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7시.
내 귀를 두드리는 진동에 눈을 떴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일과가 펼쳐진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딸과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에 버스를 탔다.
"00빈씨 여기 한0K00입니다.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내일 출근해서 인수·인계 받고 근로계약서 작성하시면 되겠습니다."
어제 오후에 회사 담당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연신 허리를 굽혀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저녁에 집에 온 남편은 나를 '대단하다'라고 치켜세웠고,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을 떨었었다.
30분쯤 걸려 회사에 도착했다.
사무실 문 앞에서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사무실 안에는 남자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었고, 그 시선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차 싶어 뒤돌아 나가려던 찰나, 어제 면접관이었던 소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쪽은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된 00빈씨에요. 앞으로 계속 볼 사이니 인사들 나누세요."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소장님, 현 경리와 함께 인수·인계 절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부터 정식 근무로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현재 경리는 이번 주까지만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도와준다고 했다.
근로계약서는 오후에 작성하자고 했다.
현재 경리는 결혼하며 퇴사한다고 일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쉽게 알려주었다.
사무실에 있는 남자 직원들은 다들 외근직이어서
거의 혼자 사무실에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되니 불편해하지 말라고도 했다.
곧 이 회사가 한0의 자회사가 되니 연봉이며 복지도 좋아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제 소장님께 들은 말과 같았다.
기대감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진짜 열심히 오래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업무는 한글, 엑셀, 엑세스 등 전반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여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5시가 조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소장님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자며 자리로 불렀다.
소장님은 서류를 보며 이런저런 설명을 했고 나는 서류에 한장 한장 싸인을 하고 있었다.
따르릉
책상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시만요'하며 소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마친 소장님은 서둘러 자리에 돌아오더니 내가 작성하고 있던 근로계약서를 급하게 챙겼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소장님을 바라봤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의 소장님이 어색하게 의자에 앉았다.
"지금 본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한0 자회사 결정이 확정되어서
채용을 미뤄야 할 것 같은데...어떡하죠? "
"네?"
"오늘은 일단 퇴근하시고 다시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아...그럼, 언제쯤 연락 주시나요?"
"일단 본사하고 다시 연락해 보고 전화 드릴께요."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전화해 볼 용기도 없었다.
처음에는 연락을 기다리던 마음이 취업을 못 했다는 아쉬움이 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내가 하루 동안 일했던 그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하루 일당을 달라고 연락을 해야 하나?'
이 말을 하려고 연락하기엔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하루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경단녀로서 내 첫 직장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 버렸다.
하루만,
아니,
몇 시간 만이라도
먼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어쩐지,
처음부터 너무 운이 좋다 싶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