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시간에 쫓겨 빠르게 걷고 있었는데
길가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친구였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서로 놀란 얼굴로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나중에 한 번 보자.”
급하게 약속만 잡고 헤어졌다.
며칠 뒤 다시 만난 친구는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하던 가게를 정리하고 보험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보험… 뭐가 있었지?’
‘하나 정도는 들어줘도 괜찮으려나…’
친구의 말이 끝날 즈음
이미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끝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보험증권을 꺼냈다.
한 장, 두 장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콜센터에서 일했던 시절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나씩 넣어둔 것들이었다.
‘굳이 더 들 필요는 없겠네…’
그래도 지출을 조금만 나누면
아이 보험 하나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미안한데 큰 건 아니고
애기 보험 하나 정도만 가입해주고 싶어.”
친구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보험은 괜찮다며 다른 부탁을 해도 되냐고 했다.
설계사 시험을 봐달라는 말이었다.
순간 멈칫했다.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나 지금 일하고 있어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내가 가능한 시간으로 맞춰줄 수 있다며
두 달만 교육받고 시험만 보면 된다고 했다.
거기에 생각보다 큰 돈까지 얹어졌다.
잠깐 고민했다.
보험 자체는 낯설지 않았고 친구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두 달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보험회사에 처음 출근하게 됐다.
처음 2주는 시험을 위한 교육이었다.
계약자, 피보험자, 수익자.
다른 교육생들은 헷갈려 했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단어들이었다.
오히려 문제가 쉽게 느껴졌다.
2주 뒤 시험을 봤고
60점만 넘으면 되는 시험에서 나는 90점을 넘겼다. 일부는 합격을 했고, 일부는 떨어졌다.
합격한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보험상품 교육.
강의를 듣는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아, 이거… 그때 많이 물어봤던 건데.’
‘이건 안 된다고 설명했었지.’
콜센터에서 일하던 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가끔은 강사의 설명이 틀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속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설명하니까 고객들이 전화해서 따지는 거지…’
나는 설계사가 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고객이나 상담원 쪽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시간은 금방 흘렀다.
약속했던 두 달이 끝나갈 무렵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할게.”
친구는 난처한 얼굴로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했다. 아침에 출근만이라도 해달라고.
그렇게 몇 번 더 출근을 하게 됐다.
아침 조회 시간.
새로운 보험 상품이 나오면
지점장이 앞에 서서 설명을 했다.
해당 보험 상품의 장점, 어떻게 말하면 잘 팔리는지, 어떤 고객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어딘가 빠져 있었다.
콜센터에서는 신상품이 나오면
상담원들에게 따로 시간을 내서 하나하나 이해시켰다. 왜 되는지, 왜 안 되는지.
그래야 고객의 질문에 답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그 과정이 없었다.
설계사들은 상품을 ‘이해’하기보다는
‘판매하는 방법’만 배우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이상하게 납득이 됐다.
예전에 콜센터에 있을 때
왜 그렇게 많은 설계사들이 전화를 해서 물어봤는지.
왜 어떤 설명은 고객에게 다르게 전달됐는지.
그때는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다.
‘어떻게 저걸 모르지?’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와 보니 알 것 같았다.
모르는 게 아니라 배운 적이 없었던 거였다.
같은 일을 두고도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니 보이는 게 조금씩 달라졌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