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에서 위로를 배우다.

by twinkle twinkle


보건소는 처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안내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결핵, 장티푸스, 에이즈, 같은 검사에 자꾸만 심장이 쿵닥거리는 까닭은 왜일까?

무슨 검사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한 진료실에 들어가니 담당 선생님이 기다란 면봉을 주며 말했다.

“이거 절반까지 항문 속으로 넣었다가 빼서 가지고 오세요.”

“네?”

충격과 공포에 빠진 나와 달리 선생님은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네.”

한참 동안 화장실에서 덩그러니 있었던 것 같다.

“보건증은 일주일 정도 후에 찾으러 오시면 돼요.”



얼마 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아주머니를 만났다.

“애기 엄마, 혹시 일해?”

“아니요. 저 그냥 집에 있어요.”

“그래? 잘됐네. 그럼, 학교 급식 아르바이트 한 번씩 자리 나면 부를 테니까

보건증 좀 만들어 놓고 있어. 알았지?”


보건증도 주민등록증 발급받는 것처럼 신청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런 과정이 있을 줄이야.

음식 관련 일을 할 땐 보건증 발급이 필수라고 한다.

보건증이 나오기 전까지 혹시 내가 에이즈, 결핵에 걸린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쓸데없는 상상이었다.


한 중학교로 급식 아르바이트를 가게 되었다.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면 퇴근이다.

너무 일찍 출근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퇴근 시간이 마음에 들었다.

출근하자마자 열 명 남짓한 급식실 직원 이모들께 인사를 했다.

평균 나이 50대 후반이었던 이모들은 당시 30대였던 나를 보고 애기가 왔다고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다들 사이가 좋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느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역시 쉽지 않다는 걸.

작은 말 한마디에도 분위기가 달라졌고, 사소한 실수는 곧바로 지적이 되었다.

누군가는 묵묵히 일했고, 누군가는 날카롭게 지시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눈치를 보며 움직였다.

‘역시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일하기 힘든 걸까?’ 보건소에서의 민망함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툰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당연함’은 그곳에서 통하지 않았다.

감자를 깎는 속도도 느렸고, 설거지하다 그릇을 잘못 쌓아 다시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안 돼.”

“이건 아까도 말했잖아.”

말은 짧았고,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손은 퉁퉁 불어 있었고, 마음은 더 부어 있었다.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가 고개를 들었다.


배식대에 섰다.

위생모를 깊게 눌러쓰고 국을 떠 주는데 한 남학생이 식판을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많이 주세요.”

나는 순간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 다른 사람을 부르는 건가 싶어서. 하지만 아이의 눈은 분명 나를 향해 있었다.

“선생님, 오늘 맛있어요.”

환하게 웃는 얼굴. 그 한마디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누군가에게 나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그렇게 불러주었다.

서툴다고, 느리다고 구박받으며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그 순간 스르르 녹아내렸다.

내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의 점심이 되고, 그 하루의 한 부분이 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실감 났다.

여전히 힘들었지만, 이유가 생겼다.


급식실 이모 중 한 분이 말했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 있으면 학교 급식실 취직도 가능해.”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잠깐 스쳐 가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불러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자꾸만 마음을 두드렸다.

결국 나는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더 이상 서툰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보건소 화장실에서 면봉을 들고 서 있던 그날의 나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내 마음의 방향을 바꿔 놓을 줄은.


그곳에서 나는 단순히 요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리고 마음을 담은 음식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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