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문제 출제 기간이다. 문제를 만들다 보니 지난 중간고사 꼴찌의 영광을 안겨 준 우리 반 아이들 얼굴이 동동 떠오른다. 귀여운데 답답하고 안타까운 그 얼굴들. 그래서 오늘은 공부 얘기를 좀 해 보겠다.
중1부터 고3까지 모두 가르쳐 본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중학교 지필평가 점수는 ‘노력하면 70점 정도는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얼마나 노력해야 하느냐는 개인에 따라 다른 것은 당연한 사실. 이렇게 대답하면 초등학생의 부모님은 ‘70점 낮은 거 아니에요?’, 고등학생 부모님은 ‘70점 맞기가 어디 쉬운 가요?’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의 수준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는 아이의 성적을 산출하기 위한 시험이 없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기본 개념을 알 수 있는 간단한 문제 형식의 단원평가를 주로 보고 있다. 아이가 받아오는 시험지의 점수는 생기부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배운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반해 고등학교의 평가는 상대평가로, 지필평가(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철저히 줄을 세우기 위한 시험이라고 볼 수 있다.(슬프지만 현실이 그렇다.) 문제를 쉽게 내서 100점이 속출하거나 동점자가 많이 나오면 모두 다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예를 들어 10명만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과목에서 100점이 11명 나왔다면, 모두 다 2등급이 되는 불상사가 발생)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몇 문제 정도는 아주 어렵게 낸다. 그래서 평균도 중학교 시험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중학교는 어떤가. 중학교 성적은 절대 평가로 수행평가, 지필평가 점수를 합산하여 90-100점은 A, 80-89점은 B 이렇게 성적을 준다. A등급을 받은 인원수가 몇이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필평가 문제를 어렵게 내서 성적이 안 나오면, 우리 학교 애들만 고입 내신 성적을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문제를 어렵게 낼 이유가 없다. ‘물내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게다가 중학교 시험 문제는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설명한 내용이나 지문에서 벗어나지 않은 문제를 낸다. 출제자 직강으로 수업한 내용만을 범위로 문제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하면 누구나 70점 정도는 맞을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 한 학기에 지필 평가를 두 번 실시하고 있다. 학교 끝나고 뭐 하니? 물어보면 맨날 학원 가고, 주말에도 학원 숙제 한다길래 공부를 꾀나 잘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 평균은 75점, 실제 평균은 60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가. 이 어렵지도 않은 문제에 대한 점수가 왜 이럴까.아이들이 중간고사를 망한 이유를 ‘마음 편’과 ‘실전 편’으로 나누어 오답 노트를 작성해 본다.
1. 시험 못 볼까 봐 공부 안 해요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하는 비겁한 변명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되는데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할까 봐 공부를 하지 않는다니?
상황 1. “야, 너 성적이 왜 그러냐?” “그러게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안 나와서 속상해.” 상황 2. “야, 너 성적이 왜 그러냐?” “공부 안 했거든 ㅋㅋ”
엄마나 선생님이 보기에는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속 터지는데, 이 유형의 아이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상황 1은 ‘머리가 나쁜 애’로, 상황 2는 ‘선생님이, 엄마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 공부 안 하는 웃긴 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했는데 시험을 못 보는 것’은 창피하고 ‘공부를 안 해서 시험을 못 보는 것은 쿨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잘 살펴보면 ‘노력했는데 잘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마치 다이어트를 해도 늘씬해 보이기는커녕 얼굴만 늙어 보일까 걱정되어서, 안 긁어진 복권인 채로 살기로 결심한 나처럼 말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 그러니까 열심히 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아'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성적이라는 것이 투입한 노력에 비례해서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두려워한다. 오히려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일도 당연히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력이 지금 당장은 나를 배신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뜻. 공부라는 것은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딱딱 나오는 자판기가 아니다. 어떨 때는 자판기가 동전을 꿀꺽 먹어버리는 일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넣은 그 동전이 마법처럼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다.
공부한 것은 절대로 어디 가지 않는다. 노력은 지금 당장은 나를 배신할 수 있어도, 마지막에 가서는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공부한 것이 바로 결과로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효과가 다음 시험에 나올 수도 있고, 고등학교 때 나올 수도 있다. 중학교 공부는 노력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시험 문제를 내신다는 것을 믿고 일단 자판기에 동전을 계속해서 넣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또 모르지. 동전을 먹어버린 자판기를 쾅쾅 두드리다 보면 갑자기 음료수가 후드득 쏟아져 나올 지도.
2. 저는 원래 00에요.
평소 말이 엄청 많은 우리 반 아이가 있다. 학년 초 학부모 자기소개서에 '아이가 말이 많아 걱정입니다'라고 쓰셔서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이번 성적을 보니 '아 걱정하실만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평소 자주 하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나는 이과형이야, 나는 MBTI가 T여서 국어를 못해, 나는 외우는 걸 잘 못해. 그래서 영어, 사회는 잘 못해.'이다.
사람은 자신이 설정한 정체성을 넘지 못한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나는 운전을 잘 못해'라며 운전을 늘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면? 그 사람은 운전할 기회가 점점 더 없어지고, 안 하다 보니 더 잘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 자신이 없어져 장롱면허 신세가 된다. '나는 수학, 과학만 잘하는 이과형 인간이야.'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해 둔 아이는 그 정체성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수학, 과학 외의 과목은 공부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과목의 공부는 억지로 해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내가 설정한 내 정체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부를 안 해도 초등학생 때처럼 점수받을 수 있을걸?’이라는 잘못된 믿음과의 콜라보까지 성사되었으니 걱정스러운 성적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
아이가 ‘나는 뭐가 좀 약해, 나는 이과형이니까 수학 과학만 잘하면 돼’ 하는 식으로 공부와 관련된 자신의 정체성을 잘못 규정해 놓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잘못된 정체성이 설정되면, 어떤 좋은 것을 가져다줘도 받아먹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기는 아직 연습 기간이라 볼 수 있으므로 노력하면 충분히 뒤떨어진 학습을 만회할 수 있는 시기이다. 또한 삶에서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시기이므로 공부 편식이 있어서도 안된다. 그래서 중학생 시기 아이가 올바른 공부 정체성을 설정하도록 도와야 한다.
3. 우리 엄마가 공부 안 해도 된대요.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 학교에 재벌집 막내아드님들이 다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실 재벌집 할아버지가 학교를 다니셔도 나는 공부는 열심히 하시라고 잔소리를 할 것이다. 하이고 선생님, 요새 공부 말고도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그러세요. 꼰대세여? 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게 '학생의 일'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직장에 나가서 일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듯이, 아이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아이는 없다. 특히 '중학교 공부'라면 더욱더.
중학생이 하는 공부는 대단한 학문은 아니다. 중학교에서는 삶을 살아가고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생각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을 배운다. 중학교 수준의 공부를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무식해서, 뭘 몰라서' 힘든 일을 겪거나 남에게 무시를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사회 시간에 배우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뉴스를 보고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학생 때 배우는 내용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꼭 씹어 다 잘 소화시키고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 (물론 나중에 다시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전문가인 선생님에게 직접 자세히 설명을 듣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공부 안 해도 돼'라는 말에는 어떤 마음이 들어 있을까? '스트레스 주기 싫어'라는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다 보면 "아유, 아직 어린데 아직은 공부 열심히 안 해도 되는데 딱해요."라며 여린 마음을 내비치시는 분이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나는 "아니오.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열심히 하기 힘듭니다. 공부는 원래 힘든 겁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고 되는 일이 있나요. 견뎌야지요. 보통의 아이들은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래야 나중에 공부든 뭐든 잘할 수 있어요."라고 그야말로 선생님다운 대답을 하기도 한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다 보면, 아이가 힘든 상황이 싫어서 모든 불편사항을 차단시켜 주는 부모님이 종종 나온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작은 불편도 견디지 못하고 더욱더 예민하게 되어 힘든 삶을 살게 되니, 힘든 상황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는 솔루션이 제시되곤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공부는 쉽지 않다. 그런데 그 힘든 공부를 스스로 견뎌내는 과정에서 아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단순히 성적이 오르는 문제가 아니다.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보았다는 뿌듯함, 그 결과 얻게 되는 아주 작은 성취가 아이를 진짜 자라게 한다.
공부하라고 아이를 닦달하며 잡으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아이가 공부 때문에 힘들어할 때 '힘들면 하지 마' 대신 '아이고 많이 힘들지. 공부 진짜 어려워. 마음대로 잘 되지 않기도 하고. 원래 힘든 거야. 근데 쉽게 얻어지는 것보다 힘들게 노력한 끝에 얻게 되는 열매가 더 맛있는 거 알지? 우리 그 열매 따먹어 보자. 오늘 떡볶이 어때?'와 같은 채찍과 당근이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스승은 나를 배움의 문 앞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 뿐 거기서부터는 오로지 내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한유(중국의 문인)
대단한 선생님, 학습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공부 마음이 단단하게 서는 것이다. 아이들의 중간고사를 망치게 한 잘못된 마음 가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