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뚜껑을 더한 글자가 모을 회(會)이다.뚜껑과 받침이 모여서 '서로 잘 들어맞는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래서 '모이다'라는 '부합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인데예전 떡을 만드는 과정을 상상해 보면 이 글자의 모양이 시루를 찌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증기가 위로 올라가고 뚜껑으로 수증기의 증발을 막은 모습, 그 모인 뜨거운 증기로 떡이 쪄지도록 만드는 원리. 다시 말해 뚜껑이 잘 맞아야 증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내부의 쌀가루를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뚜껑이 잘 맞지 않으면 떡은 익지 않게 되고 이는 잘 맞지 않고 부합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한 사람의 오늘이라는 시간이 있기까지는 반드시 어제가 있었고 그제라는 시간이 있었다. 각 개인에 따라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행복한 기억만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듯 모두 다른 어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나는 바로 그 어제, 그제의 내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떡이 쪄지듯 어제라는 경험, 그제라는 경험이 나에게 뜨거운 열기로 스며들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의 나는 존재했을까. 비록 그 뜨거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의 성장이나 완성을 위해선 꼭 필수록 겪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처음부터 떡으로 태어나는 쌀도 없고 처음부터 뜨거운 물로 샘에서 솟아나는 샘물도 없다. 그저 자신의 숙명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뿐.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고 도중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난 설익은 설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덜 익은 채로 말라버리는 떡또는 설익은 설기가 인생의 목표인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이왕 쌀에서 떡이 되기로 정했으면 고소한 콩가루랑 만나 알콩달콩 고소한 냄새도 풍겨보고 잘 익은 설기로 예쁘게 분홍색 하트랑 만나 돌잔치 상에도 올라가 보고 그렇게 사람들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행복한 떡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시루떡은 겹겹이 흰 쌀가루와 팥을 쌓아 올려야 제맛이다. 1층짜리 시루떡은 왠지 허전하다. 쌓으면 쌓을수록 깊어지는 맛이 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쌓아 올리면 텁텁하다. 과하지 않게 쌓아 올려야한다, 그만 쌓을 때를 알고 더도 덜도 말고 적당히 쪄진 떡이 가장 맛있는 이유이다.
사람을 떡에 비유하니 수동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핵심은 바로 어제, 그제라는 증기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핵심이라는 것. 과거에 매몰되어 후회하거나 과거의 자신을 너무 탓하며 비관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직 당신이 덜 익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다시 한번 일부러라도 뜨거운 증기를찾아 나서라. 잘 익은 맛 좋은 떡이 되기위해 찜기로 뛰어들어 그 열기를 기꺼이 느껴보자.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말고 나아가자.단순 도파민 분출의 쾌락과 불편함, 어려움을 극복해 낸 뒤의 성취에서 오는 짜릿함을 구별하자.
모일 회(會)가 들어가 있는 한자에 마음을 더하면시루떡처럼 성난 마음이 거듭 쌓이는 모습이다. 또 화가 나서 마음에 김이 솟아오르는 듯한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리하여미워할 증(憎)이 된다. 이 화라는 수증기는 뚜껑으로 가로막혀 쉽게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흔히 가증스럽다고 이야기하는데 여기 가증(可憎)이 미워할 증이다. 화가 나서 마음속 증기가 느껴진다면 마음속뚜껑을 열자. 뚜껑 열어 마음속 증기를 날려버려야 내 마음이 쪄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이번에는 조개 패(貝)를 더한 글자이다. 조개는 재산, 재물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재물을 내주어 쌓이도록 하는 것, 여기서 핵심은 내어주는 것이다. 줄 증/선사할 증/선물할 증(贈)이다. 내 집에 내 통장에 쌓아두는 것이 아닌 재물을 선물하는 것이 진정한 보이지 않는 소중한 재물을 쌓는 행위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주고 더 주는 것, 증여(贈與)나 증정(贈呈)에 이 한자가 쓰인다.
그 외에도 집 위에 집을 더하니 층계 층(層)이 되고, 흙 위에 흙을 거듭하니 더할 증(增), 사람 위의 사람을 더하니 중 승(僧)이라 해서 평범한 백성 위의 깨달음을 얻은 스님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책을 보고 한자를 공부하다 보면 과거의 무늬가 보인다고 한다. 내가 지금 현재 고민하고 있고 마주한 어려움은 과거의 누군가도 겪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무늬를 어떻게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했는지 그들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또 앞으로 어떤 무늬로 이어질지 예상할 수도 있다. 오늘도 떡으로 빙의한 나는 흐르는 물이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나의 성장을 돕는 증기임을 깨닫고 내일을 기대하고 오늘의 실패와 어려움을 기꺼이 마주한다.
어릴 적 시장통 떡집이 그렇게도 좋았는데 오늘 오랜만에 재래시장 떡집에서 사 온 떡(과거)과 커피(현재)를 앞에 두고 글(미래)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