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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의 해체

by 최벼리

대학교 이후 친구보다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진정하고 오래 가는 친구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내 경우는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물론 대학교 졸업 전까지는 내향형이었다가 이후 판매 아르바이트와 자취를 시작하면서 외향형으로 바뀐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창시절을 보냈던 김포를 완전히 떠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내가 김포에 계속 살았다면 학창시절 친구 관계가 유지 되었을까? 글쎄다. 지금 고등학교 친구들이 어디에 사는지를 추적해보면 김포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까마득하다. 김포와 가까운 인천 서구라든지 서울 강서구에 사는 친구들은 그나마 나은 경우이다. 파주, 용인, 화성 등 경기 남부권부터 부산, 김해에 사는 친구들까지 있다.


이렇게 친구들이 각지로 파편처럼 흩어진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와 주거 때문이었다. 김포에서 서울을 거쳐 하남에 오게 된 나도 그렇다. 고등학교 때 모든 친구들의 꿈은 인서울이었는데, 상위권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있었지만 으레 시골에 사는 학생들이 그렇듯 문화생활과 인프라가 갖춰진 곳으로 ’상경‘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다들 대학교를 서울로 가고 일자리 역시 서울이 압도적이니 근처로 집을 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 집값은 이제 다른 세계의 숫자처럼 되어버렸고 주택 공급이 많은 경기도 근방으로 가게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청약을 넣으면서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전역을 다 찔러보는, ’하나만 걸려라‘는 생각으로 넣곤 한다.


창작물에서는 흔히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온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을 학창시절 친구 사이로 설정한다. 그리고 배경은 항상 서울의 어느 동네로 깔린다. 경기도라면 어떨까. 새로 이사 와서 서로 모르는 관계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작법 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라는 설정이 진부하고 환상같이 느껴지는 편이라, 안 지 얼마 안되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삼는 작품들이 많았으면 한다. 동네 친구가 꼭 몇십년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관념적으로 나의 동네친구는 해체되었지만, 또 다른 자리에 새로운 인연이 자라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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