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캄캄하다. 큰일이다. 근무 지역을 옮겨 발령받은 그 동네, 그 학교 무난하다고들 한다. 그래도 중학교는 싫다. 으악.
'요즘 중학생들, 장난 아니라던데?', '중2병 괜찮겠어?', '쌤의 카리스마로 애들 확 잡아버려!', '1년만 있다가 부적응 내신 써!', '그래도 생기부 쓰는 건 편하겠다.', '자유학기 골치 아프다던데.', '요즘 중학생들 시험 안보지 않아?', '애 키우기며 다니기에는 중학교가 좋지.', '학교 다 거기서 거기야'. 갖가지 걱정과 격려의 말들에 시작도 하기 전에 진이 빠졌다.
입시 최전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으쌰으쌰 공부와 싸웠던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로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10년 만에 중학생 아이들과 '부대끼는'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흐르는 것은 땀일까 눈물일까.
담임 선생님 소개를 하려고 들어간 교실에서 나를 바라보는 60개의 번쩍이는 눈과 만났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첫 만남은 아직도 설렘 반, 긴장감 반으로 범벅이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떨리는 목소리를 프로 교사답게 감추고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네모난 교실 속 아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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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펄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보다 더 긴장한 듯한 어색한 표정으로 온갖 호기심을 담아 보내는 시선, 칼주름이 살아 있는 교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온몸으로 내뿜는 에너지. "안녕하세요!!!!!!!!!!!!!!!!!!"인사하는 변성기 오지 않은 명랑한 목소리.
어? 귀엽다??
너무 예쁘잖아?!!
지난 10년간 고등학교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심각한 표정으로 레이저를 쏘며 공부하는 아이, 영혼 없는 얼굴로 칠판과 책을 보는 아이, 푹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가냘프게 버티고 있는 아이, 영혼이 빠져나가 쓰러져 버린 아이들로 가득 찬 고등학교 교실 풍경이 11월의 애처로운 낙엽 같다면,
중학교 교실은 이제 막 푸릇푸릇 피어나는 3월의 새싹 같았다. 아이들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이 퍽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배시시 떠올랐다.
중학생 아이들은 정말 푸릇푸릇했다. (새싹이미지, 픽사베이)
'그리고 저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하였습니다 :)'
이게 결론이라면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겠지.
사실 이 이야기는머리를 쥐어뜯으며 기록한 나의 중학교 근무 일기이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중학생 아이들을 이해해 보려 노력한 처절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나의 첫 학교, ㅇㅇ중학교의 샤랄라 신규 교사 시절. 그때는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였을까?
어찌 된 영문인지 애들의 이모뻘 혹은 엄마뻘이 되어 돌아온 중학교에서 나는 날마다 중학생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한다. 미운데 예쁘고, 귀여운데 화나고, 재미있는데 답답하고, 보기는 싫은데 걱정되는 이상한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길고 긴 여정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아 저 중학생 아이들의 모습이 내게도있구나!!'였다.
어린아이들은 귀여움의 필터로 커버하고, 좀 더 자란 사람들은 사회생활의 가면으로 감추고 있는 부끄러운 바로 그 모습. 내 안에 감추고 있는 그 모습을 좀 더 날것으로 보여 주는 것뿐이었다.
아이들은 이상한 외계 생명체가 아니었다. 팔딱 대는 아이들의 일상을 함께 하며 중학생 아이들에 대해 이해하려 입에 단내가 나게 잔소리하다 보니 아이들의 마음이, 생각이 띠리띠리 와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 근무 3년이 다 되어간다. 근무지 이동의 유혹이 나를 감싼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에서 탈출하는 대신 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화병 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이들이 조금 더 예뻐 보였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나게 좋은 선생님, 멋진 어른인 것 같지만 매일매일 아이들과의 관계는 파도를 탄다. 서른 명 남짓 모인 우리 반에는 날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내 마음도 하루에도 여러 번 맑았다 개었다 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웃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나 스스로도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앞으로도 이곳에 남아 살아 있는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잘 부탁한다 얘들아!
나의 교무수첩. 치부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앞으로 이어질 글들에 나오는 일이 100% 사실은 아닙니다. 누가 보고 놀랄까 싶어 이름도 바꿨습니다. 몇 년 동안 쌓인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은영 박사님도,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열심히 보기는 합니다. 티쳐스도.... 결혼지옥도.....ㅎ 그냥 문제해결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인 걸까요.)
그저 학교에서 십몇 년째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니, 가정에서 몇 명의 아이들만 상대하는 학부모님들보다는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조금 더 많았던 사람입니다.
저의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 우리 집에 있는, 우리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아주 조금만 더 이해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실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 같습니다.
(옛날부터 작가의 말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써 봤어요. 에필로그 쓰는 그날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