태였고,
학원을 운영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임대료는 계속 나갔다.
동생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폐업 절차, 철거, 정리.
남은 일들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남은 건 금전적인 손해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크게 남은 건 관계였다.
동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편하게 웃고 이야기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어딘가 어색해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한다.
동업은 원래 안 되는 거라고.
정말 동업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내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던 걸까.
혹은 믿는 방식이 달랐던 걸까.
지금도 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때의 선택이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것이
조금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