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두에게
처음 쇼팽 에튀드를 연습하던 날을 기억한다. 빠르고 화려한 음들이 쏟아지는 곡을 내 손으로 완벽하게 연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몇 마디도 지나지 않아 손목이 굳어졌고, 손등이 뻣뻣해지며 통증이 올라왔다. 팔을 들어 올리면 저릿했고, 손가락은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더 힘을 줘야 하나? 더 단단하게 쳐야 하나?' 고민하며 건반을 꽉 눌러 보기도 하고, 손목을 돌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힘을 줄수록 건반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때 선생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며 말했다. "힘을 빼. 힘을 빼야 더 자유롭게 칠 수 있어."
힘을 빼라니? 어떻게 힘을 빼지? 손을 힘없이 놓으면 건반이 눌리지도 않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손을 바닥에 내려놓고 툭툭 털어 보아도, 팔에 힘을 뺀다고 휘휘 흔들어 보아도 건반 위에서는 여전히 힘이 들어갔다. '힘을 빼'라는 말은 마치 허공에 던져진 주문 같았다. 힘을 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경직되는 내 몸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처음엔 어깨에 힘이 들어간 줄도 모르고, 손목이 경직되었는데도 왜 소리가 답답한지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시간들. 내 몸이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힘을 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고작 5분이 채 안되는 쇼팽 에튀드를 몇 번만 쳐도 지쳐버리던 손목이, 힘을 뺄수록 한두 시간 연습하는 게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내가 내고 싶은 음색의 가짓수도 훨씬 다양해졌음은 물론이고,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까지 아우르는 폭도 훨씬 커졌다.
'릴렉스'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명을 듣고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온 힘을 손끝의 감각에만 집중하고, 그 감각을 건반 위에 맡기면서 터치와 음색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실감했던 그 순간, '이것이 힘 빼기구나'알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이 몸을 맡겨야 비로소 떠오를 수 있는 것처럼, 그 순간에야 내가 머리로 이해했던 '맡김'의 의미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힘을 뺀다는 것은 단순히 손에서 힘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힘을 줘야 할 곳과 빼야 할 곳을 알고 그 흐름에 내 몸을 맡기는 일이었다. '덜어냄'의 문제가 아닌, 그 힘이 어디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느끼는 과정이었던 것. 이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었다. 들숨과 날숨에 맞춰 긴장과 이완을 주고 받는 달까. 이완과 긴장은 결국 한 몸이었다. 손끝에 힘을 완전히 빼버리면 건반 위에서 손이 미끄러지고, 힘을 너무 주면 손가락이 굳어버린다. 중요한 건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적당한 힘, 올바른 힘이 내 몸이 아닌 건반으로 옮겨졌을 때 비로소 건강한 소리로 살아 났고, 무엇보다 그 소리에 긴장이 아닌 여유가 맴돌았다.
힘을 빼라는 소리는 살면서도 참 많이 듣는다. 바라는 것들이 내 욕심대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일 때, 나의 깜량보다 더 잘하고 싶을 때, 목표를 향해 서두르는 마음이 생길 때는 영락없이 힘이 한껏 들어간 상태이다. 맡겨진 일을 열심히, 성실히 해내는 것은 잘못 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오직 내 힘과 노력만으로 해낼 수 있다고 믿을 때, 그 때는 몸과 마음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그 무엇도 내려놓지 못하는 상태. 하지만, 붙잡아야 할 것이 많아 손에 힘을 줄수록, 정작 소중한 것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힘을 빼는 것과 그냥 손을 놓아버리는 것은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걸 '맡긴다'고 하지 않듯이, 힘을 빼는 건 무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믿음에 가까운 일일지 모르겠다.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흐느적거리게 두는 것이 아닌 필요한 힘만 남겨두고, 불필요한 힘을 덜어내야 했던 것처럼 삶에서도 힘을 뺀다는 건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을 믿고 따라가는 것 아닐까.
어떤 관계는 너무 애쓰지 않을 때 더 단단해지고, 어떤 목표는 조급해하지 않을 때 더 가까워진다. 상대방을 바꾸려 애쓰지 않고, 억지로 붙잡지 않을 때 오히려 더 건강한 거리가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무심한 것은 아니다. 상대를 인정하며 필요 이상의 힘을 빼고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신뢰다. 꿈을 이루는 과정도 그렇다. 조급하게 결과를 움켜쥐려 할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고, 길을 잃는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완벽하게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 것. 나 스스로를 믿고, 내 발걸음에 집중하며 걸어가는 것이 결국 불필요한 힘을 뺀 상태와 가까워지는 길 아닐까. 과정에 성실할 뿐 결과는 맡기는 것이 결국 최선이다.
진정한 최선은 힘을 빼는 것이다. 과정에 성실할 뿐, 결과는 내려놓는 것. 하지만 그것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길이다. 제대로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건반 위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소리로, 삶에서는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며 자유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힘을 빼는 것은 막연한 내려놓음이 아닌 진정한 '맡김'이었다.
강렬한 소리는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소리가 나온다.
_ Vladimir Horowitz
건반 밖 엄마,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