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_정호승
[수선화에게]_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를 읽으면 한참이나 외로워진다. 곁에서 어떤 야단법석이 벌어져도, 나를 덮치는 건 묵직한 고요다. 시 앞에 멈춰 서고, 또 걷기도 여러 번. 그러다 외로움이라는 단어와 만난다. 어쩌면 우리의 영혼과 삶은 본래 외로운 것이 아닐까. 혼자 고군분투하는 나의 영혼, 그 길 위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선다.
누구나 외로움 속을 걸어간다. 어떤 날은 가슴검은도요새가 되어 다른 이의 외로움을 살펴보고, 또 어떤 날은 하느님이 흘린 눈물 속으로 우산을 받치며 걸어간다. 스쳐가는 이의 옆모습도, 겨울 저녁 길모퉁이에서 만난 달빛도 모두 외로움의 다른 이름 같다. 새들도, 종소리도, 산그림자도 외롭다. 모두가 제각각의 외로움 속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외로움이 낯설지 않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걷는다. 견딜 것도, 버틸 것도 없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궂은날은 궂은 대로 내 안에 스며든다. 물가에 앉은 시간도, 책상 앞에 앉은 순간도 결국은 삶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일. 그렇게 외로움도 자연스럽게 곁에 머문다.
시를 읽으면 한 송이 수선화가 되어 생각에 잠기고, 외로움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몫임을 받아들이며, 그 시간 속으로 스스로를 데려간다. 그래서 나는 시를 읽는다. 외로움을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