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몬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이 책은 일본의 서구문물의 도입으로 자신이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다네코의 우울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 지인 따님의 결혼식 피로연 초대를 받고, 다네코부인은 매우 긴장한다.
양식 먹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실수를 할까 봐 매우 불안해한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걱정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기보다는 그런 것도 연습을 하고 가야 하냐며 타박한다.
(물론 레스토랑에 미리 방문하여 식사예절을 가르쳐주기는 했다. 츤데레 같은 면모가 있는 남편)
남편은 조끼에 팔을 꿰며 거울 속의 다네코에게 눈길을 옮겼다.
다네코에게보다는 다네코의 눈썹에..
".... 나도 어젯밤에 무서운 꿈을 꿨어요...."
"어떤 꿈? 이 넥타이는 올해까지만 매야겠군"
----- 중략-----
"기차선로에 뛰어드는 꿈이야. 치이고 나서도 꿈속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거야.
다만 몸은 엉망이 되어서 눈썹만 선로에 남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요 며칠, 양식 먹는 법에만 신경을 쓴 탓인가 봐요."
"그럴지도 모르지"
남편을 배웅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젯밤 큰 실수를 했더라면 나 역시 뭔 짓을 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서둘러 회사로 가벼렸다.
다네코는 마침내 혼자가 되자, 그날도 화로 앞에 앉아, 주전자에서 잔에 따라 두었던 미지근한 차를 마시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어쩐지 안정을 잃고 있었다.
차에는 어느새 운모처럼 생긴 기름기가 떠 있었다.
게다가 기분이 그래선지, 그것은 그녀의 눈썹과 똑같았다.
다네코는 턱을 받친 채, 머리 빗을 기운도 없어 그저 찻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의 체면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 기어이 악몽까지 꾸는 다네코부인을 보며, 내 모습이 떠올랐다.
'모를 수도 있지', '대강 해도 괜찮아'가 통하지 않는 내 피곤한 성격 상, 처음 마주하는 대상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긴장과 불안을 떨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다네코 부인처럼 극심한 우울감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한껏 긴장한 날에는 두통과 구토에 시달리며 잠들기도 한다. 그래도 곁에 내 시끄러운 속을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다정한 남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새로운 외래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의 메이지유신 시기에 이런 예는 비단 다네코부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즐기는 '신여성'이 주목받던 시절, 옛것의 익숙함에 벗어나지 못하고 낯선 것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던 다네코 부인 같은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키오스크나 조작이 복잡한 전자기기 같은 신문물의 홍수 속에서 적응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나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큰 부담이 된다.
빠름과 편리함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약자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기업과 정부의 제도적 장치들도 꼭 필요할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악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라쇼몬>은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단편집이다.
각 단편을 관통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아마도 이런 것 아닐까?
자신의 강렬한 본능적 욕망과 내세우고자하는 것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숨기고자 하는 내면의 어두움을 마주하며, 그것을 통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