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할 말이 있는데... 화내면 안 돼.”
“내가 언제 화내는 거 봤어?”
“있잖아.”
조금 전까지는 분명 기뻐서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막상 남편에게 말을 꺼내려니 이상하게도 내가 너무 섣부르게 행동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머뭇거려진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나 오늘 레고 블럭방 계약하고 왔어.”
“블럭방? 갑자기?”
“아니, 진짜 좋은 조건으로 가게가 나온 게 있어서 급하게 계약하느라고 자기랑 상의할 시간이 없었어.”
“뭔가를 하는 거는 자기가 잘 알아서 했겠지. 믿어.”
남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어들어 가던 목소리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그치? 역시 자기는 그렇게 말해 줄줄 알았어.”
“믿는데... 문제는 뭐냐면. 자기 지금 학원 오픈 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커졌던 목소리는 다시 기어들어 갔고,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다.
남편은 중요한 순간에 항상 내 말문을 막는다.
“진짜로 계약하고 온 거야? 장난이지?”
나는 남편에게 뒤통수만 보인 채로 입을 꾹 닫았다.
남편은 내 몸을 붙잡아 돌리더니 되물었다.
“말 좀 해봐. 진짜로 계약한 거야?”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아니, 그럼 학원은 어떻게 하고, 블럭방은 어떻게 할 건데?”
“학원은 평일에 하니까 나 끝나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생 쓰고,
퇴근하면 내가 가서 하고, 주말에는 우리가 하면 되잖아.”
“자기야, 사업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처음에는 무조건 사장이 해야 하는 게 맞는 거고,
시작하기 전에 알아봐야 할 것도 얼마나 많은데.”
“이번에는 조건이 진짜 좋다니깐. 나중에 나한테 숟가락 얹으려고 하지 말고 잘 들어봐.”
남편도 마음이 달라질 거라고 확신했다.
1년 전쯤 만나게 된 동네 친구가 있었다.
동갑이라 그런지, 마음이 잘 맞아서 그런지, 어릴 때 만난 사이처럼 금방 친해졌다.
그 친구의 시부모님은 우리 동네에 건물을 한 채 소유하고 있었다.
친구는 그 건물 1층에 있는 점포에 한 칸을 임대받아 커피숍을 운영했다.
옆 칸에는 레고 블럭을 조립하고 놀 수 있는 블럭방이 있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친구의 아주버님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바로 이곳이 그 블럭방이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처음 블럭방이 생겼던 것은 5~6년 전쯤이라고 했다.
전 주인이 가게를 그만두려고 하자 원래부터 백수였던 아주버님을 위해 시부모님이 사 주신 거라고 했다.
가게를 인수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아주버님이 하기 싫다고, 가게 문도 잘 열지 않았다고 한다.
권리금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상가 계약만 하고 들어올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어머님이 오늘 부동산에 내놓으신다고 했는데 너한테 미리 말해보는 거야.
완전 거저먹기나 다름없는 거라 아까워서.”
“근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 임대료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아무리 그래도 임대료는 나오지.
만에 하나 안 나오더라도 네가 투자한 돈이 없으니까 마이너스 칠 일은 없는 거고.”
크지 않은 가게인데 임대료가 70만 원이나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내 투자 비용을 들이지 않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좋은 조건이 맞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남편을 쳐다봤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게 아닌데 왜 이러지 싶다.
“여보?”
“음. 자기 말대로 정말 좋은 기회인 것 같긴 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상황은 맞추면 되는 거지.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잖아.”
“자기 학원 오픈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잖아.
거기 신경 쓰기도 바쁜데 이거까지 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
그러면 이도저도 안 될 수도 있어.”
남편 말도 다 맞는 말인 것 같아 더 짜증이 났다.
“왜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여기저기 다 대박 날 수도 있지.”
“자기 말도 맞는데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잘 생각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계약금만 버리는 게 훨씬 나으니까
여기서 그만두는 게 제일 나을 수도 있어.”
“아니. 나 잘 생각해 본 거라고.
완전 공짜로 장사하는 건데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냐고.
자기한테 괜히 말했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내 결정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짜증 섞인 말이 나갔다.
남편은 내 쪽으로 엉덩이를 쭉 끌어당겨 앉더니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원래 생각이 많아서 결정 잘 못하는 거 알잖아.
그래서 그러지. 자기가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만약에 잘 안되면 열심히 벌어서 갚으면 되지.
내가 회사 그만 안 두고 열심히 다닐게”
나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알았어.”
내 목소리는 퉁퉁거렸다.
나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2주 만에 블럭방을 오픈했다.
너무 좋은 기회야
VS
섣부른 판단이야
과연 누구의 말이 옳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