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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버스 인생

by 최벼리

경기도민에게 ’ 빨간 버스‘로 불리는 광역버스가 없다면? 간간히 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도 이동은 가능하겠지만 돌고 돌아 제대로 시티투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남·종로·홍대·잠실 등 서울의 주요 거점으로 가장 빠르게 당도하기 위해서는 빨간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특히 빨간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목숨 줄처럼 여겨진다. 버스를 놓쳤거나, 탑승 인원을 초과해서 버스를 보내버린다면 그날은 다음 배차에 따라 작게는 10분에서 최대 1시간 정도 지각이 확정된다. 정시성이 보장되는 지하철과 달리, 도착해야 하는 시간보다 30분~1시간을 여유를 두고 나오는 것이 좋다.


마을버스처럼 자주 다니는 빨간 버스가 아니라면 집에서 카카오버스 어플을 보면서 나갈 준비를 한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차가 왔다면 서울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는다는 ‘Request stop(*손을 흔들어 버스 정차를 요청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왜냐고? 버스 기사님은 먼 길을 가기 위해 강한 자들만을 탑승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는 뻥이고, 배차간격을 지키기 위해 정차를 스킵하는 구간이 많으셔서 그렇다. 서울 사는 친구는 ‘저 지금 이거 안 타면 죽어요. 제발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나의 몸짓을 보고 정말 이상한 사람 보듯 했다. 정차 안 하면 신고하면 되잖아? 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단다. 그냥 그에 걸맞은 강한 자가 되는 수밖에.


서울 친구가 더 놀라워했던 것 하나는 좌석 뒤편에 핸드폰 충전기가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USB-A타입에 C타입도 같이 있는 곳이 있다! 서울 나갈 때는 보조배터리며 충전기며 바리바리 싸들고 보부상처럼 나가게 되는데 충전기가 내장된 좌석은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빨간 버스의 운행 거리는 30분에서 길게는 120분까지나 되는데, 자는 것도 아니고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 하기? 미칠 것 같다.


대개 버스 노선은 [집 – 여러 단지 순환 – 고속도로(IC 경유) - 서울 거점역] 이런 순으로 짜인다. 같은 시군을 지나면 그린벨트로 지정된 시골 풍경이 나오고, 그다음 서울에 도착해 도심으로 가면 스카이라인이 점점 높아진다. 몇 시간 만에 보는 창 밖 모습이 이렇게 다이내믹한 곳이 또 있을까.


한편, 경기도의 팽창으로 빨간 버스가 시내버스를 대체하기도 한다. 빨간 버스는 아무리 해도 배차가 10분 이내인데 시내버스는 20분쯤 되니 같은 시군을 이동하는 데도 2800원을 내고 광역 버스를 타게 된다. 서울로 나가는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같은 시군 내 이동은 훨씬 미치지 못하니 도시의 자족력과 외부 통근자의 비율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자족기능이 눈에 띄게 향상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빨간 버스의 시내 빗자루 질(*짧은 배차간격으로 버스가 많은 승객을 쓸어가는 행위)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가히 경기도민의 삶을 ’ 빨간 버스 인생‘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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