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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롭게 Nov 09. 2024

토요일 아침, 라테와 초코치즈케이크

햇살이 아름다운 오늘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의 선택은 카페라떼와 초코치즈케이크.

그리고 글쓰기를 위한 산책


토요일 아침, 아이들을 내려주고 글을 쓰러 카페에 왔어요.

가려던 카페는 12시 오픈이라 동네를 산책하다가 들어온 카페는 제가 집에서 듣던

음악과 비슷한 잔잔한 음악이 나와요. 참 고요하고 좋네요.

제 앞에 두 부부가 보이네요.

내 앞의 두부부는 동화 속 부부들처럼 아름답네요.


13년째 제 옆에 있는 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살쾡이 같은 저와 사는 남편은 순하고 뚱뚱한 동네의 넉살 좋은 고양이 같아요. 우린 서로 싸우지 않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둬요.


이번 이사는 너무 극? 적이었다고 해야 할지. 버라이어티 했어요. 대출과 서류만 챙겨달라고 하고 맡은 역할에 충실히 이사준비를 해나갔어요. 그런데 이삿날 전날 나머지 잔금을 못 구한걸 저녁 9시 15분에 알게 되었다죠. 아이고 남편아 ㅠㅠ 트리플 A형인 우리 남편은... 말을 했을까요? 흠, 아파트와 관련된 은행의 돈은 제가 확인이 어려워요. 남편의 말을 믿었더랬죠. 그러다 탈이 났네요.


이래저래 이사를 하고 난 뒤 온 곳은 실제 집을 보지 못하고 날짜가 맞는 집을 찾아 1달을 찾다가 우연히 제가 생각도 못했던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 과정 속에서 앞이 깜깜하고 보이지 않았죠.


전셋집은 처음이라 더 두려웠던 것 같아요. 계약 후 보게 된 집은 갈색, 갈색, 금색, 음.. 여기는 몇 년도인가. 싶었죠. 흠집이 가득한 마룻바닥이 있고 거미줄도 가끔 생기는 이 집은 제가 치우지 않아도 티가 안 나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에 초깔끔한 남편과 잘 도착한 것 같아서 감사한 요즘입니다.

아이들과도 우리가 깨끗하고 좋은 집에 이사 갔으면 이렇게 편하게 지내긴 힘들었을 거라고 지금 이 집이 감사하다고 이야기해요. 



이사 후 2달이 거의 다 되어가요.

2달 동안 그전에 못했던 집 정리를 하고 가구를 하나씩 사고 조립을 하고 청소를 하고 일을 하고 아이들 픽업을 하고 글쓰기 숙제를 하고 무한 반복의 50일을 보낸듯해요.


내가 뭘 샀더라. 기억도 안나는 하루하루. 쿠팡맨에게 너무 감사한 요즘.

쿠팡과 배송기사님들의 배달 덕분에 집이 잘 채워졌어요. 살림은 어렵지만 가구조립은 재미있어요.

뚝딱뚝딱 하나씩 만들어가는 나날들이었죠.

                                                         

아침에 찾아온 카페는 올리브나무도 있고 파키라 나무, 고사리과 나무도 있네요.

'어머 내가 이런 곳을 왜 겉모습만 보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파키라나무와 치즈초콜릿케이크

사장님께 죄송하지만 간판 바꾸시면 안 되냐고 물어보고 싶네요. 카페 안은 매우 편안한데 간판은 너무 로맨틱한 느낌이라 꺼려졌거든요. 저라면 나무간판에 네임만 적어둘 것 같아요.' 잡생각을 해봅니다.


따뜻한 사장님은 말을 건네주셨어요.

혹시 무용하시나요? 귀가 막힌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죠. 사장님의 질문을 칭찬으로 받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교회 율동에 박자도 못 맞추는 저라서 그렇게 봐주심에 감사하죠.


예술 쪽이신 거 같다는 말에 저는 미술을 해요. 짧은 대화가 저에게 위로가 되네요. 요즘 초췌해 보이는 나 자신에 자신감을 잃어가요. 사장님의 칭찬에 웃게 되네요. 40살, 누군가는 무언가를 이루었고 누군가는 정체되었고 누군가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겠죠.


저는 복지관과 학교로 수업을 가요. 아이들에게 잘하고 있다며 너는 서울대를 가겠다며 학교문제아로 찍혀서 전학을 오게 된 아이에게 아무 말 대잔치를 펼쳐요. 작은 관심이 그 아이를 성장하게 할 거라는 것을 알기에. 수강생분들께 늘 용기를 드리는 말을 하면서 저에게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네요.


아침에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주며 서울대 투어가 있는데 혹시 가고 싶니?라고 물었더니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맘대로 정하면 너희가 또 고려대 가고 싶었는데 할까바요. 저희 아이들은 고려대 과잠바를 갖고 싶어 해요. 가고 싶은 학과가 있는 건 전혀 아니고요. 치어리더라 멋져서예요. 과잠바가 예쁘대요. 엄마, 아빠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 너희에게 자꾸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구나. 라며 아침이야기를 나눴어요.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국립대가 저의 입시시기에는 점수가 낮아도 갈 수 있는 데었는데 엄마는 그것도 못해서 좋은 대학엔 가지 못했어. 그래서 그 이후 더 열심히 살게 되었어. 아빠도 마찬가지야. 너희가 지금 열심히 하느냐 나중에 열심히 하느냐에 달렸다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엄마 후회하지 마 지금 잘하고 있다며 위로를 해주네요.


왜 책 읽기가 20대부터 좋아진 걸까요.

참 그땐 왜 공부를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책상에 있었는데 분명 보고 읽고 있었는데, 과외도 해주셨는데.

부모님께 참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못해주기에.


20년 뒤면 60이 되겠죠

부모님도 그때가 되면 안계실수도 있겠죠.

틈틈이 하루하루 10분이라도 2분이라도 전화라도 걸어보시길요.

저는 아이들 내려주고 난 뒤 아침 안부를 물어요.

따뜻하게 잘 주무셨는지 안부를 묻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도 비 새는 곳은 없는지.

식사는 하셨는지. 가끔의 안부만으로도 효도가 될 수 있어요.


어떤 글을 보게 되었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갈 수 있고

이 정도의 삶이면 행복한 삶이라는 글이었어요.

지금 양쪽부모님 모두 살아계시고 가족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모두 평안하시길요.


평안할 수 없을 때에도 감사

아무 일이 없음에도 감사

감사할 수 있게 하심에도 감사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


 

저희 집과는 반대인 상상하는 거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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