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미술 선생 같은 건 되기 싫다고. 원숭이처럼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버르장머리 없는 중학교 애들한테 그림이나 가르치며 일생을 끝내고 싶진 않아.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중학교에 근무하고 나서 내가 가장 처음 겪었던 충격은 소음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들려오는 괴성들에 혼이 쏙 빠질 지경이다. 그에 비하면 고등학교의 쉬는 시간은 카페의 소음 정도 되려나. 얼마나 소음에 시달렸던지, 어느 날은 교무실 밖에서 아주 해괴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누가 이런 소리 내니?' 하며 세모눈을 하고 나갔더니 바깥에서 나는 공사장 기계음이었던 적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얌전히 앉아서 공부하는 중학생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아이는 소문으로만 존재한다. 우리반 과학고 꿈나무도 쉬는 시간에 신나게 떠들어재낀다.)
분명 여름방학 때 정리했던 것 같은데. 다시 증식 중인 축구 공들
쉬는 시간 복도는 축구 경기장이 된다. 골대는 복도 끝, 축구공은 바로 짝 없는 실내화. (도대체 실내화는 왜 한 짝씩 주인을 잃고 돌아다닐까. 신데렐라 세요.) 우리 학교에는 손흥민, 메시, 호날두가 다 있다. 어찌나 훈련에 진심이신지. 수업 시간 동안 에너지를 잘 모아 두었다가 10분만이라도 훈련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좁은 복도에서 훈련을 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할까 걱정이 되어 교무실로 퇴장 레드카드를 날리고 축구공은 고이 보관해 두지만, 그 누구도 찾아가지 않는 현실. 우리나라 축구 인구 중 가장 열성적인 부류는 중학교 남자 애들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이렇게 매일, 매 시간 축구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퀴즈를 한 번 내 보겠다. 이 물건의 용도는?
물병 아니냐고요? 삐삐 틀리셨습니다. 이것은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수제 물총이다. 송곳도 칼도 없이 볼펜심으로 아주 정성스레 뚜껑에 구멍을 냈다. 몸통 부분을 누르면 물줄기가 시원스레 쭈욱 하고 나오는 친환경 장난감이올시다. 이러한 불법 무기류는 발견 즉시 압수해야 한다. 자칫 단속이 늦어져 불법 무기상의 손에 의해 수제 물총이 우후죽순 양산되면 보복성 물싸움이 시작된다. 복도가 물바다가 되는 것은 물론, 지나가다 물을 맞는 피해자, 미끄러지는 부상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전쟁은 남녀, 학급의 경계 없이 발발하기 때문에 더욱 단속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런 대단한 재주도 있다.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고 남은 시간,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꺄악. 와악. 우와아. 아악. 선생님! 무슨 일이야?
자, 아래의 사진을 보기 전에 천천히 상상해 보세요!
책상 위에 형광펜을 세우고, 그 위에 딱풀을 얹고, 다시 그 위에 지우개를 올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우개에 얇은 면으로 세운 자를 아슬아슬하게 올리는데, 자의 양끝에는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한 네임펜 두 개가 달려 있다.
책상 위에 우뚝 서 있는 조형물
어른이라면 하지 않았을, 보더라도 '이게 뭐야?'하고 피식 웃었을 이 대단한 도전에 30명이 동시에 왁자지껄 난리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조금 흥분해서 애들이랑 떠든 것 같다. 즐거움을 위한 이런 행동은 뭐 .)
얼마 전에는 학급 회의 시간에 과자 파티를 했다.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는 와중 어김없이 들려오는 꺄아하하하 하는 괴성. 체육 시간에 다리를 다친 아이가 붕대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야 내가 먹여 줄게 먹여 줄게' 하며 아이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은 이제 뭐 놀랍지도 않다. 발에 감았던 더러운 붕대를 눈에 감는 것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그 희생 정신과, 앞 못 보는 친구를 하나라도 더 먹여주려는 눈물겨운 우정에 절로 머리가 숙여질 뿐.
일반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소리라면 무슨 큰일이 일어났다고 사람을 불러도 몇 번은 불렀을 굉음이 수시로 들려온다. 쉬는 시간 복도를 지나다니다 보면, 다들 취해 머리를 흔들고 있는 록페스티벌장에서 나 혼자 정장을 입고 책을 읽는 느낌이다. 애들은 도대체 왜 이럴까. 나와 아이들 중 누가 이상한 걸까.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할까. 집에서는 조용한 아이라는데 두 얼굴 중 무엇이 진짜인가. 도파민 그 자체인 휴대폰을 빼앗겼기 때문에 이들은 더 이상해진 것일까. 물음표가 계속 둥둥 떠다녔다.
소음에 시달리던 어느 날 물음표 속의 느낌표를 발견하였다. 그 괴성에 담긴 웃음들을, 행복한 얼굴을 보았다. 평화를 파괴하는 폭탄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웃음폭탄이었다. 수업 시간 45분 동안 자제해 왔던 에너지를 쉬는 시간에 폭발시키는 것이다. 마구 흔들리던 콜라병의 뚜껑을 여는 순간 팍 터져나오는 그 시원함과 닮았다.
순전한 재미를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들.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런 재미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생활 속에서, 큰 소리로 웃기 위해서 이 아이들은 얼마나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인가.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삶을 살며, 누가 어서 뒤집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 붕어빵처럼 하루하루를 버텨 내고 있는 교무실 속 나의 모습보다 더 살아 있는 모습 아니던가.
전두엽 발달이 어떻고, 자아상이 어떻고, 사춘기가 어떻고는 치워 두자. 신나게 노는 중학생 아이들은 그저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 살아 있는 호모 루덴스 그 자체이다. 재미를 위해,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인간들에게 누가 돌을 던지리오. 어른인 나 역시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때 저절로 목소리가 커지고, 콘서트장에 가면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곤 한다. 아이들은 학교 복도에서 친구들과 그만큼 즐기고 있으니 최고의 가성비가 아니냐라는 생각이다.
'오늘 금요일이네. 주말에 뭐 하니?'라는 질문에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학원 가요. 학원 숙제해요'라고 대답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나는 주말에는 일 안 하는데'하는 생각에 애들이 딱하기도 하다. 그래서 즐겁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발버둥 치는 이 아이들을 나는 얼마든지 응원해 주고 싶다.
단, 수업 시간에 제대로 자신의 할 일을 할 것,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의 두 가지 원칙을지킨다면 말이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렵다. 이 두 가지를 지키게 하는것이 중학교 교육의 모든 것일듯)
그리고 나도 이 중학생 아이들에게 한 수 배워, 삶이라는 파티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신나게 깨방정 춤을 추는 유쾌한 인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