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치 말고, 내 눈치부터 살피려고요.

성인 1명, 소아 2명.

by 희너지
엄마, 우리 제주도 언제 간다고 했지?


아이의 물음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겨울방학 때 제주도 가자고 해놓고,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티켓팅을 하지 않았다. 약속했던 날은 어느새 한 달 앞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정말 해야 했다. 한데 티켓팅을 자꾸 미뤄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남편과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나와 아이들만 떠날 것인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미뤄둔 건 티켓팅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걸.




작년 1년간 육아휴직을 신청하며 나는 말했다. “1박 2일이라도 혼자 여행을 갈 거야.” 매달 두 번씩 혼자 캠핑을 떠나는 남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자주 혼자 캠핑 가니, 가지 말라고 하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 떠날 수 있는 권리’를 손에 쥔 나는 가야지, 가야지 말만 하다 복직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엔 정말 혼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니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혼자 떠나는 자유는 분명 달콤한데, 마음이 계속 걸렸다. 얼마 전 지인이 무심히 건넨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 어릴 때 여행 자주 다녀. 중학교 가면 학교에 학원 스케줄에… 진짜 시간 내기 어렵더라.”


그 말은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내 마음에 박혔다. 짧게는 7년, 길어야 10년. 두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10년 후면 ‘혼자 원 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스쳤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아이들과 함께 떠나기로 마음이 굳었는데, 왜 남편이 문제일까.


남편은 제주도를 함께 가길 원했다. 이왕 가는 거 다 같이 가자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을 다녀오면 늘 싸웠다. 정확히는 싸움이라기보다, 내 마음만 상하고 돌아오는 긴 침묵이었다. 우리 부부의 여행 가치관은 작지만 분명 달랐다.


나는 화려하지 않아도 깨끗한 숙소를 원했고, 모두 함께 즐기되 아이들이 원하는 일정을 더 챙기고 싶었다. 반면 남편은 캠핑하며 여행하는 일정을 원했고 아이들을 위한 코스보단 우리를 위한 코스를 원했다.


“아이들은 앞으로 자라면서 보고 느끼고 먹을 기회가 많잖아. 여행은 어른 위주로 가도 충분해.”


남편의 말은 논리적이었지만, 내 마음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아직 어리지만,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경험시키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아이들이 자랄수록 더 커졌고 우리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여행 내내 서로 마음 상하기를 여러 번, 집으로 내려오는 차 안에는 늘 적막만 가득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만큼은 정말 하하 호호 웃으며 돌아오고 싶었다. 즐거웠던 기억, 다시 오고 싶은 마음만 한 아름 안고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보니 체력 소모도 클 텐데 남편의 취향과 기분까지 헤아리는 감정 소모까지 더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제주도만큼은 자유롭게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티켓팅을 미루고 있었다. 계속 함께 가자는 남편의 눈치 보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의 고집을 꺾어 이번만큼은 내 원하는 여행대로 따라와 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기대는 내 마음을 더 지치게 만들었다. 그럴 시간에 나는 차라리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정말 남편과 함께 가고 싶은지.


저녁을 먹고 샤워기 아래에 서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의 눈치를 이렇게까지 살피는 걸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서, 그 말 한마디를 꺼내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남편의 눈치를 보기 전에, 남의 눈치를 보기 전에 내 마음부터 먼저 생각하면 안 될까.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이제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해바라기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뜨거운 눈물이 함께 흘렀다. 마흔이 되도록 아이와 남편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며 살아왔는데, 정작 내 마음은 한 번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안쓰럽게 했다. 울컥한 마음과 잡념은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바싹 마른 수건으로 천천히 몸과 마음을 닦았다. 내 마음을 갉아먹던 작은 조각들까지 함께 털어내는 기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나는 식탁에 앉아 티켓팅을 시작했다. 성인 1명, 소아 2명.
3명의 티켓을. 아빠 없이 떠나는 첫 여행.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이번 여행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기를. 나는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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