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한 결심

유연한 어른이 되고 싶어

by 희너지

두쫀쿠 먹어봤어?

아니 아직. 안 그래도 인스타며 맘카페며 정말 핫하더라.

남편이 그저께 오픈런해서 사 왔는데, 진짜 달고 맛있더라.

그래?


두쫀쿠를 못 먹어본 사람은 과연 나뿐인가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모임에서도 두쫀쿠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새벽 줄 서기를 불사하며 맛을 본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너무 달아서 한 번 먹고 말겠다”라 했고, 또 누군가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이고 사러 갔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끝없이 흘러나왔고 그 사이에서 나는 마치 지구인이 아닌 것처럼, 흡사 물과 기름처럼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유행하는 디저트나 음식이라면 어떻게든 구해 먹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다. ‘핫하다’는 말만 들리면 어딘가로 달려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취향이 점점 확고해질수록 그런 바람에 둔해지기 시작했다. 허니버터칩도, 포켓몬빵도, 순하리 소주도. 한때는 모두가 열광하며 구하기 힘들었던 것들이 지금은 마트 진열대에 차고 넘친다. 그래서인지 나는 두쫀쿠든 두쫀쿠 할아버지든 그리 흥미가 크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흔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식으면, 지금의 열기도 언젠가 진열대 위로 옮겨갈 테니까.


예전엔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면, 나도 맛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면, 나도 예쁜가 보다 했다. 물건을 살 땐 언제나 ‘베스트 순’으로 검색해 구매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나를 모른 채 군중심리라는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기분.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도 잡지 못한 채 바람 따라 떠다니는 풍선처럼 그렇게 남들이 가는 대로 따라다녔다. 세월이 흘러 마흔이 다되어갈 무렵, 이런 내가 조금씩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이 나이 먹도록 줏대도 없이 끌려다니는 삶이라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그려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용기 내어 찾기 시작했다. 나의 색을. 나의 취향을.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걸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놓치고 있는 풍경이 있을지도 모르니.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주문해 봤다. 내가 모르는 맛이 있을 수도 있으니. 예전엔 시도조차 하지 않던 것들도 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러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를 찾아갔다.


아, 나는 이런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구나.
아, 나는 이런 물건을 좋아하는구나.
아, 나는 이런 것을 싫어하는구나.


내 자아를 찾아갈수록 나의 농도는 짙어져 갔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가도, 이게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은 아닐까, 고집만 늘어가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나를 찾아가는 것 같아, 이 여정이 싫지는 않았다.


예전의 나는 카페에 가면 늘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그런데 이제는 그 카페에서만 마실 수 있는 시그니처 음료를 주문한다. 다시 못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 혹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를 고른다. 내 입맛을 고수하던 예전의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나의 색을 찾아가면서도, 새로운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나이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른은 되고 싶진 않다. 나를 찾는 것과 동시에 나이가 들어도 생각만큼은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유연한 어른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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