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가벼워진 이유
“힘든 아이를 맡는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갈 필요가 있어? 고민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사회생활 15년 차,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남편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순 없었지만,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요즘 나는 마치 무거운 짐을 하나 들고 있는 사람처럼, 걱정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임용 동기들을 만나게 됐다. 방학 중이라 다들 비교적 여유가 있었고, 우리는 편하게 술 한 잔을 곁들이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올 3월이면 복직한다. 당연히 원래 근무하던 학교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내가 담당할 아이의 폭력성이 커졌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힘들 각오하고 복직해야 할 거야.”
동료의 말이 귓가에 남아 한동안 떨어지질 않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아직 두 달 남았는데도, 마음은 이미 그 교실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실무사로 근무한다. 특수교육대상자, 즉 장애학생의 학교생활을 돕는 일을 한다. 몇몇 아이들을 전담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학교에서 하루를 무사히 보내도록 함께하는 역할이다. 사람들은 종종 “힘든 일 한다”며 고생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 그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도움이 조금 더 필요한 아이들일 뿐. 일을 시작할 때 가졌던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생각보다 마음 편히 근무해 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힘들 각오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는 걸, 난 직감하고 있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잠을 설친 날이 쌓여갔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무심하게 말했다.
“그럼 학교를 옮기면 되잖아.”
누구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담백하게 건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옮긴다고 해서 더 나은 상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내겐 조금 더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결국 해결되지 않은 고민이 마음에 걸려 일상의 모든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오랜만에 얼굴 보자”는 동기의 연락이 왔고, 나는 그 말에 기대듯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만나니 자연스럽게 수다꽃이 피었다. 반가운 자리에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말을 아꼈다. 그런데 먼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나 이번에 전보 신청할까 해.”
함께 일하는 특수교사와의 마찰이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마음을 꺼내 놓자, 그제야 다른 동기들도 하나둘씩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 스스로도 다 정리하지 못했던 감정들까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신기하게도 내 마음속에 얹혀 있던 돌덩이가 하나둘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말해야만” 가벼워지는 것들이었다.
결국 우리가 닿은 결론은 단순했다. 어떤 일을 하든 힘들다는 것. ‘남의 돈 10원 벌기 어렵다’는 말처럼, 세상에 쉽고 편한 직장은 없다. 그렇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가 있고, 어려움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의 무게는 절반쯤 줄어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일보다 중요한 건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다. 집에서 거리가 조금 멀어도, 일이 조금 힘들어도, 손발이 맞는 사람들과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며 일할 수 있다면 그건 꽤 큰 버팀목이었다.
남편 앞에서도, 동기들 앞에서도 덤덤한 척했다. 하지만 실은 많이 힘들었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쉽게 빠져나오질 못했다. 점점 커져가는 생각에 잠식되려던 찰나에 동기들을 만났다.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다니. 그들은 내게 귀인 같았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잠드는 밤, 고민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