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부터 Nov 07. 2024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조퇴하고 싶어요.

가을이다. 날이 쌀쌀하다. 목이 칼칼하네.

"음음, ㅇㅇ중학교 1학년 교무실입니다. ㅇㅇ이 감기가 심한가 보네요. 등교하힘들 정도일까요? 네네 그럼 오늘 푹 쉬고 내일 등교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병원 진료확인서 잘 챙겨서 보내주세요."


오늘도 교무실은 환자들로 북적인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라는 독한 놈이 요즘 말썽이라지. 계절성 독감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고. 그래도 그렇지,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데 아이들은 왜 이렇게 아플까? (나도 출근만 하면 몸이 아프긴 한데) 자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환자분, 어떻게 오셨나요?" "머리가 아파요."

"언제부터? 열나는 것 같아? 아침은 먹었어? 어제 잠은 잘 잤어? 약 먹고 왔어? 아니면 아침에 기분 나쁜 일 있었어?"


교사 15년 차, 두 아이의 엄마. 야매 의사가 되어 아이의 상태를 진단하려 애써 본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할 일인지 조금 참아 봐도 되는 일인지. 안 되겠다. 이내 교내 전문가에게 던지는 SOS. 보건실에서 주시는 약 먹고 한 시간 침상 안정을 의뢰한다.


쉬는 시간. 또다시 찾아온 그 환자. 이때는 결과가 둘로 나뉜다. '이제 괜찮아요'와 '조퇴하고 싶어요'

안타깝게도 환자는 아직 몸이 좋지 않다는 증상을 호소하는데. 전문가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열은 없고, 아침에 밥 먹고 왔다고 해서 타이레놀 먹고 쉬었으니 조금 더 지켜보면 될 것 같다는 소견.


이때 나의 선택지 역시 두 . 보내느냐 붙잡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비 맞은 강아지 듯 토닥이는 눈길과 함께 구구절절 교복자락을 붙잡는 말이 이어진다.


"약 먹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약효가 아직일 수 있거든. 다음 시간 수학인데 요새 수행평가 기간 아니야? 오늘 선생님이 중요한 거 알려주시면 어떻게 해. 진짜 당장 병원 가야 할 것처럼 아픈 거 아니면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이 시간 지나면 점심시간이잖아. 오모오모 오늘 피자 나온댄다. 밥 먹고 놀다 보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힘들지만 조금만 더 참아볼까? 그러고도 안 되겠으면 그때 부모님께 전화해 보자."

그리고 지금 입에 쏙 넣으라며 야매 의사표 처방약을 건넨다. 복숭아 맛 비타민 사탕 한 개가 머리를 말끔히 낫게 해 주길.


옆에선 담임 선생님과 단골 환자의 브레인 게임이 펼쳐진다. 발목을 삐어서 어제부터 아팠다는 정형외과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고. 선생님은 한 번 걸어보라는 처방과 함께 매의 눈으로 절뚝대는 다리를 관찰한다. 아무래도 진단에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한데. '쌤, 얘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저랑 뛰어놀았어요!' 친구가 집에 가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친절한 내부 고발자 덕분에 이번 게임은 선생님의 승리로 마무리.


수업을 하러 교실로 가는 도중 만난 또 다른 환자분. 배가 아프다며 보건실에 다녀오겠단다. 내가 병원에 출근했던가. 가만 보니 땀이 뻘뻘 흐르네. 감이 온다 와. "너 점심 먹자마자 축구하다가 종소리 듣고 지금 막 5층까지 뛰어 왔지. 먹고 뛰었으니 아프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금방 나아. 마시고 얼른 들어와." 그렇게 우리 반 손흥민은 무사히 수업을 듣고 또다시 쉬는 시간 축구를 하러 나갔다는 후문이다. (살짝 조셨다는 것은 비밀이다)



               

아이가 아프다며 부모님께 전화를 하면 대부분 조퇴를 허락하신다. 지금 곁에 없는 내 자식이 아프다며 전화하는데 외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 터. 나 역시 아이가 지금 학교에 있기 힘들어 보이는데도 출결이 걱정되어 망설이시는 학부모님께, 요즘은 개근상도 없고 질병은 고입 성적에도 영향 없으니 걱정 마시라 친절히 안내하기도 한다. 아이를 보내고 서류를 챙기는 것 쯤이야 귤 까먹듯 쉬운 일이니까. 그에 비하면 떠난다는 사람 바짓가랑이를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미련하게 아픈 것을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조심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맞다. 아픈 아이가 꾀병을 부린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꾀병인 아이는 학교에 있기 싫은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설득이 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아서, 머리나 배가 살짝 아파서, 기분이 별로라는 이유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는 것. 그것을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인내를 통해 이룰 수 없는 것이 없다. -헬렌 켈러]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 중 인내 없이 얻어지는 것이 있던가. 깨끗한 우물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땀 흘려 깊숙한 곳까지 땅을 파야 한다. 땀 흘리는 순간이 힘들어 채 끝까지 파내지 않은 우물의 흙탕물을 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퇴하고 싶은 아이를 보며, 잠시의 편안함을 위해 내게 주어진 일을 미뤄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개근상이 없어진 시대. 개근상이 없어져서인지 더 이상 학교가 중요해지지 않은 건지. 요즘 조퇴가 무슨 대수냐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생활기록부에 쓰인 '개근'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새겨 본다. 어느 때고 주어진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한 사람. 혹은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견뎌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인내의 훈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쩐지 요즘 '나의 안위'만을 우선하는 까닭에 '개근'이라는 두 글자의 가치마저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하찮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라이킷 알람이 오면 기분이 좋다'는 말처럼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배우는 곳이 아니다. 삶의 태도를 만들어 가는 곳이다.

초등학생은 앉아서 배우고, 고등학생은 실전에서 달려야 한다. 그렇다면 중학생은 삶의 태도를 느린 걸음으로 연습해 보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등교해서 종례 시간까지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태도. 하기 싫어도,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해야 할 일을 하는 마음. 힘들어도 끝내 해내겠다는 의지. 다람쥐가 도토리 저금하듯 이러한 태도를 차곡차곡 모아 두어야 한다.


'몸이 안 좋았는데도 학교에서 스스로 이렇게 관리했더니 괜찮아졌네. 힘들지만 버티고 그럭저럭 해 낸 나 참 멋져.' 이런 경험을 가슴에 새기는 훈련의 시간이 되었으면. 그래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온전히 서야 할 때,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실전의 상황에 놓였을 때, 열심히 저금해 둔 인내의 달콤한 도토리를 꺼내 먹기를 바라며 오늘도 불러 본다.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죽어도 못 보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