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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Oct 26. 2024

엄마의 홍천강

 새해 일출을 보러 속초로 가는 길이다. 

돌아올 때 차가 밀릴 것을 걱정하며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마 내가 고속버스를 타는 건 25년 만인 것 같다. 20대 때 고속버스를 탄 후 처음이라 모든 것이 다 걱정이다. 멀미하면 어떻게 하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하지. 고속버스를 타면 수원에서 속초까지 4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이런저런 걱정을 사서 하는 나와는 달리 평일 오전 고속버스는 너무나도 술술 제 할 일을 잘하고 있을 뿐이다. 

 뉴스에선 앵커가 오늘 날씨가 많이 흐려 일출을 보기는 힘들 거라고  말한다. 때마침 눈도 내리네. 구불구불 커브 길을 통과하며 1시간 30분을 정직하게 달려온 버스는 '10분 쉽니다'  라는 기사님의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홍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멀미가 날 거 같아 얼른 차에서 뛰어내려 화장실로 가려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어디선가 코를 막고 싶을 정도의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왜 시골 동네 대기실에선 다 이런 냄새가 날까. 화장실 앞이라 그런지 아니면 어르신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옛날 냄새가 나는 게 나는 너무 싫었다. 


 커피 한잔 마셔야겠다는 남편이 휴게실로 들어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멀미 때문인지 아니면 그놈의 옛날 냄새 때문인지 너무 속이 안 좋아 가게 밖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터미널 대기실이 눈에 들어왔다.

 까까머리 군인들. 까까머리는 옛말이라 생각하겠지만, 진짜 까까머리 군인들이 돌아다닌다. 우리는 추워서 국민 패딩이라 불리는 오리털을 입고 있지만 까까머리 군인은 군복 속 내의만 입었을 것이다. 검정 패딩이라도 하나씩 주지.. 귀마개만 한 군인들이 많이 추워 보인다. 그래도 어딜 가는지 아니면 이미 갔다 오는지 발걸음은 가벼워 보인다. 아마 어딜 가나 보다. 

 까까머리 군인들을 따라 눈을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밍크코트를 둘러 입고 휴게실에 앉아서 전화하는 파마머리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통화를 하는지 창밖에선 들리지 않지만 표정에서 대충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듯 불만이 있어 보인다.  

 밍크코트 아줌마 뒤로 40대 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보인다.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 아저씨는 여유가 많은가 보다. 시간에 쫓기는 나와 달리 한입 한입 아주 천천히. 샌드위치를 꼭꼭 씹어 먹는걸 보니 버스를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진 않나 보다. 난 고작 10분이라는 시간밖에 없어서 커피만 주문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다 되어간다. 버스를 다시 타야 하는데 어르신 혼자 휴게실 운영을 하셔서 그런지 커피가 계속 늦는다. 커피가 나오자마자 우린 버스로 뛰어 올라탔다. 차가 서서히 출발하며 홍천 터미널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데 불현듯 그날 내 기억 속의 한 장면도 함께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어 홍천강이다. 홍천강 다리네” “여보! 여기가 홍천강이야” 눈 감은 남편에게 여기가 홍천강이라며 표지판이 두 눈에 보이자 여자는 흥분한 목소리로 남편의 팔을 잡아당겼다. 

 내가 7살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부모님과 함께 작은 오빠 손을 잡고 우린 이 홍천 터미널에 왔었다. 그해 겨울, 작은 외삼촌의 결혼식이 있었다. 난 생전 처음 홍천이라는 곳에 와 보았고 내 옷은 난생처음 입은 체크무늬 코트와 겨울 털 부츠였다. 결혼식이라고 엄마가 새로 사준 꼬까옷이었다. 내가 살던 대구도 춥지만, 그 겨울 강원도 홍천은 더 춥다고 느껴졌다. 

 외할아버지. 자주 만나지 않는 나의 외할아버지 집은 정말 컸다. 대문도 많았고 방도 여기저기 많았고 일하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엄마가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가씨 오셨다는 큰 외숙모의 인사 소리도 들렸다. 큰방에 계신 외할아버지도 고개를 조금 내미시고는 다시 방문을 닫으셨지만 그게 외할아버지에겐 인사라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각자 다른 방식들로 어른들이 인사를 하는 사이에 내 눈에 또래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다들 인사가 끝났는지 엄마는 그 남자아이의 손을 우리에게 내밀더니 막내 외삼촌이랬다. 뭐라고 막내 외삼촌? 말로만 듣던 막내 외삼촌의 실물을 보다니. 

 막내 외삼촌. 외할아버지와 새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그 남자아이의 나이는 작은오빠랑 같다고 하였다. 우린 짧은 눈인사를 마치고 막내 외삼촌이 내민 손을 잡고 홍천강으로 갔다. “이거 얼음썰매야, 내가 태워줄게” 라며 외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썰매를 들고 나온 막내 외삼촌이 같이 썰매를 타러 가자고 하였다. 난생처음 보는 막내 외삼촌. 더더욱 막내 외삼촌이 작은오빠랑 같은 나이라는 게 내 입장에선 믿기도 이해도 되지 않았지만 꽁꽁 언 강 위에서 썰매를 태워 주는 막내 외삼촌이 나는 맘에 들었다. 얼음 위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삼촌이 끌어주고 태워주는 바람에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옷이 반 이상은 젖어 버려 걱정이기도 했지만 난 그 남자아이의 두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홍천강 위에서 겨울을 맘껏 느꼈다.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작은 오빠 소리에 얼른 강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는데 결혼식이라 흥겨워야 할 잔치 집에서부터 대문 밖까지 곡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였다. “왜 그랬냐고... 왜 나한테 그랬냐고 어?” “우리 엄마한테 왜 그랬냐고요?” 엄마의 목소리는 소리를 지르다 못해 다 갈라져 있었고 그 갈라진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외할아버지셨다. 외할아버지를 향해 엄마는 잔칫집 노랫소리가 아닌 곡소리를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옆에 서 있던 아버지는 엄마의 한복 자락을 잡으며 그만하라며 굵고 짧은 한마디만 하셨다. 하지만 엄마의 곡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작은 외삼촌 결혼식인데.. 경사스러운 날인데 건넛방 새색시가 얼마나 불안할까? 내심 걱정되었지만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일 없다는 듯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 마냥 소리를 질렀다.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쳐다보던 큰 외숙모의 일그러진 표정도 보았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큰외삼촌의 슬픈 모습도 보였지만 그런 엄마를 다들 말리진 않았다. 내가 엄마를 흔들고 잡아도 그만하지 않을 것이며 게다가 왜 엄마가 그러는지 7살 나는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 

  김영식 외할아버지의 장녀 맏딸이다. 엄마 밑엔 남동생이 둘이나 있다. 의정부에 사시 큰외삼촌이 첫째 동생이고 오늘은 그 밑의 작은 동생 결혼식이다. 엄만 나에게 항상 18번 레퍼토리처럼 말했다. 내 동생은 둘밖에 없다고. 나의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두 눈을 못 감으신 채 홍천강 근처에서 돌아가셨다 한다. 그게 다 막내 외삼촌 엄마. 즉 새 외할머니 때문이라고 엄마는 말하였다. 외할아버지 김영식의 바람으로 새엄마가 생겼고 그 여자는 여자아이가 셋이나 있는 술집 과부였다고 한다. 그 여자랑 눈이 맞아 진짜 외할머니와 삼 남매를 방치하였고, 김영식은 그 여자와 함께 살림을 차렸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둘 사이에서 아들까지 낳았다는 소문이 들렸고 나의 외할머니는 김영식이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아셨을 것이다. 

엄마는 전쟁터에서 승리한 장수처럼 한복 치마를 다시 걷어 올려 입고 저고리 고름을 다시 고쳐 메고 선 우리 손을 잡고 김영식 외할아버지의 집을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버스 타러 가는 길 홍천강을 지나갈 때 엄마는 그제야 진짜 눈물을 흘리셨다.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고 하였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란 걸 엄마도 안다. 홍천강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돌아올 수 없단 걸 알기에 엄마는 홍천강 강둑에서 소리 없이 울음을 삼켰다. 엄마는 어릴 적 외할머니와의 추억도 생각이 났을 것이고, 홍천강에서의 외할머니의 죽음도 분명 떠올랐을 것이다. 또한 큰누나로서 잘 챙겨 주지 못한 것도 미안한데 오늘 같은 잔칫날 초상집을 만들어 버려 둘째 외삼촌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고 엄마의 어깨는 흔들렸지만 결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버스가 지난 간다. 홍천강을... 엄마 마음속 홍천강은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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