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열리는 봄날.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또다시 열리는 봄날.

하늘빛, 꽃 빛, 새싹 빛.

온 세상의 빛들은 유난히 봄에 모여있다.

봄 빛은 서로 다투지 않고, 화려하지 않고,

순하고, 연하다.

봄 빛을 보려고, 봄 길을 걸어서, 온 마음으로 봄을 마음껏 흡수하는 봄 날이다.

온 세상이 푸르게 열리는 봄날. 눈부시게 찬란하다.

더 담고 싶어서 눈이 바쁘고, 더 담을 것이 없는지 찾느라 눈이 부시다.

내 생애 몇 번째 봄날이란 말인가? 피천득 시인의 말처럼 정말 보통의 일이 아니다. 엄청나다.


겨울은 길었다.

그래도 언제나 또다시 봄은 보란 듯이 열렸다.

사방에서 흰 빛, 분홍 빛, 연 자줏빛, 연두 빛을 뿜어낸다. 하루 종일 눈이 부시다.

눈이 부시게 찬란한 봄날!

또다시 시작된 봄날 ^*^


크로셰 덕후 시절. 바늘과 실로 놀던 시절에 둘 중의하나를 고르는 고민은 그런 거였다.

벌써 한참이나 떠올라 갔는데, 점점 아닌 것 같은 모양을 갖춰가고 있을 때, 그때 선택의 고민에 빠진다.

두 마음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공력이 얼마인데.. 어떻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풀 수 있어? 안돼!. 그냥 계속해', '두고두고 볼 때마다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냥 연습했다고 치고,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나름 크로셰 뜨기를 하면서 인생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지금까지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까워서 되돌리지 못했다. 그 상태로 정체였다.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상태. 그 상태에서 마음을 바꾸지 못하고, 뜨던 것을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냥 버려야 했고, 아깝다는 생각 없이 그냥 해치우면 되었다. 그런데 그걸 못했다. 자꾸 뒤돌아보느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되돌리는 것,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 그리고 지나온 나름의 노력들..

이만큼 눈에 보이는 뜨개의 결과물은 며칠이 걸려서해내온 것인데.. 아까운 마음은 그런거였다.

그렇다고 그걸 가지고 있으면 뭘 한다는 말인가? 실과 바늘로 위로, 옆으로 떠올라가던 일을 멈추고, 바늘을 테이블에 탁 놓고, 이젠 반대로 실을 잡아당겨 풀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뜨는 것과 푸는 것. 이것은 정 반대의 손놀림이며 아울러 정 반대의 마음이다.

뜨는 것은 갖고자 하는 것, 있었던 것, 해온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푸는 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놓아버리는 것이다. 있던 것을 없었던 것으로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풀려고 마음을 먹기까지에는 늘 아깝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지만, 일단 실을 풀기 시작하면 속이 다 시원하다.

눈앞에 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는데도 이상하게 후련하다. 모두 풀고 나서 이제는 거꾸로 실뭉텅이가 두둑해져서 커다란 공처럼 돌돌 말아져 있어도 이상하게 개운하다. 비워서 가볍다.


그런 날,

나는 차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조촐하게 지나온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지나온 시간을 함께 해서 행복했다고 떠나보낸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서 설렌다.

또다시 같은 괘도를 걷지 않을 것이라는 떠가는 손길을 믿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판단할 자격도 없기도 하다.

특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볼 때 쉽게 그 아이를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잘하고 있는 아이들은 물론 엄청 힘들게 하는 아이들도 언제 어떻게 다른 마음으로 살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응원과 지지만큼이나 더 큰 마음은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저 있는 존재 그대로를 느끼고 바라보면 된다. 꽃을 보듯이..

꽃들은 봄에도 피고,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고,심지어는 겨울에도 핀다.

언제 피는 것이 뭐 중요하단 말인가?

누구나 사람 꽃은 자기 꽃을 피울 텐데..

꽃을 피워내는 날을 기다리기만 하는 되는 일이다.


또다시 시작하는 봄날, 학교를 다시 본다.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면, 학교를 또다시 간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다시 수업 종이 울리고, 다시학교 급식을 먹고, 다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의 마음을 매일 먹고, 다시의 각오를 매일 하고, 다시의 고통을 각오하기도 한다.



다른 날보다 일찍 학교로 향하던 날,

오늘은 꽃을 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까지 국화, 백일홍이 피어나던 학교 진입로에 있는 대형 화분에 꽃을 심어 채울 날이다.

벚꽃이 촘촘한 벌집처럼 채워져 피어있는 날, 양재 꽃시장으로 향했다. 모든 꽃들이 모두 예쁘다. 어떤 꽃을 뒤로 할 수 없다. 참 아쉽다. 선택은 고통이다. 바구니에 잡히는 대로 여러 꽃들을 담아왔다. 키가 커서 하늘거리는 아네모네, 천일홍, 서양 코스모스, 찔레장미, 마가렛, 수국, 매발톱..


꽃을 심는 아침,

사람 꽃인 아이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온다.

꽃을 심어줘 너무 고맙다고 다들 다가와 말해준다.

고맙다고 말해주는 말에 나는 또 고마웠다.

가끔 그런 말에도 눈물 나게 고맙다.

그 고마운 마음이 얼마나 귀한 마음인가?

그 귀한 아이들이 진정 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세상의 단 하나뿐인 귀한 꽃!

우린 모두 꽃이다.

봄 꽃이 피어,

봄 꽃을 보니,

사람 꽃들도 모두 환하게 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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