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하늘에게 졌다

by 길위에 글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냥 걷다 보니 울컥했다


말없이 걷는다는 게

이렇게 시끄러운 일인지 몰랐어

발끝은 내일도 몰라서

그냥 아무 데로나 날 데려가


햇살은 무심하게

내 어깨 위를 밟고 지나가고

그림자 하나, 말 한마디 없이

나보다 먼저 앞서 걷는다


머리 위로 둥근 하늘

누가 밀어도 끄떡도 안 할 듯

나는 오늘도 그 밑을 걷는다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면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단 생각

아무 말도 없는 세상 속에서

혼자인 나를 누가 좀 알아줘


지나가던 바람이

내 셔츠를 스치고 간 순간

그 어떤 말보다 선명하게

가슴이 먼저 알아버렸어


나는 오늘, 하늘에게 졌다

아무 말도 없는데도

묵혀둔 마음을 꺼내게 만든다

무너진 채로도

예쁘게 보일 수 있다는 듯

푸르기만 한 그 하늘 아래서

나도 조금, 괜찮아진다


고장 난 신호등 앞

나만 멈춘 줄 알았는데

세상도 조용히

나를 기다려준 것만 같아


누군가 지나치듯 말하던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란 말

그게 아니라, 그냥

하늘을 봐야 했던 걸지도 몰라


너무 밝은 하늘을

원망하던 날들도 있었지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나보다 먼저 울고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오늘, 하늘에게 졌다

그 아무 말도 없는 너머에서

내가 나를 꺼내게 만든다

눈물은 나도 몰래

턱 밑에서 떨어지고

그제야 알았다

내가 나를 안아주지 못한 채 살았다는 걸


나는 오늘, 하늘에게 졌다

슬픔마저 포근한 색으로

물들여준 그 바람 아래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마치 나를 다 알고 있는 듯

그 하늘 아래, 잠시 쉬어간다

숨도, 나도, 괜찮아진다


길 위의 나무, 멈춘 그림자, 바람의 손끝

그 모든 게 다 하늘이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살아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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