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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31. 2024

02 안녕, 우리 집

드디어 육지에 입성하다

"여보, 나 서울 발령 났어."

"아... 언제부터 출근이야?"

"다음 주 월요일."

"아 그래. 일단 알겠어. 집에 와서 얘기해."     

오늘이 수요일인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서울 출근이란다. 뭐부터 해야 하지.


모든 것은 남편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22년을 마무리하며 해를 새롭게 시작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서울로 발령 난 것이다. 마음으로는 기대하고 있었지만 진짜 발령 날 줄 몰랐다. 오랜 시간 육지에서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지만 이때에 가게 될 줄 몰랐다(코로나19로 거리 두기의 기간이 해제되는 시점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심장이 세차게 요동하고 손과 발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주말 부부를 해야 하나. 남편이 주말마다 제주에 내려올 수 있을까. 오로지 나 혼자 아들들을 양육할 수 있을까. 다 같이 이사를 해야 하나. 초등학교가 가까이 있야 할 텐데. 전학은 어떻게 하지. 눈앞이 캄캄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누구한테 먼저 이 소식을 알려야 하나.


퇴근 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변의 서울 사람들은 주말 부부도 꽤나 있다. 주말 부부의 어려움은 역시나 홀로의 양육과 아빠의 부재였다. 옆에서 익히 보고 있었기 때문에 떨어져 산다는 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고생인지 알고 있다. 결국 우리는 다 같이 육지로 입성하기로 했다.


28일 아주경제가 국내 부동산 전문가 23명을 대상으로 '2023년 부동산 시장 전망'을 설문조사한 결과, 새해 주택시장 흐름에 대해 전문가의 56.6%는 '상저하저(上低下低,)'를 꼽았다. 상반기는 물론 하반기에도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반면 서울과 수도권 등 핵심지역 쏠림 등 지역별로 양극화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26.2%로 나타났다. 하락장 속에서도 인구유입이 늘고, 수요가 받쳐주는 지역은 급매가 빠르게 소화되면서 차별화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어 '상저하고(上低下高)'가 8.6%, '상저하보(상반기 하락, 하반기 보합)'와 '깊은 침체'는 각 4.3%로 나타났다.
출처 : 한지연기자. 아주경제신문. 2022.12.20일 자 기사 일부 발췌.


부동산은 23년 상반기가 침체될 거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방인 우리 집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예측했다. 반대로 서울과 수도권에 쏠린다는 사실은 우리가 육지에 집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였다. 제주 집을 해결해야 육지 집을 구할 수 있는데. 지금 당장 집을 어찌 구하랴.

 

아 이게 현실이구나. 

나 홀로 여유롭게 카페 라테를 홀짝이던 때는 혼자였기에 가능한 거구나.

이제는 남편과 나날이 장성해 가는 아들들을 키우기에 챙겨야 할 것들이 많구나. 적어도 방과 화장실이 구비된 집이 필요하고. 초등학교가 근접해야 하며. 직장 출퇴근을 위해서는 지하철 역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집 가격이 적당해야 했다. 제주와 서울의 집값은 천치만별일 텐데.

연고지 없이 육지에서 어찌 살아가랴. 

홀로 서울을 동경했던 것과는 달리 마음은 이리저리 차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지만(제주 토박이인 나도 말은 한 번도 못 타봤다. 아주 오래된 옛말일 뿐이다. 오해하지 마시길.), 정작 제주 사람들은 자녀들을 육지로 보내는 것을 아주 멀리멀리 보내는 거 마냥 싫어하고 애통해한다.

그렇기에 남편이 서울로 발령 났다는 소식은 양가 가족들을 적잖게 당황시켰다. 어머님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으며, 아버님들은 걱정스러운 눈빛과 찌푸린 미간으로 말없이 입술만 굳게 다무셨다. 벌써부터 동생들은 눈물바다다. 꼭 가야 하냐며. 

이제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적하게 했으리라. 제주에서 서울까지 비행시간은 약 1시간. 하지만 그 짧은 비행시간을 두고도 제주와 육지를 오고 가는 것은 시간만큼 그리 쉽지만은 않다. 거리가 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우리는 조금씩 몸과 마음의 헤어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먼저 서울로 올라가 직장 동료와 자취를 하면서 출근을 했다. 나는 제주에서 아이 학교와 학원 그리고 친구들과 이별을 준비했다. 육지로 이사 간다는 소식에 주변인 서울 사람들이 동네들을 하나씩 추천하기 시작했다.

"언니, 이 동네가 요즘 뜨는 학군지래. 학원이 많다네. 거기도 한번 알아봐 봐."

"윤슬아, 서울은 무조건 여기로 가야 돼. 아이도 있잖아. 무조건 거기로 가."

이상하게 드넓은 서울중에서도 그들이 가리키는 곳은 딱 정해져 있었다. 무조건 거기로 가야 한다면서. 그런가. 서울에 놀러만 다녔지, 어느 곳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지 난 모르지.


▲ 서울의 아파트 단지  


우리에게 남은 건 딱 2주.

늦어도 아이들이 개학하기 3월 전에는 이사를 마치고 전학을 시켜야 한다.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홀로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탔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의 서늘한 기온이 나를 감싼다. 너무 춥다. 바람 한점 없어도 이렇게 추울 수 있나. 제주에서 바람이 매서워 옷깃을 단단히 세워 왔건만, 서울에서의 서늘함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남편은 자취생활로 그새 수척 해진듯했다.

"어때, 서울은?"

"너무 추워. 목도리 사야 할 것 같아. 장갑이랑. "

"회사는?"

"정신없지, 뭐. 다 적응해야 하고 배워야 하니깐. 사람들도 그렇고."

"고생이네."

"아이들은 어때?"

"이사 가기 싫다고 하지 뭐."

오랜만에 만났지만 눈앞의 현실이 복잡하고 두려웠을까. 둘의 대화는 그저 어눌하기만 하다. 수없이 여행 다닌다고 신나게 서울을 드나들었지만, 이제는 정착해야 할 곳인 육지가 낯설었다. 적어도 먼저 서울에 정착하고 있는 남편의 얼굴에서 쓸쓸함이 묻어났다.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집, 출근과 퇴근을 마중하는 아내와 아이들. 그 모든 것이 제외된 지금, 외로운 생활은 남편을 더욱 춥게 했으리라.

 

▲ 강변북로에서 바라본 여의도


여러 곳곳을 다니는데 도로가 꼬불꼬불하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 낯선 길이라 몇 번을 헤맸다.

"와, 이 동산을 어떻게 걸어서 다니지. 눈 오면 엄청 미끄러울 것 같은데."

"저기 봐봐. 저기에 어떻게 차를 주차했지, 신기하다."

차로 동산을 오르내리며 골목 이곳저곳을 다니며 우리는, 서울 사람들의 운전실력과 주차 노하우에 감탄을 했다. 나는 서울에서 운전을 못할 것 같은 이 기분.


동네 별로 단지별로 집을 3~4채 정도 둘러봤다. 동네마다 어쩜 그리도 낯설고 어색한지. 번쩍번쩍 빛나는 높은 고층의 아파트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보는 게 고역이었다. 같은 동네라도 어찌나 사는 모습이 다양한지. 신나게 남의 집 구경하듯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우리 집이라 생각하니 금세 암울해졌다.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다.

아, 진정 평안한 우리 집을 버리고. 복잡한 이곳에서 집을 얻어. 매해 이사를 모색하며.

전전긍긍해야 한단 말인가.

 



제주집도 해결해야 한다.

부동산이 얼어붙어 매매든 연세든 잘 나가지 않는다(제주에는 연세 문화가 있다. 전세보다는 연세로 많이 계약하는 편이다.). 게다가 지금은 신구간이 끝나지 않았던가(제주는 신구간에 맞춰 이사를 한다.). 서울에서 이주 온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빈집도 많다. 방문하는 부동산마다 거래가 어려울 거라고 내다봤다.

급한 대로 연세, 전세, 매매로 내놨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우리가 있는 공간, 가꾸던 공간을 새로운 사람들에게 오픈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빨리 해결되길 원하는 몸짓으로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내 마음은 정작 그렇지 않았나 보다. 여러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올 때마다 나는 이 집이 얼마나 애틋하고 정겨운지 장황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흡족한 얼굴로 나갈 때마다 부엌에 쭈그려 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야 했다.


이 집이 어떤 집인데.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매매한 집이다.

낙서가 있는 때 묻은 벽지. 아이들 사진을 더덕더덕 붙여뒀던 벽. 아이들이 책상에서 물건을 떨어뜨려 까진 바닥. 햇살이 한가득 들어왔던 남향의 거실창.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 놀이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조그마한 부엌창.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 이 공기.

아이들이 자라는 10여 년 동안 많은 추억을 새겨놓았던 집이다. 


그 시간만큼 아이들도 이 집을 떠나기 싫어했다. 혼자 살겠노라, 울면서 말했다. 하지만 아이 혼자 제주에 두고 갈 수는 없는 법.

네가 좋아하는 야구 매주 직접 보러 갈 수 있어, 비행기 타지 않아도.

차로 전국 어느 곳이든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 있어, 얼마나 좋아.

네가 가고 싶었던 갯벌도 가자,라는 사탕발린 말로 아이들을 설득시켰다.

적어도 떠나는 날, 눈물 없이 가자며.


▲ 제주 공항에서


결국, 우리 집을 매매하고서 육지 집에 전세로 계약했다. 개학을 5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사하는 날,

제주 날씨는 맑았다. 겨울은 보통 회색구름이 끼고 우중충하기 마련인데, 이제 고향을 떠나는 우리 가족에게 인사하듯 구름이 걷어지고 겨울 햇살이 반짝거렸다. 새벽부터 이삿짐센터로 짐을 부치고 집에서의 마지막 청소로 마무리했다. 우리의 첫 집이라 매일 쓸고 닦았던 곳이다. 이사 올 사람들이 입주 청소할 거라고 대충 하라는 가족들의 원성에도 나는, 여러 번이나 쓸고 닦았다.


집을 둘러보는데,

"엄마, 이제 이만큼 컸어요."

큰 아이가 문설주에 등을 기대며 손으로 자신의 키를 가리킨다.

"그러게. 많이 컸네."

안방 문설주에는 아이들이 자라날 때마다 6개월씩 표시해 둔 키 눈금이 있다.

"이사 가서 그 집에도 표시할 수 있어요?"

"... 아니, 거기는 우리 집이 아니라서."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는 더 이상 여기에 기록할 수 없겠지. 키 눈금을 사진으로 찍어두고는 애써 눈물을 감추며 손으로 쓸어내렸다. 남편도 집안 곳곳을 사진으로 남겨둔다. 사진 찍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우리 명의로 된 집이라며 얼마나 좋아했던가. 이제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먹고 잤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다. 이제 이 공간의 추억도, 바다 내음도, 경치도 볼 수가 없으리라.

이제 마음에 고이 간직하자.

이제 나의 손을 떠날 때가 되었다.




이사 가는 육지 집은 새로 개발된 동네다. 그래서 곳곳마다 공사가 한창이고 겨울이기에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거리에는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까. 어수선한 환경만큼이나 마음도 복잡하다. 이제 살다 보면 하나씩 정리되겠지. 그럼 익숙해질 거야. 마음을 다잡는다.

다행히 서울도 날씨가 맑았다. 날씨가 좋아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사람도 차도 안 보이는 한적한 이곳에서 하늘까지 흐렸으면 더욱 암울했으리라.  


따스한 햇살이 거실 가득 메우고 있다. 눈부신 햇살 너머 한강이 보인다.  

"얘들아, 저게 한강이야. 책에서 봤지? 서울의 한강."

아이들은 창문에 매달려 한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보, 저거 봐봐. 물결의 반짝임. 자기가 좋아하는 윤슬이야."

남편이 나를 불러 세운다.

아, 저것은 윤슬이 아닌가.

제주 푸른 바다에서 보던 윤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다. 매일 보던 바다. 그리고 반짝이는 잔물결.


아, 너는 우리를 환영하는가.

이제는 바다가 아닌, 강의 윤슬인가.


그래, 저 윤슬로 나의 고향. 우리 집을 그리워하자. 

그걸로 됐다.




제주를 떠나는 날, 가족들은 우리에게 당부했다.

"눈뜨고 코 베인다는 육지, 어디를 가든 조심히 다녀라."

"서울 사람들은 깍쟁이들이라는데. 너도 서울 사람들처럼 깍쟁이가 되겠지. 누구를 만나든 사람 조심해라."


우리 가족은 그렇게 눈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깍쟁이들 틈으로 들어갔다.





이제 나의 손을 떠날 때가 되었다.







(육지, 라 표현하면 그럼 너네는 바다에 살아,라고 육지 사람들이 되묻지만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외지를 육지라고 표현해요. 통상 육지라 하면 대표적으로 서울, 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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