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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재킷

by 소연 Mar 24. 2025

 친정에 가도 엄마의 옷장을 열어 볼 일은 별로 없었다. 엄마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뭔가 일을 맡았다고 하셔서 좀 더 깔끔하게 옷을 입으셔야 할 것 같아 오랜만에 엄마의 옷장을 열었다. 비록 내가 패션감각이 좋지는 않지만 엄마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열었다. 예쁜 색깔의 원피스, 밍크코트, 무스탕 재킷, 바지, 오리털 점퍼, 핸드백, 스카프 등이 가득 걸려 있었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입었던 바지도 걸려 있었다. 버리기 아까워서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제 만으로 90세가 되신 엄마. 나이가 들어 살이 빠지고 키도 줄고 등도 굽고 다리도 가늘어지고 그 많던 머리카락도 없어지고 핏줄도 불뚝 뿔뚝 튀어나와 있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제 나 자신도 거울을 보면 특히 돋보기라도 쓰고 거울을 보면 볼 수 없을 만큼 가관이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엄마의 모습은 안타까움 애처로움 그 자체다. 그렇지만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엄마의 옷장에 있는 옷은 거의 안 입는 아니 못 입는 옷으로 가득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원피스들은 엄마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옷의 태가 나지도 않을뿐더러 불편해서 입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나에게 가져다 입으라고 하셨다. 나 또한 이제는 치마가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서,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이 세서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입을 수가 없다. 나도 이제 편한 옷만 입게 되는데 엄마야 말할 것도 없다. 엄마가 입고 다니시는 옷은 일단 가벼워야 한다. 따뜻해야 한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옷의 길이가 너무 짧아도 안된다. 왜냐하면 볼품없어진 엉덩이를 가려야 한다고 하신다. 또 너무 길이가 길어도 추단 하기 힘들어서 안된다고 하신다. 본인 몸 하나 간수하고 다니기에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패션이고 뭐고 바지와 오리털 점퍼, 모자, 장갑은 엄마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예쁜 것은 바라시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단정하고 좀 괜찮아 보이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으신 것 같았다. 옷을 사러 가자고 하거나 내 임의대로 옷을 사다 드려도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이제 뭘 입던 옷맵시가 나지도 않고 언제 갈지도 모르는데 굳이 옷을 사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내가 옷 만들기가 취미니까 그 누구 옷 보다 엄마의 옷을 만들어다 드려 보기도 했지만, 엄마의 마음에 들게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힘들게 옷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나를 위하는 말씀이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좀 섭섭하기도 했었다.


 엄마는 옷장에서 니트로 된 재킷 하나를 꺼내셨다. 

 "날씨가 풀리면 입을 수 있을까?" 

 "입어봐."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가볍고 따뜻한 건데~"

엄마는 그 니트 재킷을 입으셨다. 니트 안에 입은 옷이 어울리지 않았다. 마침 엄마에게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보리색과 연분홍색 반폴라 니트를 가지고 갔었다. 엄마가 입는다고 하시면 드리려고 가져간 것이다. 2개 다 가지시라고 했는데 분홍색만 가지신다고 하셨다. 그것을 안에 입고 그 재킷을 입었다. 배색은 잘 맞았다. 그러나 오래전에 입었던 옷이라 그런지 엄마의 몸이 변해서 그런지 너무 어색했다. 어깨가 밑으로 내려와 있고 허리에 다트가 들어있어 불편해 보였다. 그리고 어깨에 패드(일명 '뽕')가 들어 있었다. 일단 과감하게 패드를 제거했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거울을 보며 어깨선을 올려 핀을 꽂았다. 엄마와 나는 표정이 밝아졌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치면 그런대로 잘 입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이것을 고쳐? 말어? 고치려면 뜯느라 고생 좀 할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고칠 수 있겠어?"

 "글쎄, 고치다 망치면 어떻게 하지?"

 "어차피 입지 못하는 거 망치면 버리지 뭐."

 "그렇다면, 고쳐 볼게. 기대는 하지 마시고~"


이렇게 그 니트 재킷은 우리 집으로 왔다. 


 다른 할 일도 있었지만 우선 엄마의 옷을 수선을 하기로 했다. 핀을 꽂은 곳까지의 길이를 재었다. 양쪽 어깨에서 같은 길이를 표시하고 S자로 진동을 그렸다. 그리고 진동과 소매를 연결한 바느질된 부분을 뜯었다. 니트라 더 뜯기 힘들었다.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히 자르고 진동선에 심지를 붙였다. 왜냐하면 니트라 늘어날 가능성이 100%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오른쪽 소매와 왼쪽 소매를 잘 구분하여 손질했다. 소매 중심과 어깨 중심을 맞추고, 진동선과 소매선에 핀을 꽂았다. 그다음은 밑실은 검은색 날라리 실로 윗실은 진한 자주색 실을 끼웠다. 밑실도 옷감의 색으로 하면 좋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날라리 실은 검은색과 흰색뿐이다. 니트나 스판을 봉제할 때는 밑실을 날라리 실로 해야 봉제가 잘 된다. 날라리 실은 스판이 있는 실을 말한다. 드디어 봉제 시작. 천천히 정성껏 왼쪽 소매와 오른쪽 소매를 달았다. 그다음은 안감을 정돈했다. 그리고 내가 입고 거울을 보았다. 이 정도면 엄마의 어깨에 맞을 것 같았다. 

 '어, 좀 고치는데~' 

좀 뿌듯한 순간이었다. 옷 수선은 옷 만들기보다 힘들어서 하지 않는 편이다. 고치려면 차라리 만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다음 작업은 뒤판의 다트를 없애고, 안감과 겉감이 겉돌지 않게 실고리 만들어 연결했다. 울샴푸로 조심히 세탁을 했다. 


 그 다음날, 수선한 엄마의 재킷을 들고 엄마의 집으로 갔다. 엄마에게 잘 맞게 고쳐졌나? 하는 궁금증도 있고 엄마가 그걸 입고 나가실 수 있게 빨리 가져다 드리고 싶었다. 

 "벌써 고쳤어?"라고 하시며 입으셨다. 어깨가 잘 맞으니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엄마도 나도 기분이 좋았다. 

엄마의 옷 수선도 Good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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