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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2)

by 최벼리

2017년, 옥정신도시 내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주변에는 지어지거나 짓고 있는 아파트들만 있고 아무것도 없었다. 겨울이라 베란다 앞에 드넓게 펼쳐진 들판 뷰가 더 황량해 보였다. ’신도시 그까짓 거 딱 2년만 버티면 좋아진다!‘는 나만의 저점매수 철학을 다지고 왔는데 금방 막막해졌다.


가족들은 두고 나만 먼저 이사를 왔기에 집 안에 가전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밖에서 밥을 모두 사먹어야 했는데 김밥천국만이 유일한 밥집이었다.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하려고 하니 하필 폭설이 와서 눈이 20cm 정도 가량 쌓였다. 여행용 캐리어에 빨랫감을 담아 왕복 40분을 걸어서 갔다. 택시조차 잡히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안 그래도 백수였는데 이런 곳에 고립될까봐 걱정이 됐던 나는 토익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아침 6시 40분까지 90번 버스를 타고 양주역에 가야 아침 9시 수업에 늦지 않는다. 종로3가역까지는 지하철로 52분이 걸리는데 환승이 없으니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개강하고 보름쯤 되면 수강생이 하나 둘 씩 나오지 않아 소규모 수업이 가능하다. 장거리여도 나는 이렇게 열심히 주5일을 출석하고 있다며 뿌듯해 했지만... 1달 반복 후 앓아눕는 엔딩으로 끝났다.


몇 달 뒤 잠실 가는 광역버스 G1300번이 개통해서 서울로 가는 길이 훨씬 편리해졌다. 그래도 양주와 서울의 물리적 직선거리는 23km나 되기 때문에 큰맘 먹고 나가야 했다.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나에게 문자 하나가 날아온다.



하남미사 XX블록 예비번호 000번. 0월0일 00에서 현장계약 진행합니다.


어라? 안 될 것 같아서 잊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신도시에서 다른 신도시로 갈아탈 기회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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