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것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한강에 쉽게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성산동에서는 걸어서 15분이면 망원 한강공원이 있었고 버스를 타고 좀 더 가면 하늘공원이 있었다. 물론 경기도에도 한강이 접해 있지만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이거나, 주거지와는 거리가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경기도에도 다른 공원이 있겠지만, 나는 한강공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이 좋았다.
일단 야경이 예쁘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공원들이기 때문에 교량과 고층 건물들이 잘 어우러진다. 망원 한강공원은 여의도나 반포한강공원에 비해 고층건물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성산대교가 꽤나 예쁘고 사람이 적어서 혼자 차분히 마음을 다지기에 참 좋은 곳이다.
아빠가 집에 늦게 들어올 때, 혹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집에 돈이 없어서 대학을 자퇴해야 되나 고민할 때 나는 이 망원 한강공원을 찾았다. 사람이 적다는 건 혼자 목 놓아 울기에도 적합한 공간이었다. 엔제리너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하나를 시켜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강은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데 내 청춘은 그런 불빛에 튕겨져 나가는 어둠 같았다.
그럼에도, 한강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주었다. 집 근처에 이렇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됐다. 김포에 살 땐 베란다에 나가서 우는 게 전부였는데 서울은 어떻게든 집 밖으로 일단 나와 보라며 달래주는 것들이 많았다.
한강공원이 아니었다면, 갈 곳 잃은 나의 슬픔과 분노를 삼키기만 했을 것이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 크게 좌절했던 청춘에게, 한강은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네가 꿈꾸던 서울에 왔으니, 너의 오랜 꿈도 언젠간 이루어질 거야. 아직 놓지 마.'
그래서 더더욱 눈물로 나의 감정을 비워냈고, 곧 나는 현실에 맞서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