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진흥원으로 가는 길에 큰 플라타너스가 있다.
한여름 우리에게 그늘을 주어 마을 사람들을 끌어 모이게 하여 이 말 저 말들이 오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나무 아래에는 없는 게 없는 모든 걸 파는 마술사가 사는 전방이라고 불리는 가게도 있다. 당연히 온 동네 사람들의 아지터이기도 하고. 10살 내겐 꿈의 가게이기도 하다.
플라타너스 밑에는 전방 마술사 아저씨가 뚝딱 만들어 놓은 평상이 있다. 그 평상의 주인들은 동네 할아버지들! 삼총사 할아버지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평상에서 장기를 두고 계시고 할아버지들 옆에서 비 오는 날이면 둘셋 모인 할머니들이 어떤 날은 김치전, 호박을 썰어 넣은 감자전을 부치기도 하신다. 어김없이 오늘도 평상을 차지한 할아버지들이 내기 장기를 두시며 한 수 물려라! 못 물린다. 좋다 싫다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들려온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으신 박 할아버지! 88살이신데도 허리 구부러진 것 없이 하얀 삼베옷을 입으시고 어험 부채질하며 내가 이 마을 어른이다를 손수 보여 주는 분이다. 박 할아버지 옆에는 은혜 외할아버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키가 많이 작으시고 머리는 대머리이지만 아직도 동네 아저씨들에게 팔씨름으로는 청년 못지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박 할아버지 옆에는 항상 할머니가 계신데, 요즘 치매로 정신이 오락 가락 한다고 엄마가 말하였다.
여전히 플라타너스 아래 전방에서 밀가루를 하나 산 할머니들이 시끌시끌한 평상옆에서 수제비를 뜨신다. 멸치 육수 내어 감자, 호박, 양파를 썰어 넣고 팔팔 끓여 삼총사 할아버지에게 드린다.
“오늘 같은 더위에 웬 수제비야?” 삼총사 할아버지 중 제일 마른 빼빼 할아버지가 잔소리를 한다. 옆에 계시는 박 할아버지와 은혜 외할아버지는 국물 한 모금 드시더니 시원하다고 최고다 하신다.
“뭐야? 왜 이렇게 짜?” 더운 날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짜다 하니 할머니들은 이상하여 다들 숟가락으로 냄비 속 국물을 떠먹어 보는데 “왝 어? 왜 이리 짜지?” 고개를 갸웃해 본다.
마지막으로 간을 본 할머니가 박 할아버지의 할머니인데 더 이상 다른 말들은 하지 않는다.
짜다고 한 빼빼 할아버지에게 물 한 사발을 건넬 뿐이며 박 할아버지는 맛있다고 한 그릇 다 비우며 만들어 준 할머니들에게 고맙다 하신다. 할머니들 곁에서 손가락만 만지작만지작 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박 할아버지의 눈빛이 슬프다,
박 할아버지의 아내가 치매 증상을 보인다고 동네에서 신경 쓰라 하였다. 마을 이장네 집에서 어른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의견도 나눈다는 걸 어린 우리도 알고 있었다.
은혜랑 현미랑 우리가 동네를 시끄럽게 떠들어 대도 자두나무의 자두를 딴다고 가지를 꺾을 때에도 “다친다. 조심해 다들!”이라고 하시지 혼을 낸 적이 없다. 이런 천사 할머니가 치매라고 하니 은혜랑 우리도 충격이었다.
“야 할머니가 우리 못 알아보면 어쩌지?”라고 내가 은혜에게 물었더니 ” 현숙아! 할머니 돌아가시는 거야?”라고 되레 내게 묻는다.
“천사 할머니 돌아가시면 박 할아버지 어떻게?” “불쌍해”
“현숙아! 하드 사 먹자! 응?” 학교 갔다 오는 길 우리들도 어김없이 전방으로 몰려가 깐돌이 하드를 하나씩 입에 물고 플라타너스 아래 털썩 앉으며 더위야 물러가라 물러가라 한다.
재빨리 하드 하나를 다 먹은 은혜는 다시 전방 마술사 아저씨한테 가서 이번에는 서주 우유 하드를 들고 계산을 한다.
“그만 먹어! 배 아파!” 전방 마술사 아저씨 다그치지만, 은혜는 고개만 가로저을 뿐 입에는 하드가 벌써 반 정도 들어가 있다.
“어? 천사 할머니! 안녕하세요?” 평상에 앉아 계시니 천사 할머니를 보고 난 너무나 반가워 인사를 한다.
천사 할머니의 반응이 없어 못 들었나 싶어 난 다시 큰 소리로 인사를 해 본다.
“할! 머! 니! 안녕하세요!”라고 너무 크게 인사를 했나 살짝, 후회를 할 참에 천사 할머니가 내게 “누구세요?”라고 말을 하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내 옆에서 하드 먹다가 들은 은혜랑 현미도 놀라 천사 할머니를 쳐다보고 난 다시 “할머니! 현숙이예요 현숙이! 의성댁 막내딸이요!”라고 해 보지만 눈에 힘이 없는 천사 할머니는 다른 곳을 쳐다본다.
“박 할아버지! 할머니 왜 그래? 엉?”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박 할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 주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엉엉” 다독다독 등을 두드리는 박 할아버지의 손이 뜨겁다.
한바탕 크게 울고 온 나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전방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할머니가 치매가 왔대. 점점 기억력도 없어질 것이고 누가 누군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거야! 지금은 가끔 혼돈이 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박 할아버지도 못 알아볼 거야”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엄마 옆에서 난 눈물만 흘렸다. “어른이 되면 다들 그렇게 되는 거야? 엄마! 엄만 그러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철없는 나를 엄마는 안아 주었다. “혹시 현숙아! 할머니가 오늘처럼 그래도 너무 놀라지 말고 친구들이랑 더 할머니에게 따뜻하게 아니야! 평상시처럼 똑같이 해드려 알았지? 그러면 가물가물 하다가도 기억날 거야!” 놀란 나를 엄마는 다시 한번 꼭 안아 주시며 당부하신다.
할머니 천사 할머니 저를 현숙이를 기억해 주세요
*빨강 운동화만 떠내려가는 게 아니야*
플라타너스 아래로 좁고 길게 난 길을 내려가 보면 읍내 강이 나온다.
그 강가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빨래터이기도 하다. 집 마당에서 빨래를 해도 되는데 세숫대야에 빨랫감 한가득 담아서 강가로 모여든 아주머니들은 방망이를 들고선 빨랫감이 남편인 양 자식인 양 마구마구 두들긴다. “에구 내가 진짜 못살아” 아주머니들의 18번! “왜? 또 그런데?” 뻔히 그 왜 그런지 서로 알지만 모른척해주는 게 아주머니들의 규칙인가 보다. 옷이 곧 떨어질 것 같아서야 빨래 방망이를 멈추게 되는 거 같다.
하드를 다 먹은 은혜랑 나도 집에 가방을 던져 놓고선 엄마들 흉내 낸다며 세숫대야 들고 선 읍내 강가로 내려갔다. 덥기도 하고 강물에서 술래잡기하다가 엄마가 사준 새 운동화가 떠 내려가는 참변을 당하였다. 아직 더럽지도 않은 운동화를 왜 들고 가서는 새 운동화 한 짝을 떠내려가게 했을까? 잡아 보겠다고 뛰어가 보았지만, 운동화 한 짝은 내 속도 모르고 물 위를 춤추듯이 또 누군가가 떠밀어내듯이 빠르게 빠르게 떠내려갔었다.
“엉엉 엉엉” “내 운동화” 온 동네 떠나갈 듯 울면서 살아남은 운동화 한 짝은 세숫대야와 함께 꼭 잡고서 골목길을 전쟁터에서 패한 장수처럼 걸어오니 같이 간 은혜는 죄인인 양 내 팔만 잡고선 고개 숙인 채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내 옆에서 같이 걸을 뿐이다.
“엄마! 엄마” 대성 통고 소리가 들리니 “무슨 일이니?”라며 놀라 뛰어나온 엄마는 내 모습에 웃기도 어정정 했는지 물어도 대답 없이 울기만 하는 나를 두고 은혜에게 눈짓했다. 재 왜 저러니 ‘ 은혜는 강에서 있었던 일을 아주 작은 소리로 엄마에게 나열했고 다 들은 엄마는 ”어이고 “라며 내 머리를 콩하고 때렸다.” “나중에 엄마 죽으면 그렇게 울어”라며 울고 서 있는 내 모습이 기가 막혔나 보다. “아앙아앙” 난 엄마의 말에 안심이라도 한 듯이 더 크게 어리광을 피우며 울었고 “됐어! 그만해!”라고 엄마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다음에 또 사면되지”라는 엄마의 말에 난 정말 안심한 듯 울음을 그쳤고 옆에 서 있던 은혜도 “휴, 다행이다”라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나쁜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잊지 못할 추억도 많았다. 강에서 물장구치며 놀기도 하고 정신없이 놀다가 거머리에 물리기도 하였고 맞다 한여름 장마 때에는 돼지 키우는 축사에서 폭우로 인해 울타리가 쓰러지는 바람에 키우던 돼지들이 탈출하여 돼지가 둥둥 다리 밑으로 떠내려가고 봄 여름내 가지치고 정성껏 가꾸어 온 과수원 사과가 폭우로 흙탕물이 된 읍내 강 위 동동 떠내려가는 걸 여름에는 꼭 볼 수 있다.
다리 위에서는 그 광경을 안타까워하는 어른들과 그 광경이 우습다고 배꼽 잡는 우리들이 함께 서 있었다.
전방의 마술사 주인! 우리가 전방 주인아저씨를 마술사라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저씨! 소주 주세요. 아저씨 콩나물이요. 아저씨! 깐돌이 하드 주세요. 아저씨 목장갑도요 아저씨 화투 달래요! 아저씨 노란 고무줄도요”
정말 없는 게 없이 아저씨! 하면 아저씨는 마술사처럼 짜잔 하고 내놓으신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 전방인데 어디에 그런 것이 다 숨어 있는지 미로 같은 전방 안에서 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들을 마술사 아저씨는 척척이다.
그 마술사 전방이 한동안 장사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였다.
농촌 진흥원으로 일을 다니시는 아저씨들이 고된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꼭 들려 막걸리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집으로 가는 곳이며 그 술로 인해 아저씨끼리 멱살 잡는 소리도 자주 나는 곳이다. 고된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를 잔 막걸리 소주 한잔에 풀다 보니 여기서는 아저씨들이 대장인 듯 언성이 높아지다 보니 서로 의견 충돌로 인해 몸싸움 마저...
진흥원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아저씨들이 집에 연락도 없이 전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결국 전방 모퉁이 방에 자리를 깔고 앉으셨다. 자리를 깔아다는 건 화투를 치기 시작한 것이지
평상시에 모여 화투 치는 것이면 모르겠으나 그날은 한 달 열심히 일해서 받는 월급날이었다. 집에서 아주머니들은 월급날이라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저씨들은 깜깜한 밤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저씨들이 전방 모퉁이 방에서 화투 치는 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 하면 김치찌개에 넣을 두부 심부름 간 종현이가 모퉁이 방에서 아저씨들이 싸우는 소리가 난다고 집에 가서 종현이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면서이다.
월급 가져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종현 엄마가 그 이야기를 듣고 파출소에 신고를 하였다. 순경들이 모퉁이 방을 급습하여 아저씨들이 현행범으로 파출소로 끌려가면서 한동안 플라타너스 전방은 문을 닫게 되었다.
화투 치는 장소를 제공했다고 장사를 못하게 하였다고 했는데 사실 그것보다도 마술사 주인아저씨 아들이 창피하다고 이렇게 시끄러울 거면 장사하지 말라고 소리소리 질러 한동안 쉬었다고 한다.
우리들의 마술사 전방이 문을 닫게 되자 우리는 30분 넘게 걸어 시장에 있는 전방까지 가게 되었다.
화투 사건이 있은 후 진흥원 다니시는 아저씨들은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와야 했고 마술사 아저씨가 관리하던 평상에는 먼지가 쌓여 있기만 하였다. 장기 두시던 할아버지들은 가끔 평상 한 쪽에 있던 걸레로 쓰윽쓰윽 먼지를 쓸어 내곤 담배를 피우시다가 혀 차는 소리만 낼뿐이었다. 장이요 멍이요 소리가 정겹기만 하였다는데, 김치전 감자전 굽던 할머니들도 땅콩 껍질만 깔 뿐이다.
읍내 강에 내려가 목욕하고 물장구치던 아이들도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좁은 동네 골목길에서만 시끄럽게 뛰어다니게 되었다.
“얘들아! 마술사 아저씨가 다시 문을 열었다.” “뭐라고?”
“전방 문을 열었다고!!”
마술사 아저씨 아들이 서울로 취업이 되어 집을 떠나자마자 아저씨가 전방 문을 열었다고 한다.
제발 부탁이다. 진흥원 다니는 아저씨들이 제발 화투 치지 말고 제발 싸우지 말기를..
그래야 마술사 아저씨의 전방이 계속 열려 있어 30분 이상 걸어서 시장 전방까지 가지 않게 해달라고 제발 빌어 본다.
학교를 갔다 오니 집이 이상하다. 마당도 이상하고 안방도 이상하다. 뭐지 이 기분!
난 은혜 집으로 가서 은혜에게 우리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하였다. 마루에 누워 있던 은혜는 귀찮아했지만, 가는 길에 이상한 점을 이야기하니 셜록홈스 책에 빠져 있던 은혜의 두 눈이 반짝 반짝이는 걸 보았다.
마당으로 들어선 은혜는 내게 묻는다. “처음에 뭘 보았습니까?” “둘째 어떤 점이 이상하다고 느꼈나요?” 난 은혜의 등짝을 내리치며 빨리 들어가라며 등을 밀었다.
“현숙아!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무서워 등을 미는 내게 은혜는 탐정 저리 가라고 작은 두 눈을 크게 퍼 보이며 바쁘게 움직인다.
“없다! 없어 머리가 없어졌어!” “뭐라고?” 난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재봉틀이 없어진 걸 알았다. 마루 한쪽 편으로 있던 엄마의 재봉틀인데, 재봉틀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퇴근 후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 온 엄마에게 “엄마 재봉틀이 없어졌어! 학교 갔다 왔는데 마당도 이상하고 안방도 이상하고 그래서 봤더니 머리가 없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엄마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놀라한다. 재봉틀이 있던 자리에 가보지만 진짜 엄마의 재봉틀 머리가 없다. 도둑이 그것만 들고 튄 것이다. 나무 색깔 재봉틀 집에 청자 색깔에 재봉틀 머리인데 그것만 들고 도망간 것이다. 엄마가 쉬는 날 재봉틀 돌려가며 이불도 만들고 내 치마도 만들어 줬는데 엄마는 없어진 걸 확인하고선 파출소로 갔다.
“김 순경, 보세요 우리 집 재봉틀이 없어졌어요. 재봉틀 머리만 들고 가버렸네요. 제발 좀 잡아주세요!”
“어허 아주머니! 알겠습니다. 자 한번 집으로 같이 가시죠?”
파출소 김 순경 아저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도둑을 찾을 수 있을까?
“아주머니! 요 며칠 아래 동네에서도 도둑이 들었다 하던데요. 아기 금반지 모아둔 게 없어졌다 하던데 이젠 우리 동네인가 보네요.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잡아 봐야지요!”
아래 동네에서도 도둑이 왔다 갔다는 말에 엄마는 김 순경 아저씨의 팔을 잡아 보며 사정한다. “제발 부탁합니다. 그 재봉틀! 돌아가신 친정엄마 것이에요 엄마가 주신 건데!”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해보지만 김 순경 아저씨가 어찌할 수 있을까?
저녁 준비도 못 한 채 엄마는 안방에 이불을 깔고 몸져누웠다. 소중한 외할머니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재봉틀이 없어졌다는 것에 너무 분이 나는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가 낮에 있었던 일을 우리가 이야기하기도 전에 온 동네 사람들로부터 들었나 보다.
“여봐 여보 일어나 밥 먹어야지 대충 김치랑 챙겨 왔어! 애들은 계란도 부쳐 먹이고 일어나 봐” 아버지가 저녁상을 차려 왔다. 많은 반찬은 없었지만,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하시다.
“어찌해요! 친정엄마 거인데 ” “잡아야지 잡고 말고 어서 한술 떠봐! 그래야 잡지”
은혜가 항상 그랬다. 범인은 다시 오게 마련이라고! 하나를 가져갔으면 또 하나를 더 가져 갈려고 다시 온다고 한다.
“엄마! 도둑이 다시 오겠지?” 엄마는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맞아 다시 올 거야 그땐 재봉틀 머리가 무거우니깐 그거 하나만 가져갔잖아! 부엌에 숨겨둔 것들은 못 가져간 거 보니깐 다시 올 거야!” 엄마의 두 주먹에 힘껏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만약 도둑이 잡히면 죽는다.
아래 동네에서 잃어버린 물건이 금반지란 이야기에 엄만 부엌에 구리반지 하나를 두었다. 도둑을 유인하기 위해 밥그릇 위에 보이게끔 두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부엌으로 며칠을 엄마의 모든 신경은 도둑 잡는 데 가 있다.
모두 외출한 것처럼 신발을 다 치우고 엄마는 방망이 하나 들고 안방에 숨어 있기도 하였고 부엌에 가면 다락이랑 연결된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물바가지 들고 기다리고 있기도 하였다. 정말 일주일이 지났을까? 엄마는 도둑과 마주하게 되었다.
부엌에서 다락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부스럭 소리가 들려 문틈으로 보니 웬 낯선 남자가 두리번두리번하고 있다. 엄마는 재빨리 방망이와 물바가지를 들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부엌으로 들어와 찬장을 열어젖히기 시작한다. 이상한 공기를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기를 여러 번 남자가 다시 찬장을 여는 순간 엄마는 다락에서 물바가지를 그 남자에게 던졌다. 놀란 남자가 잠시 머뭇거린 틈에 엄마는 다락에서 나와 냅다 소리를 지르며 방망이를 휘둘렸다.
엄마가 고함치는 소리가 옆집 아저씨까지 들려 옆집 아저씨가 들어오고 방망이에 한번 쓰러진 남자는 옆집 아저씨의 이단 차기에 풀썩 쓰러졌다. 파출소로 넘긴 도둑에게 엄마는 미싱 대가리 달라고 했다. 다 필요 없다고 재봉틀 머리만 달라고! 다행히 재봉틀은 훔쳐 간 도둑 집에 있었다. 한 세트로 팔 수가 없었나 보다 원래 재봉틀은 대가리가 다라고 하였는데 다행이다 엄마의 재봉틀 머리, 외할머니의 유품을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깐
역시 엄마의 말이 맞았다. 도둑은 언제가 다시 범행 장소로 돌아온다고!
엄마가 도둑을 잡은 게 동네에 퍼지자마자 은혜의 어깨에도 뽕이 엄청 들어갔다.
역시 명탐정 설록홈즈를 좋아하는 은혜의 역할이 엄마가 도둑 잡는데, 작은 힘이 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마의 쉬는 날!
재봉틀 소리가 시끄럽다. 일요일인데도 늦잠 자지 못하게 엄마는 다시 찾은 재봉틀 머리에 잔뜩 힘을 주어 밟는다. 이미자 여자의 일생을 콧소리 내며 따라 부르는데 재봉틀 소리와 박자를 맞추어 가며 더 힘껏 밟는다.
재봉틀 머리 사건이 있고 나서 다시 찾은 후 엄마는 재봉틀 머리와 본체에 연결하는 열쇠고리를 달았다. 그건 용접을 좀 하는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다. 들고 가지 못하게 아주 단단하게 묶어 버린 거다.
“견딜 수가 없도록 외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온 동네가 참기름 냄새로 고소하다. 은혜도 김밥, 현미네도 김밥, 우리 집도 김밥!
오늘은 우리 초등학교가 소풍 가는 날이다. 걸어서 30분 가면 나오는 능으로 가는 거지만 난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다. 시내에 사시는 할머니가 엄마 대신 나의 소풍에 함께 가기로 하여 어제저녁에는 할머니까지 집에 오셨고 무슨 옷을 입을까? 엄마! 엄마! 김밥에 뭐 들어가냐고 하루 종일 묻고 또 묻고 하였다. 엄마의 김밥은 항상 똑같다. 내가 묻거나 오빠가 물어도 항상! 모든 김밥 재료를 잘게 잘게 썰어 다 볶은 후 밥과 섞은 뒤 엄마는 김에 섞은 밥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단무지로 마무리 얼핏 보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밥과 재료들이 기름에 잘 볶아져 노란 단무지로 입의 텁텁함을 날려주는 엄마의 김밥은 정말 맛있다.
“현숙아! 학교 가자” 일찍 집을 나온 은혜가 나를 부른다. “잠깐만” 옷을 입으며 김밥 꽁다리를 입에 넣고선 대답을 해 본다. “아! 참! 할머니 할머닌, 8시 30분까지 학교 운동장으로 와” 하며 머리를 만지시는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시간을 정해 주며 난 운동화를 신고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은혜에게로 뛰어나간다.
“은혜야!”
“엉 현숙아!” 노란 모자를 눌러쓴 은혜가 귀엽다. “김밥이니? 유부초밥이니?”라고 내가 물어보자 은혜는 도시락이 든 가방을 내게 보여 준다. 김밥에 사이다에 우와 새우깡도 들어 있고 사과도 있다. “현숙아 너 도시락은?” “응 할머니가 가지고 오신대”
난 우리 반 반장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소풍에 따라가신다. 괜찮다고 싫다고 해도 할머니는 1시간 떨어진 곳에 사시지만, 소풍에 함께 하기 위해 우리 집에 오신 거다.
학교 운동장엔 벌써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다. 오늘따라 운동장은 봄에 피는 꽃들처럼 친구들의 옷 색깔이 너무 이쁘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 소풍 간다고 예쁜 옷을 입고 왔나 보다.
저학년 고학년 나누어 줄지어 출발한다. 우리 저학년은 걸어서 가고 언니 오빠들은 버스를 타고 송림사라는 절로 간다고 한다.
쭈욱 줄지어 각반 별로 걸어가며 우리는 재잘거린다. 친구들의 웃음소리 역시 너무 맑다. 소풍 장소에 들어오자마자 우린 담임 선생님의 안전 훈화 말씀을 듣고 삼삼오오 친구들이랑 짝을 지어 능 안을 구경 하다가 11시까지 모이라는 선생님 말씀에 다시 우리 반 위치로 모였다. 점심시간 전 장기자랑을 한다고 하였기에 노래 잘하는 혜정이는 과수원길을 불렀고 춤 잘 추는 순향이는 마이클 잭슨 노래에 맞추어 브레이크 댄스를 멋지게 해 내었다. 석철이와 미정이도 둘이서 하늘나라 동화를 멋지게 불렀다. 1등은 석철이와 미정이에게로 돌아갔으며 선생님은 점심 먹고 오후에 보물 찾기와 수건 돌리기를 한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소풍 장소로 오셨다. 할머니는 담임 선생님을 먼저 찾아가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 사이다 그리고 박카스를 내미셨다. 선생님은 송구스러워하면서 할머니의 정성에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두 손으로 받으셨다.
“현숙아! 이리 와 어서 먹어” 할머니는 막내 손녀가 배고플까 걱정이신지 친구들 사이에 있는 나를 엄청나게 부르신다. “알았어! 할머니! 잠만” 난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자며 할머니가 있는 자리에 친구들과 함께 앉았다. “어서들 앉아 먹어” 할머니는 도시락 가방에서 엄마가 정성 들여 싸준 김밥과 우와 꿀떡도 있다. 목멜까 봐 사이다도 따주신다. “할머니도 먹어!” 나만 챙기는 할머니에게 어서 같이 먹자고 손동작을 해 보이지만 할머니는 나를 먼저 챙긴다. “할머니는 천천히 먹으면 돼! 어서 먹고 또 놀아야지 은혜야 혜정아! 많이들 먹어” 각자 도시락 챙겨 온 친구들까지 할머니는 챙기며 우린 네 거 내 거 맛보며 또 까르르 웃는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우리는 다시 반 위치로 돌아가 앉았다. 밥을 많이 먹었으니 이제는 수건 돌리기를 한다. 동그랗게 원을 그려 앉은 우리는 우선 내가 먼저 술래가 되어 영수 뒤에 두고 내 자리에 앉았다. 영수도 눈치를 채는지 얼른 수건을 잡아 혜정이 뒤에 놓는다. 이 수건 놀이는 이 친구가 저 친구 좋아한다고 알 정도로 좋아하는 친구에게 갖다 놓는다 할 정도로 우리 사이에서는 알 만한 친구들은 다 안다. “어? 재가 재 좋아해?” “크크” “아 그랬구나” 어 은혜가 걸렸다. “엉덩이로 이름 쓰기” 벌칙이다. 은혜는 짜증 났다 듯이 휙휙 갈겨쓰고 다음에 누구 걸리기만 해 봐라! 는 표정을 짓고 열심히 뛰다가 석철이 뒤에다 갖다 놓는다.
한바탕 누가 누구 좋아해!라는 추리는 끝내고 우리 소풍의 하이라이트인 보물 찾기를 한단다.
우와 아침에 선생님이 저쪽으로 가셨는데, 우린 능 이쪽, 나무 밑, 돌멩이마저 들쳐 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찾았다.” “나도 찾았다.” 다들 잘 찾는다. 난 아직 찾지 못하고 또다시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보물 찾기에서 선물을 받은 은혜는 엉덩이로 이름 쓸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콧노래마저 부르며 신나게 집으로 향한다. 공책과 지우개 필통 그리고 깐돌이 과자 선생님이 주시는 전과가 다 지만, 좋겠다. 은혜는 내가 없는 표준전과를 받았다. 무거운 거 가방에 넣어가면서 웃는다 웃어
이렇게 우리들의 봄 소풍은, 하하! 호호로 끝이 났다.
이상하게 소풍 때는 많이 안 먹히던 김밥이 집에 도착하면 왜 이리 그리워질까?
“어르신! 이번에 마을 대항 체육대회가 있는데 어디서 회의할까요?”
“다들 전방으로 모여라! 막걸리 한잔 하며 작전 회의해야지!” 박 할아버지의 부름에” 하나, 둘 전방으로 모인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이 회의를 한다.
“이번에 줄 달리기는 누가 누가 나갈 건가요?”
“정훈 아비는 이번에 빠지죠? 지난번에 보니깐 영 힘을 못 쓰더구먼!”이라고 이장 이 저
씨가 말하자 정훈 아저씨는 발끈한다. “ 아 형님 제가 뭐 이다고 그런다요! 거참 이상하구먼요!” 모인 사람들 대다수가 이번에는 빠지라고 하지만 대답 대신 따라놓은 막걸리를 두 잔 째 마시고 있다.
“아주머니요? 이번에는 여자 씨름도 있다던데 은혜 엄마가 나가면 딱이겠네요!” 덩치 좋고 힘 좋은 은혜 아줌마에게 여자 씨름 경기에 나가라고 박 할아버지가 권해 본다.
“그렇게 할까요? 어르신! 좋습니다. 어르신이 보기에 제가 1 둥 할 거 같으면 나가지요! 이장님! 신청하세요!”
주거니 받거니 체육대회 의견이 오가고 그 오가는 의견 따라 전방의 막걸리도 점차 사라진다.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에게는 깐돌이 하드가 왔다 갔다 하고 오늘은 새우깡도 주신다.
체육대회 날 아침이다.
각자 맡은 종목에 맞추어 옷을 입고선 초등학교로 가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은혜와 우리들은 문방구에서 산 응원 털을 두 손 가득 들고선 어른들 뒤를 따라나선다.
“우와 다들 장난 아이 데이! 오늘 우리 동네가 1등 할 거다!”
여자 씨름 대회에선 박 할아버지 말씀대로 은혜 엄마가 1등!
줄다리기이다. 우리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어진 줄에 모두 매달려서 이장님 호각 소리에 힘을 주어 본다. 어어 밀린다. 딸려 간다. 안돼! 안돼 영차! 영차 힘을 주라고
일대일이 되었다. 세 판을 먼저 이기면 되는데 예감이 좋지 않다. 오늘의 줄다리기는 우리가 질 거 같다. 예감 적중! 줄 앞쪽에 있던 영식이 아저씨가 넘어지면서 주르륵 다 넘어지기 시작하였다. 우린 3등으로 줄다리기를 마쳤다. 다들 아쉬워서 막걸리를 벌컥 마시는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체육대회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단체 계주가 남아 있었다.
우리 동네 대표로는 영식이 아저씨, 진수 아저씨, 우리 아버지, 현미 엄마, 미정 엄마. 혜숙 엄마 이렇게 남자 셋 여자 셋이 결성되어 있다. 일 마치고 저녁 드시고선 운동장에서 얼마나 많이 연습했던가 배턴 떨어지지 말라고 어떻게 하면 배턴을 빨리 건네주는가에 대해 얼마나 뛰어 연습했던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각 동네에서 가져온 냄비를 척척 걸쳐 가며 각 종목에 나가지 않는 어른들은 국을 끓이고 고추장 불고기도 하시고 솥밥도 하였다. 김치랑 상추가 가득하고 막걸리 소주도 왔다 갔다 하는데 박 영감님이 많이 못 마시게 한다. 마지막 달리기 계주는 우리 동네 자존심이 걸렸다고 체육대회 다 끝나면 마음껏 마시라 한다. 아저씨들은 더 마시고 싶었지만 알겠다며 어르신 말씀을 듣는다. “거! 고기랑 국이랑 남겨 놓게” ‘걱정 말고 뛰기나 하소“라며 아주머니들은 대꾸하신다.
‘은혜야 신난다. 우리 운동회보다 더 재밌지? 그렇지” “엉 엄청 재밌어 맛난 것도 많고 ”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계주가 다가왔다.
문방구에서 구한 응원 털을 흔들며 “이겨라! 이겨라! 우리 동네 이겼다 이겼다 우리 동네 이겼다
야야야야야 야야야야야 꽃바구니 옆에 끼고” 온 노래가 다 나온다.
첫 번째 주자는 발 빠른 영식 아저씨! 출발 총소리에 맞추어 진짜 빠르게 뛰어나간다.
우와 일등으로 들어온다. 뒤이어 현미 아줌마가 배톤 받을 준비를 하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간다. 받자마자 큰 덩치에 안 어울리게 진짜 잘 달린다. 우와 현미는 옆에서 신났다.
“엄마 이겨라! 엄마 이겨라” 목이 터지라 응원을 한다. 진수 아저씨에 이어 미정 아줌마까지도 우리 동네가 일등으로 달리고 있다. 꽹과리, 북 난리이다.
어떡하지 우리 아버지 차례이다. 난 차마 볼 수가 없다. 두 눈을 가려 보지만 소리가 들린다. 이겨라! 이겨라! 잘한다! 잘한다! 에 이어 갑자기 어 어어 한숨 섞인 소리도 들린다. 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지만 “아버지 이겨라! 아버지 이겨라” 응원을 보탠다. 살짝 뒤처지던 아버지는 다시 한번 힘을 내어 달려본다. 아버지가 다시 1등으로 달린다. 우와와! 진짜 빠르다. 다행히 1등으로 배턴을 혜숙 엄마에게 넘겨주신 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난 얼른 물을 가져다주고선 혜숙 엄마 달리기를 보았다. 작고 마른 혜숙 엄마! 우와 발이 안 보일 정도로 잘 달리네. 학교 다닐 때 달리기 선수였다고 혜숙이한테 들어서 빠르다고는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내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얌전하셔서 이런 행사 때에는 주로 밥 담당을 하였는데 우와 오늘은 진짜 학교 때 꿈을 다시 한번 펼치시나 보다. 육상선수로서의 꿈을!
우와 우리 동네가 달리기 계주에서 1등을 하였다. 난리다 난리.
꽹과리 북이 체육대회가 끝나고도 동네에서 난리다. 총점에서 우리 동네가 1등을 하여 우승 깃발과 함께 우리 동네로 왔기 때문에 온 동네가 잔칫집이다. 어른들이 즐거우니 우리 또한 덩실덩실 좋다.
한바탕 춤추고 떠들썩하던 뒤풀이가 끝나갈 때쯤 플라타너스 아래 다 모인 어른들 앞에 박 영감님이 한 말씀하신다.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뭉쳐야 해 그러면 그 힘듦도 다 지나가도 다시 오늘처럼 웃을 날 있잖아. 오늘 다들 고생했어 수고했어! 이제 다들 마음껏 한잔하자”
“북망산천이 어디 멘고!”
“어 허 어, 어 허 어, 어허 넘자 어허허”
너무나 구슬프다. 플라타너스 아래 정자에서 장기 두는 박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동네 아저씨들은 장례 준비로 정신없이 움직인다.
“현숙아! 저쪽으로 가 있어! 얘들아, 너희들은 거기 가만히 있어!” 이장 아주머니가 우리들을 한쪽으로 몰아넣고 선 입술에 손가락으로 쉿이라고 말한다.
우리 동네 제일 어른이신 박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저씨들의 싸움 아줌마들의 어려움 우리들의 고충도 척척 긁어 주시던 박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른 체형이지만 단단한 체력을 가진 할아버지가 언제부터인가 속이 불편하고 불편한 속을 토하기도 자주 하여 병원에 다녔는데 검사 결과 위암 판정을 받으셨단다. 의사는 할아버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수술을 권하지만, 할아버지는 외국에 있는 아들에게 걱정 끼치기도 싫고 하여 민간요법으로 자연요법으로 마지막을 준비하였다.
한 달 전부터 할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하고 계신다. 마을 어른들이 돌아가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챙겨 드렸지만, 할아버지의 몸은 변화가 없으시다.
누워계신 할아버지 곁엔 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할아버지 한번 쳐다보고, 반지 한번 쳐다보고를 번갈아 하는 할머니가 계신다.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할머니 어떡하지? 할머니 불쌍하여 어찌해? 할아버지가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플라타너스 아래를 상여가 몇 번 돈다. 오래된 마을 지킴이 플라타너스 아래를 우리 마을 지킴이 할아버지가 함께 돈다. 언제나 플라타너스처럼 마을을 위해 큰 버팀이 되어 준 할아버지의 상여가 장지로 간다. 상여 뒤를 마을 어른들이 따르고 그 뒤를 우리들이 따르고 박 영감 할머니도 따른다. 할머니는 자꾸 하늘을 쳐다보신다.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니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에 힘을 주어 재빠르게 할아버지 상여를 잡고 같이 가신다. 할머니 손으로 비 맞는 상여를 소매 끝 잡아 쓰윽쓰윽 닦아 주신다.
하늘이 울고 할머니가 울고 어른들도 울고 우리도 울고
박 할아버지가 떠난 뒤 마을은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돌아가신 할아버지 집에 찾아가 혼자 남은 할머니를 챙겼다.
마을 회의에서 치매 걸린 할머니를 혼자 두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어떻게 하는 게 맞나 여러 번 회의 끝에 마을에서 역시나 혼자되신 신 할머니가 자신이 박 할아버지 할머니랑 함께 지내기로 하였다. 당분간 외국에 있는 아들이 올 때 까지라고 신 할머니는 말하였지만 아마 아들은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 동안 온 적을 나는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어느 정도 마을도 다시 자리를 찾았다.
떠나신 고목이 언제나 우리 마을을 지켜 주라고 기도하면서 우리는 다시 하하, 호호! 해 본다.
“엄마, 내 양말 못 봤어요?”
“여보, 내 도시락?”
“현숙아! 학교 가자!” 기다리다 지친 은혜가 대문이 부서지라 소리 지른다.
“현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