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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개천

by 소연 Mar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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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한 10년 전쯤 어떤 강의를 들었다.

“취미는 인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 취미를 통해서 가정 경제에 도움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최고라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취미는 취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취미도 권태기가 있습니다. 권태기 없이 같은 취미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큰돈은 아니더라도 ‘실개천에 흐르는 물’처럼 적은 수입이라도 꾸준히 생기게 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이 말이 인상 깊었었다. 너무 공감되었다. 나도 실개천을 만들고 싶었다.  더 재미있고 보람 있을 것 같았다.


 그전 추이미 서예를 할 때 돈을 벌어 봤다. 대학생 시절이었는데,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어떤 대회의 상장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이 지인에게 선물한다며 교수님이 어떤 문구를 주시고 그것을 붓글씨로 써서 표구를 해오라고 하셨었다. 표구비만받아서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그리고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고 프린트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직장에서 붓글씨 쓰는 재능을 많이 활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컴퓨터와 프린트가 많이 보급되어 있는 시점에 붓글씨는 효용가치가 없어졌고 쌓여가는 작품들이 부담이 되고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아 붓글씨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다음 추이미였던 퀼트도 권태기가 왔다. 그래서 그만두고, 옷 만들기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추이미 생활에 매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것 또한 재미는 있는데, 실개천이 없어서 그런가 그전만큼의 열정이 생기진 않는다.


 몇 년 전에 그동안 만들어 놓았던 소품들을 가지고 플리마켓에 참여한 경험이 2번 있다. 처음 참가한 플리마켓은 송파구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주최하는 플리마켓이었다.  한복반 다닐 때 동료와 함께 여기에 참가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무척 설레었다. ’드디어 이렇게 실개천이 만들어지겠구나!’하고 들뜬 마음으로 참가비 5000원을 내고 참가신청을 했다. 그동안 만들어 놓았던 작은 파우치, 핸드백, 숄더백 등을 큰 가방에 넣었다. 거스름 돈과 물건을 담아 줄 쇼핑백을 준비해서 플리마켓이 열리는 장소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물건이 돋보이도록 전시를 했고, 먹거리 장터도 열려 있었다. 내가 차려 놓은 물건들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내 물건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프레임이 달린 아가씨 그림이 있는 파우치였다. 사람들은 얼마냐고 물었다. 난 1만 7천 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예쁘다고 말하고 그냥 갔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가격을 내릴 수가 없었다. 원단을 오리고 심지를 대고 일일이 퀼팅을 하느라 공이 많이 들어갔고, 특히 프레임을 다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갈 뿐 아니라 손도 좀 아픈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핸드백에 관심을 보였다. 이 핸드백은 가죽처럼 보이는 원단으로 만든 것인데 청바지에도 정장에도 잘 어울리는 네이비색 핸드백이었다. 얼마냐고 물었고 7만 원이라고 대답했다. 이 아주머니 역시 만지작거리며 예쁘다고만 하고 그냥 가셨다. 조금 있다가 그 아주머니가 다시 오셔서 5만 원에 줄 수 없냐고 했고  좀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때 당시엔 사람들이 내 물건에 관심을 가져 주고 예쁘다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했다. 나와 함께 하는 동료는 이것저것 잘 팔고 있었다. 부럽기도 했다. 내 옆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예쁜데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여기는 아파트 단지라 플리마켓에 나오는 물건 값이 비싸면 안 팔리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가지고 나온 물건들은 홍대에 가면 충분히 팔릴 것 같다며 용기를 줬었다.  플리마켓에서 하나도 못 팔았다고 하니까 가족들은 조금 싸게라도 팔고 오지 그랬냐며 웃었다. 나도 살짝 그럴 걸 그랬나 하고 생각했다.


2번째 플리마켓 또한 송파구 대단지 아파트에서 열렸다. 1번째 참가했던 아파트는 아니다. 참가비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파우치, 핸드백, 숄더백, 꽃주머니, 내가 디자인 한 티코스터, 안경지갑등을 가지고 나갔다. 1번째 플리마켓에 가지고 나갔던 것도 가지고 갔다. 사람들이 내 물건에도 관심을 보였다. 지난번처럼 가격을 묻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여학생이 와서 꽃 주머니를 샀다. 수줍어하며 돈을 건네는 모습이 예뻐서 3000원에 팔고 있는 네모난 파우치를 서비스로 주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팔지 못했던 아가씨 그림이 있는 프레임이 달린 파우치를 1만 5천 원으로 내놓았더니 여러 개가 팔렸고, 작은 크기의 핸드백, 숄더백, 티코스터 등이 심심치 않게 팔렸다. 플리마켓이 끝난 후 결산해 보니, 27만 원을 벌었다. 기분이 좋았고 신기했다. 이렇게 실개천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플리마켓이 열려 구경을 갔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뭔가 플리마켓의 형태가 바뀐 듯했다. 예전에는 수공예품 핸드메이드 제품이 많았는데, 요즘은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들이 더 많아졌고 뭔가 더 상업적인 느낌을 받는다. 플리마켓이라는 공동체가 생겨 한 단위로 옮겨 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원단을 이용한 수공예품을 파는 곳이 현저하게 줄어든 느낌이다. 이제 플리마켓이 실개천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옷 만들기로는 더더욱 실개천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체형이 각기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디자인하고, 만들어 준다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기 들어가기 때문에 취미로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 가면 싸고 디자인이 훌륭하고 유행하는 옷들이 넘쳐난다. 그곳에 가면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여서 옷을 만들고 있나?’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공짜로 아니면 원단 값만 주고 옷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의 시간과 노력의 소중함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공장에서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장비를 가지고 만든 옷과 내가 만든 옷은 당연히 질적인 차이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짓(?)을 하고 있다. 힘들지만 재미있으니까~. 그저 재미있었는데 뭔가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는 추이미를 다시 한번 갈아타야 한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옷 만들기 또한 10년 정도 했나 보다. 주기를 다 채웠다는 뜻?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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