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친구가 너 알바자리 하나 구해줬는데 하루에 일당이 10만 원이래. 할거지?”
“10만 원? 왜케 많이 준대? 사기 이런 거 아니야?”
“아니, 그런 거 아니고 선거사무소 일 하는 거래. 딱 보름밖에 못 한대.
근데 아줌마가 너 34살이라고 했다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엄마,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거 아니야? 1~2살도 아니고... 아줌마는 왜 그렇게 말했대?”
“그렇게 말해야 일할 수 있으니까 엄마 친구가 그랬겠지. 암튼 이따 전화 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당시 내 나이 38살이었다.
30대 후반으로 넘어간 나를 30대 초반으로 말해놨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하루 일당 10만 원을 생각하면 놓치기 아까운 자리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은 만나보기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침에 엄마가 말했던 그 알바가 떠올라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0빈씨죠? 김 여사님 소개로 전화드렸어요. 00당 간사 김00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아침에 말씀 전해 들었어요.”
“0빈씨, 목소리가 예쁘네요. 나이보다 어리게 들리기도 하구요.
00일 9시까지 사무실로 나오실 수 있어요? 그때 나오면 하실 업무 말씀드릴게요.”
다행히 내 나이에 대해 묻는 일은 없었다.
웃으며 전화를 잘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걷다가 멈춰선 내 발걸음은 움직이질 않는다.
머릿속에선 오직 한 단어만 맴돈다.
00당은 나뿐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그리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요 근래 일어난 일로 인해 전국적으로도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상태이다.
그런데 내가 그 당의 옷을 입고 그 당의 후보를 홍보하기 위해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어야 한다니...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 같아 겁이 났다.
일당 10만 원은 정말 큰돈이었다.
결국 제날짜에 맞춰 00당 앞에 갔다.
건물 외벽부터 온갖 사진이며 전단들이 죄다
그 당을 상징하는 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과는 달리 단출했다.
5명 정도의 직원이 앉아 있었다.
그중에 ‘김00’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자리에 찾아가 인사를 했다.
간사님은 사무실 뒤편에 있는 작은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0빈씨, 원래는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사무실에서 일 좀 도와주는 걸로 바꿨어요. 괜찮죠?”
“네.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말에 감사하다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혹시나 내 말에 의아함을 느꼈을까 싶어 간사의 눈치를 보았는데 내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이곳이 00당 00도당 위원장님 계신 곳이거든요.
일단 아침에 오면 위원장님 방에 신문 앞면 보이게 놓아 주시구요.
제가 이따가 명단 드릴 테니까 10시부터는 전화 작업 부탁드려요.
혹시 전화 업무 해 보신 적 있어요?
“네. 예전에 콜센터에서 근무했었어요.”
“그럼 잘 아시겠네. 전화해서 00당에 호감인지 비호감인지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
그리고 위원장님 방에 다른 위원님들 많이 오실 테니까
중간중간 확인해 가면서 손님들 오시면 차 좀 들여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전화를 걸 일이 막막했다.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호감, 비호감 여부를 확인하라고?
나는 전화를 안 걸어 봐도 알겠는데 왜 걸어서 물어보라고 하는 거지?
명단을 받기도 전에 이미 욕 들을 걱정으로 한숨이 앞섰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20살이 된 사무실의 막내 여직원이 고객 명단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분들은 다 여기 당원분들이라 대체로 호의적이실 거예요.”
라고 말하며 방긋 웃어주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100%로는 아니더라도 98%는 00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라고 생각하며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첫 번째 전화를 걸었다.
머리에 ‘쿵!’하고 지진이 난 것 같았다.
정말 호의적으로 통화에 응해주었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정치에 임해주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그래. 한 번쯤은 우연히 그럴 수도 있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험한 소리를 듣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반응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찝찝한 기분으로 두 번째 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보름 동안 수많은 사람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 당을 오랫동안 지지해 왔지만, 이번 일로 인해 더 이상 믿음이 깨졌다.”
“오랜 시간 동안 00당원을 해 오고 있지만 이렇게 힘들 때일수록 더 힘을 내야 한다.”
“항상 00당을 믿지만 개혁이 필요하다.”
등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달랐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난 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일간의 아르바이트가 끝이 났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에 비교하자면 내가 하는 일에 비해 일당이 너무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라
일부러 일을 찾아서 할 정도였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통장에 150만 원의 급여가 입금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딘가에 속해있었다는 소속감이 사라지며 묘한 허전함이 남았다.
다시 내일부터는 갈 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