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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의 강박

경기도민의 What’s in my Bag

by 최벼리

주중에는 관내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인지 주말에는 여전히 나의 ’문명 체험‘을 위해 서울로 나가고 있다. 일단 기본 30분 이상이 걸리므로 거리에 따라 짐부터 싸야 한다. 다행히 직장을 관내로 다니게 됐으니 평일에도 짐을 싸는 수고는 덜었다만, 그전까진 나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 보부상‘이었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아이템은 경기도민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보조배터리와 핸드폰 충전기다. 차라리 이어폰을 안 가져오는 것은 음악만 안 들으면 되니 괜찮다. 핸드폰이 꺼진 상태로 1시간 이상 허공만 응시한다는 건 현대인에게 고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용량은 5000mAh가 기본이고 벽돌처럼 무겁지만, 10000mAh짜리를 가방에 담을 수 있다면 마치 비상식량처럼 그것만큼 든든한 것이 없다. 2순위로는 이어폰, 3순위로는 책이나 OTT 등 교통수단 안에서 시간을 보낼 콘텐츠를 챙겨야 한다. 나는 이동시간에 볼만한 것들이 없어질까 봐 평소에 킬러 콘텐츠들을 일부러 안 보고 쟁여놓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가방에 한가득 싸가지고 다니는 주말은 평소에 미니백으로 출근하는 날보다 몇 배는 더 피곤했다. 그런데 가방 말고도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를 발견했다. 서울에 나갈 때는 모든 볼 일을 한꺼번에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나갈 때 반드시 노트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나가는데, 그 체크리스트를 해치우고 나서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스폿이 있다면 한 군데라도 더 가게 된다. 홍대에 갔다면 간 김에 합정도 가줘야 되고 합정까지 갔으면 망원도 들리고 하다 보니 체력이 바닥나 만신창이 파김치가 되어버린다.

더 이상 나는 20대 초반 대학생 때의 체력이 아님을 깨닫고 나서는 용건 하나에 한 스폿만 가도록, 다시 또 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사는 사람이 부러운 건 부정할 수 없다. 동네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을 큰 마음먹고 나가서 온 스폿을 돌아다니는 경기도민과, 사람 없을 시간 가벼운 마음으로 핫플에 가서 원하는 걸 구해올 수 있는 서울인은 분명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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