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떻게 할 거예요?
나는 언제쯤 당신의 손에서 놀 수 있을까요?
나도 새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내 방 한편에 놓여 있는 실들이 말을 걸어왔다. 사용한 실보다 남은 실이 많은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상태다.
'뭔가 뜨긴 해야겠는데, 뭘 뜨면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유튜브를 뒤졌다. 이것저것을 보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손목도 아프고 눈도 피곤해질 때쯤 '탑다운 보송이 카디건'이란 제목의 코바늘 뜨기가 눈에 쏙 들어왔다. 목부터 뜨기 시작하는 A라인의 짧은 스타일이다. 모델이 입은 모양이 편하고 귀여워 보였다. 지난번 목도리를 완성한 게 뜨기의 전부인데, 카디건을 뜰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였다. 망설임은 잠깐. "쉬운데 예뻐요"라는 글만 믿고 일단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아 있는 실로 이 카디건을 뜰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지난번 남아 있던 실과 코바늘을 가져다 놓고, 종이와 사프를 준비하고, 유튜브를 틀었다. 유튜브의 속도를 느리게 하여 보고 들으며 종이에 메모를 했다. 코를 65개 만들었다. 방향을 돌려서 한 코 건너가며 한길긴뜨기를 했다. 창문 같은 무늬가 생겼다. 2단은 한길긴뜨기로 채웠다. 3단은 방향 바꾸어 한길긴뜨기를 한 후 두 코 지나서 한길긴뜨기를 하여 창문무늬 26개를 만들었다. 4단은 방향 바꿔서 3단과 동일하게 떴다. 5단, 6단, 7단, 8단, 9단, 10단은 부채꼴 무늬 뜨기를 했다. 부채꼴 무늬는 6단이 되었다. 11단은 창문 무늬 뜨기를 했다. 12단은 한길긴뜨기로 채웠다. 3단부터 12단까지 10단이 이 카디건 무늬의 1세트다. 지난번 목도리를 뜰 때처럼 잘못 떠서 푸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천천히 유튜브를 확인해 가며 떴다. 뭔가 반 이상 뜬 기분이었고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니 설레고 마음이 급해졌다. 신났다. 자신감이 생겼다.
이 카디건은 목부터 시작해서 밑단까지 A라인으로 퍼지는 형태이기에 밑으로 갈수록 코가 많아져 빨리 불어나지 않았다. 한 단을 뜨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2세트의 창문무늬 2단을 떴다. 부채 무늬를 뜨고서야 뭔가 무늬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다시 유튜브와 종이에 메모한 것을 보았다.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한 단을 더 떴다. 부채무늬가 양쪽에 대칭이 되도록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동영상을 되돌려보고 생각해 보고 계산해 보고 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도 잘못된 부분을 찾지 못했다. 대강 얼버무려 이어나갈까 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하고 그 아까운 것을 다 풀었다.
처음 코 만들기부터 시작! 내가 이거 꼭 완성하리라는 각오로 재도전!
동영상의 속도를 더 느리게 더 찬찬히 살폈다. 한 단 뜨고 확인하고 한 단 뜨기 전에 확인하고 또 풀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날 때마다 떠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지만, 다른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마음을 바꿨다. '일단 완성하고 다른 것을 하자'로. 정말 나도 나를 못 말리겠다.
한 단 한 단 단을 늘려 가서 소매를 달아야 하는 진동 부분까지 왔다. 설명하는 대로 따라 했다. 신기하게 진동이 파졌다. 이런 방법을 알아낸 사람은 천재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을까? 존경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끈기를 가지고 밑단까지 떴다. 밑단에서부터 앞단(왼쪽)을 지나 목둘레를 지나 또 앞단(오른쪽)까지 짧은 뜨기로 마감을 했다. 그다음은 방향을 바꾸어 오른쪽 앞단에 단추 구멍을 만들었다. 단추 구멍이 되는 부분은 사슬 뜨기로 건너뛰고 짧은 뜨기를 했다. 단추구멍을 내면서 이 부분에서도 처음 고안해 낸 사람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여기까지 하니 실이 1묶음 남았다. 이것으로 샘플처럼 긴 팔은 뜨기 어렵고 7부 소매는 가능할 것 같았다. 동영상 설명에는 긴팔이라 조금씩 코를 줄여갔지만 나는 7부 소매이기 때문에 줄이지 않기로 했다. 설명대로 진동으로 만들어 놓은 곳에서 코를 새로 만들어 7부 소매 길이로 두 팔을 완성했다. 소맷단을 짧은 뜨기로 마무리했더니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이제는 단추를 달 차례이다. 평소에 예쁜 단추를 볼 때마다 사다 모아 놓은 단추상자에서 약 12mm 정도 되는 금색 단추를 골랐다. 단추 구멍의 위치에 맞게 단추를 달았다.
이 카디건을 수 없이 입어 보며 떴지만 다 완성하고 난 후 어떤 모습을 보일지 설레었다. 짜잔~. 예쁘다. 실이 좋아서 그런지 가볍고 포근한 느낌이 마음에 든다.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신 분의 말씀처럼 훌륭하다. 그리고 이 동영상을 올리신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것을 완성하기까지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성취감이 더 큰 것 같다. 힘들었던 시간은 벌써 잊고 다음을 기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음엔 민소매 옷 위에 걸쳐 입을 수 있도록 시원한 실로 떠 볼까?'
목도리 하나 뜨려 했다가 카디건까지. 배 보다 배꼽이 더 컸다. 7일간의 긴 여정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의 즐거움이 힘듦을 눌렀다. 이번에도 Good Jo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