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마흔은 처음이지?
"엄마, 왜 나한테 자꾸 윙크해요?"
아이가 밥을 먹다가 내 얼굴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말했다.
생일을 하루 앞둔 그날 오후, 듣도 보도 못한 무서운 그림자가 내 얼굴에 서서히 드리워졌다.
그건 바로 "안면신경마비(구안와사)"였다.
손 쓸 새도 없이 오른쪽 얼굴은 마치 빛이 꺼진 전구처럼 감각을 잃어갔다.
마흔 살이 되는 날, 축복이 아닌 악몽이 내 앞에 불쑥 찾아왔다.
이 몹쓸 병의 원인은 바닥난 면역력과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 어떤 일을 하시길래 몸이 이렇게까지 되셨을까요?"
ㅡ"네? 백수.... 아, 아들 둘 키우는 전업주부요."
"아, 아들 둘..."
의사는 말 끝을 흐리며, 안쓰러움과 공감의 눈길을 내게 보낸다.
"안타깝게도, 예후가 좋지 않은 '람세이헌트 증후군'입니다. 증상이 극심해지는 2주 동안은 약 복용과 함께 절대 안정하셔야 합니다."
옛 말에 "찬 바닥에서 자면, 입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누가 들으면 집도 없이 추운 바깥에서 잠들었다가 입 돌아간 방랑자를 떠올리겠지. 그저 헛웃음이 났다.
이튼 날부터, 내 얼굴의 눈코입은 본격적으로 재배치 공사에 들어갔다.
오른쪽 얼굴은 기능이 완전히 멈춰버렸고, 한쪽 눈은 감기지 않아 안대를 씌워야만 했다.
입술은 오므려지지 않아 양치를 할 때마다 물이 다 새어나갔으며, 발음도 새서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혀는 치과에서 마취한 것처럼 무감각해져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람세이헌트증후군은 회복까지 몇 년이 걸릴 수 도 있고 재발률 백 배라는 진단을 듣고 온 날, 세상을 다 잃은 듯 남편을 붙잡고 엉엉 울며 소리쳤다.
"이 얼굴로 어떻게 평생 살아!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남편은 괜찮다고 말하기보단,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줄 뿐이었다. 마음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놀라고 불안해했다.
"엄마, 죽으면 안 돼요. 죽는 병 아니죠?"
"혹시 제가 엄마 힘들게 해서 이런 거예요? 엄마 정말 미안해요. 제발 아프지 말아요. 응?"
걱정 한가득 울먹거리며 묻는 아이들의 떨리는 음성이 눈물로 얼룩진 우리 집을 또다시 적셨다.
엄마의 생일파티를 앞두고 기대에 들떠있던 아이들.
집 안을 가득 채우던 기대와 설렘의 공기가 어느새 무거운 침묵과 한숨으로 내려앉았다.
생일 전야, 마흔이 주는 신고식은 차갑고 거칠었다.
그날 밤, 울다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침대에 누웠다.
남편이 조심스레 다가와 내게 무언가를 제안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반짝인다. 마치 잔잔하던 마음에 작은 불씨가 일어나는 순간처럼.
'아, 그렇지! 내 몸뚱이와 팔다리는 멀쩡하네?'
그 와중에도 실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꾹 누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배만 큰 줄 알았는데, 마음 그릇도 넓은 남자였네?’
그렇게 나는 결혼 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불안과 우울감 속에서, 그 순간만큼은 묘한 해방감이 살짝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