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설계사로 일하던 아빠의 회사는 여의도에 있었다. 그 회사가 계속 여의도에 있을 줄 알고 의왕에서 김포로 이사를 간 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얼마 뒤 회사는 강남으로 옮겼고 아빠는 그로부터 약 18년가량 김포에서 강남까지 통근을 했다.
김포에서 강남까지는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이 걸렸다. 60번 버스를 타고 당산역까지 간 다음 2호선으로 갈아타 역삼역에서 내리셨다. 아빠는 늘 7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아침을 먹겠느냐고 엄마가 가끔 물어보면, 계란 프라이 하나만 먹고 나갔다.
아빠는 평일이면 늘 9시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안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어렸을 땐 이해하지 못했다. 왜 아빠는 매일 늦게 들어올까,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잠부터 자는 것일까.
주말이 되어서도 아빠는 늘 잠만 잤던 것 같다. 가끔 서울로 놀러가기도 했지만, 아빠는 늘 무기력했다. 집안일이나 자식에 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는데, 그럴수록 나는 나의 학교생활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꿈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랬다.
언제는 아빠한테 물었던 적이 있다.
“아빠는 내가 학교에서 몇 등을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알아서 잘 하겠지 뭐.”
이게 날 믿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무관심한 것인지 그 뜻이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못했다. 그땐 몰랐었다. 관심을 가질만한 기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아빠 직장도 멀고 하니 서울로 이사를 가자고 졸랐다. 하지만 자가를 어렵게 가지고 있는 어른의 자존심이었는지 이사는 한 두어 번 알아보다가 없던 일이 됐다. 아빠만 희생하면 아무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국 아빠는 오랜 통근길에 지쳤는지 병이 났고, 4년 전 어느 날 하늘길에 올랐다.
가끔 생각한다. 아빠가 그래도 장시간 통근을 하지 않았다면, 7시에 들어왔다면, 나랑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럼 아빠가 아프지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
하늘에선 부디 일찍 퇴근하는 삶이길.
자식이 학교에서 받아온 성적표를 한 번 쯤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