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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자리는 어디에

by 최벼리

더 이상 디자인 업계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서울을 떠나게 됐다. 그런데 그 다짐을 이어나갈만한 후속 조치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냥 일단 떠나고 생각하고 싶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아무 계획도 없이 떠나는 즉흥 여행처럼 양주로 이사를 했다.


일단 구직 등록을 해보기로 했다.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내 이력서를 등록했는데 자꾸만 오는 추천 공고 내용은 나와는 맞지 않아 한숨만 나오게 만들었다. 주 6일 근무가 기본, 2~3교대, 월급은 최저임금에 불과했다. 게다가 축사 관리와 같은 현장직이 대부분이라 나 같은 예체능 전공 대졸자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직업상담사분은 매칭이 어려웠던 나에게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셨다. “... 다시 디자인을 해보시는 게 어때요? 웹디자인 자리는 많이 있어요.”


그 때 당시는 디자인업계에 많은 상처를 받았던 때라 다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일단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싶어서 공공근로를 시작했다. 일은 그렇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다만 이것이 정식 직장은 아니기에 앞으로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 많은 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중 하남으로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망설이는 나에게 할머니는 '사람은 젊어서는 모름지기 서울에 살아야 한다'며 서울에 살지는 못한다면 가까이라도 살아라.'라며 이사 가는 것을 적극 추천했다.


하남이 양주보다는 서울보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자리가 당장 구해지는 건 아니었다. 내가 도착할 당시 하남은 아직 개발이 다 완료되지 않았기에 양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진로 고민을 더해가고 있었던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회사가 있는 곳과 생활권이 일치하는 직장은 서울에 사는 것 말고는 없는 걸까? 어차피 어딜 가나 지하철타고 버스 타고 1시간 통근을 할 텐데 그것은 너무 질린다. 하남에는 또 양주만큼이나 회사가 없다. 그럼 내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하남시로 공무원 시험을 쳐 보는 건 어떨까. 물론 단순하게 이 이유만으로 공무원이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적성과 같은 복합적인 문제도 고려를 해 보았다. 그런데 확실한 건 통근거리와 일자리 두 가지 문제로는 공무원만이 답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약 2년 반 뒤인 2021년, 일을 병행하면서 준비한 끝에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걸어가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버스로는 30분만 가면 된다. 경기도민으로써 기나긴 통근길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이 결국 관내에서 직장을 구한다는 것, 그것도 공무원 시험 준비하기라는 것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썩 명쾌한 해답이 아니어서 허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이런 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추천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


누군가 "회사가 서울인데 다니기 힘들어." 라고 말했을 때, "그럼 회사 앞으로 이사 가면 되겠네." 라는, 1차원 적이고 공감능력이 결여된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 좀 더 뚜렷하고 현실성 있는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평소 출퇴근을 하면서도 그동안 겪어왔던 경기도민으로써의 피로감을 자주 상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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