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타워는 서울 여행올 때마다 매번 갔던 곳이다. 영화관, 쇼핑몰, 식당, 호텔(타워만 나가면 눈앞에 환상의 세계, 놀이동산도 펼쳐진다.)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기에 여행자에게는 딱인 장소다.
롯데월드타워에 맛있는 게 뭐가 있나. 검색하던 차에, 그래 우리 런던베이글 뮤지엄 가보자. 저번에 먹지 못하고 보기만 했잖아. 맞다. 어랏, 그 유명한 런던베이글이 여기 있네 싶어 들어가려고 했더니 이미 마감됐단다. 그래서 매장 밖에서 멀뚱히 아이들을 세워놓고 간판과 사진 찍은 것뿐이다. 오전이라 그래도 한가하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나. 롯데월드타워 주차장 들어가는 길은 차들이 즐비하다. 주차할게요, 깜빡깜빡.
부지런한 사람들.
쇼핑몰에 다들 왜 이렇게 일찍 온단 말인가. 어디 금이라도 숨겨놨나.
아직 오픈시간 후 30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어서 가서 키오스크에 전화번호를 등록해야 한다. 헐레벌떡. 가게 앞에 벌써 사람들이 열댓 명 서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아, 숨을 거칠게 내셨다.
"엄마, 여기는 뭐예요?"
"빵집인데 유명한 곳 이래. 저번에 사람들 많이 있었잖아. 오늘 빨리 온 김에 한번 먹어보자."
"빵 별로 먹기 싫은데."
"그래도 한번 먹어보자. 일단 줄 서보고. 괜찮지?"
힘이 풀린 다리를 겨우 붙잡으며. 매장 안에 보이는 각양각색의 빵들을 가리키며 아이들을 설득해 본다. 아이들이 싫어, 하며 주저앉기 전에.
이미 육지에서 오픈런을 여러 번 경험했던 터다. 아이들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긴 줄을 보며, 늘 한숨을 쉬는 아이들. 알고 있다. 줄 서는 건 이력이 났다.
에버랜드, 서울랜드, 롯데월드. 광화문 미진, 일민미술관 이마, 갓잇, 카멜, 수플레, 노티드. 야구장, 더현대 서울, 스타필드 그리고 가오레까지 등등. 여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혹은 그들과 함께 오픈런을 했다. 눈치 보며 재빠르게 걷는 것도. 눈치 보며 빨리 줄어들 줄에 서는 것도.
이것이 바로 육지에서 살아남는 법.
(덧붙이자면, 놀이공원에서 사람들이 들고 다니던 무지개 휴대용 폴딩 의자를 우리도 구입했다. 의자를 들고 줄을 설 때마다 앞 뒤 사람들이 수군댔다. 저거 봐봐, 우리도 저걸 사야겠어라고. 슬며시 미소가 나온다.
제법 육지사람 같지 아니한가.)
그렇게 포켓몬 빵이 유명하다고. 엄마아빠들이 아이들에게 포켓몬스터 띠부띠부실을 손에 쥐어주고자, 전국각지에서 오픈런할 때도. 내 아이들한테는 그런 건 살 필요 없다며 줄 서기조차 해보지 않은 터였다. 그런데 육지로 와서는 어느 곳을 가든 오픈런이다.
뭐 빨리 들어간다고 해서 상품의 질과 양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짧은 시간 안에. 마감되기 전에. 어떻게든 빨리, 많이 누리기 위해서. 달려라 달려, 맹렬하게.
▲ 팝업스토어에 들어가기 위한 줄 서기
제주에 광활한 대지위에 눈앞에는 바다가 펼쳐진 곳에 런던베이글 뮤지엄이 생겼다고 한다. 왜 우리가 떠나고 나서야 생겼단 말인가. 제주에서는 그나마 대기 없이 편하게 먹어보지 않았을까 싶은데. 하긴, 제주에 있다 한들 오랜 시간 줄 서서까지 그곳을 가지는 않았으리라. 이곳에서는 우리가 아직 이방인이기에 그깟 줄을 서 보는 것일 게다.
이번에는 무엇을 아이들 손에 쥐어줘야 하나.
매장취식으로 대기번호는 86번이다. 아앗, 벌써. 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걸었단 말인가. 다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아리송하다. 아직 오픈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다들 우리처럼 관광객 모드인가 아님 서울 사람들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들 베이글에 진심인 듯.
그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상당한 오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버텨내야 한다. 결국 팝업 스토어, 아이쇼핑, 회전목마 타기 등 1~5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반복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줄 서서 기차마냥 줄줄이.
드디어 입장시간. 오후 4시. 와우. 약 5시간을 기다렸다.
▲ 런던베이글 뮤지엄
다닥다닥 사람들과 줄을 서서 빵을 9만 원어치나 샀다.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빛의 속도로 한껏 골랐다. 2개의 쟁반 가득. 다시는 절대 오지 못할 것 마냥. 다닥다닥 사람들과 붙어 앉아 빵을 먹었다. 성탄절 시즌이라 매장 안에는 캐럴 음악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하지만 빵을 먹으며 마음만은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얘들아 어때, 맛이. 우리 5시간이나 기다렸어. 매장 안에도 사람들이 많지?"
"맛있어요, 생각보다."
"그래, 다행이다. 많이 먹어. 또 있어. 집에 가져가서 냉장고에 뒀다가 다음에 또 먹자."
오랜 시간 기다린 아이들에게 맛있는 빵을 손에 쥐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빵을 배불리 먹고(빵은 역시나 맛있었다. 괜히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런던베이글을 나섰다. 이미 매장 입구에는 '마감'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미처 안내판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다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마감됐어요,라는 말에 아하,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뒤돌아선다. 그들을 지나치는 와중에 나는 손에 들린 런던베이글 종이가방을 흔들거리며, 우린 이미 먹고 포장도 했지요,라는 몸짓으로 뽐낸다.
볼수록 신기하다.
육지 사람들은 다들 줄 서는 시간에 익숙한 것 같다. 보챌 것도 조급할 것도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줄을 선다. 그 시간이 30분이든 1시간이든, 무려 5시간 이상일지라도.
무엇을 위하여 그토록 열광하는가. 이력이 날뻔한데도 언제나 그렇듯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평온하다.
무엇을 획득하고자 함인지 획득한 것을 뽐내고자 함인지.
홀로 독차지하기 위함인지 다른 이에게 나눠주기 위함인지.
다른 이들이 다 하니깐 그냥저냥 하고 있는 것인지.
좁은 서울땅 안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몰려있는 것인지. 나는 이방인이기에 이것저것 경험해 보는 거라고 치부한다. 서울에서 유행하는 것, 그래서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것 등을 나도 먹어보고 해 보는 것이라고. 이 또한 육지에 적응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나 자신을 다독여본다.
덧.
야구시즌이 되면 야구장에 자주 간다. 그곳에 키오스크 매표소가 2군데 있다. 그런데 항상 입구 쪽의 매표소는 발 디딜 곳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경기장 입구라 역에서 나오는 사람들, 장사하는 분들, 굿즈 매장도 있기에 원래도 수많은 인파가 집중되는 곳이다. 그래서 늘 한 줄로 서서 이동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매표소를 조금만 지나면, 다른 키오스크 매표소가 나오는데 그곳은 한결같이 한가하다. (이상하지 않은가.)
또. 1루 입장하는 곳이 2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상 왼쪽편의(내 기준, 매점 앞) 입구로만 줄을 선다. 중요한 경기가 열릴 때의, 입장 줄은 100m 이상이나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곳을 조금만 지나면 나오는 다른 입구는 한결같이 한산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나도 처음 볼 때 의아했다. 나처럼 야구장을 자주 오는 이들일 텐데, 왜 모이는 곳에서만 줄 서는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걸어가는데,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끼리 말하길,
"야구에만 미쳐있어서 그래. 야구에만 생각이 집중되니깐 다른 것을 못 보는 거지. 그래서 딱 그곳에서만,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그냥 따라서 줄을 서는 거야. 사람들의 광기(狂氣) 놀랍지 않니. 나는 좋지 뭐. 저들이 저기 몰려 있으니 나는 다른 한가한 쪽을 가면 되니깐."
라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하나에만 집중하니 다른 상황은 보이지 않고 그것만 보이더라.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저 베이글을 위하여 5시간을 허비하며(?) 여러 가지를 소비했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