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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경기도민

by 최벼리

김포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고촌읍에 있는 ’L모 호텔‘의 존재를. 서울에 나갔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 한참 들판을 달린 후 저 호텔이 보이면 ’여기서부터는 김포에 다 왔다는 뜻‘와 같은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이 호텔을 보면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싶은 안도감이 든다.


하남에 사는 지금도 비슷하다. 밤 10시 넘어서도 서울 한복판에 있다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집에 가는 차편을 걱정하는 것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몇 번 지하철을 환승하고 빨간 버스에 올라 올림픽대로를 달린 뒤, 한참 뒤에 나오는 아파트들이 위의 L모 호텔과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분명 인프라, 교통, 문화생활 모든 면에서 서울은 완벽하지만,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그 안에 없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교외야 말로 내가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충전한 느낌이 든다. 단순히 오랫동안 경기도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어떨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지 가치관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론이다.


보다 맑은 공기, 널찍한 도로, 잘 꾸며진 집 앞의 공원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서울의 인프라가 필요하다면, 큰 맘 먹고 체력을 충전해 보부상 차림으로 나가는 일이 일상의 이벤트가 되어 주고 있다.

앞으로 인생에 별다른 변동이 없다면 계속 경기도에서 살고 싶다. 한때는 서울이 부러웠었고 서울에 살지 못하는 형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래도, 경기도민이고 싶다.

나를 가장 편하게 해주는 환경이자 정체성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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