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무서운 이야기] 아이슬란드 여행기 < 여담

우연히 발견한 동굴에 대한 이야기

by 이현

여행을 좋아해 여기저기 다니며 찍어둔 사진들이 사진첩에 제법 쌓여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여행기를 조금씩 적고 싶었습니다만, 미루고 미룬 것이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이제는 사진을 보아도 '여기가 거긴가~?'싶게 헷갈리는 것이 절반 이상인 듯합니다. 그만하면 차라리 여행기 쓰는 일을 포기할 법도 한데,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서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기록에 대한 미련을 두고 있습니다. 여행기를 적겠다고 브런치 매거진도 한 칸 따로 만들어두고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지 몰라 또 한참을 미뤄두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하기 가장 쉬운 이야기,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로 대장정을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아이슬란드 여행기라기보단 그저 여담정도일 뿐인 이 이야기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친구 셋과 저를 포함한 4명의 일행은 춥고도 추운 2월을 골라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나라입니다. 마을도 관광지도 자동차로 최소 30분 거리만큼은 떨어져 있었지요. 대중교통도 발달하지 않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렌터카는 필수였습니다. 저희 일행도 렌터카를 빌려 번갈아 운전하여 여행을 했었더랬지요.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해도 짧아서(실제로 9시쯤 해가 떠서 6시면 해가 지는데, 그마저도 날씨가 나쁘면 낮시간이 더 짧게 느껴집니다.) 하루 중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도장 깨기 하듯 열심히 관광지를 찾아다녔더랬죠.

그렇게 하루하루 낮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까웠는데, 뜬금없이 ‘그곳’에 멈춘 게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하단 말이죠.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자연 절경이 매번 아름답기는 했으나, 차를 길가에 세우고 주변을 구경한 것은 ‘그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저기 경치가 너무 예쁘다! 우리 잠깐 세워서 사진 찍고 가자.”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절경도 아니었는데 다들 홀린 듯 그러자 했습니다. 차를 세워두고 다 같이 셀카를 몇 장 찍었습니다. 그러곤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니 언덕 쪽으로 웬 동굴이 하나 있더라고요. 동굴 입구는 나무 펜스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막아두고 작은 문을 하나 내어두었더군요.

저와 친구 G는 홀린 듯 동굴 입구로 다가가 그 문을 스르르 열어보았습니다. 안을 보는 순간 온몸에 오싹한 기운이 돌았습니다. 살면서 귀신이나 영적인 것에 대해 대단히 의식하지 않았는데, 그 순간만큼은 그 동굴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동굴 안에는 낮고 판판하고 동그란 돌 대여섯 개가 원형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모닥불이라도 두고 주변에 둘러앉을 자리를 만들어 둔 것처럼요. 그리고 천장에서부터 길게 늘어져있는 덩굴 같은 식물들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저와 G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몇 초만에 동굴 문을 닫고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둘 다 서로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으나, 서로의 눈빛으로 우리가 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에서 따로 구경하고 있던 H가 크게 한마디 하더군요.

“여기 유령이 나온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표지판에 적혀있어. 유령 주의라고.”

저와 G는 서둘러 동굴 입구에서 뒷걸음질 쳐 몇 발자국 물러났습니다. 제가 H에게 소리쳤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가 여기 동굴문을 열어봤는데 진짜 소름 끼쳐. 텅 비어있는데도 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무리 중 가장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J가 재빨리 동굴 입구로 다가왔습니다. J는 오자마자 동굴 문 손잡이에 바로 손이 가더군요. 저와 G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더 뒷걸음질 쳐 동굴에서 멀찍이 떨어졌습니다.

J는 동굴 안을 훑어보더니

"야, 진짜 으스스하다. 여기 뭐냐?"

하며 재빨리 문을 닫았습니다. 동굴 안내 표지판을 확인했던 H도 호기심에 동굴 안을 살펴보고는 재빨리 물러났습니다.

그저 동굴이었을 뿐인데, 누구 하나 그 안으로 발을 내디뎌 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들 재빨리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시동을 켜고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야, 소름 끼친다. 우리 셀카들도 다 지우자.”

J가 상기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며 말했습니다. 나머지들도 한 마디씩 보태었습니다.

“아니, 우리 왜 하필 여기서 멈췄지?”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 보니 아주 특별한 것도 없는 풍경이었는데.”

“마치 무언가가 우리를 여기로 이끈 것 같지 않냐?”

다들 무섭고 소름 끼친다며, 거기에서 찍었던 사진들도 지워버리자 일제히 입을 모았더랬습니다.


우연히 차를 세운 곳이 유령 명소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도 허허벌판이 이어지는 길 한가운데에서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하고 기막힌 경험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저희는 즐겁게 여행을 이어갔습니다. 무서운 기분이 사그라들 때쯤, 저는 사진첩 휴지통에서 그때 찍은 사진을 슬그머니 꺼내놓았답니다. 그 일이 소름 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후에 아주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았으니까요. 지금처럼요. 이제야 그 사진을 이렇게 유용하게 쓰게 되네요.

여러분의 안구 보호를 위해 제 얼굴은 모자이크를 했습니다. 저의 뒤편 오른쪽에 보이는 나무울타리가 동굴의 입구였답니다.

동굴 앞에서 셀카.jpg 동굴 입구에서 찍은 셀카

최근까지 저와 친구들에겐 큰 미스터리였던 일이었으나, 오늘 그 베일이 한층 벗겨졌습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사진첩을 뒤져보니 동굴 앞에서 찍은 사진이 3장 정도 되더라고요. 그 사진들을 퍼플렉시티에 넣고 위치를 찾아달라고 했더니, 서너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그 장소를 찾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요. 5년이 넘게 미스터리였던 이 장소의 비밀이, 발전한 AI 기술 덕분에 단 5분 만에 풀리게 되었습니다.


저곳은 슈타인헬리르(Steinahellir)라고 불리는 아이슬란드 남부에 위치한 동굴이더라고요. 아이슬란드 관광 안내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사진자료가 있어 몇 장 가져와 보았습니다.

퍼옴 동굴입구 2_결과.jpg 슈타인헬리르(Steinahellir) 입구

이 사진이 아이슬란드 관광 안내 홈페이지에 있던 슈타인헬리르(Steinahellir) 동굴 입구 사진입니다. 제 사진과 비교해 보시면 입구가 동일하게 생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퍼옴 동굴내부 + 의자_결과.jpg 슈타인헬리르(Steinahellir) 내부

그리고 이 사진이 저와 G가 함께 보고 소름이 돋았다던 동굴 내부의 사진입니다. 제 기억으론 천장에 붙은 식물들이 제법 길게 늘어뜨려져 있어서 더 으스스하게 느껴졌었는데, 이 사진에서는 그다지 치렁치렁하진 않네요. 홈페이지에서 보니 저 식물은 방광고사리(tófugras)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법에 걸린 고사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더라고요. 지역 내에서는 저 고사리를 해치면 불운이 찾아온다고들 말하는 모양입니다.

퍼옴 동굴 표지판_결과.jpg 슈타인헬리르(Steinahellir) 표지판

저희가 봤던 표지판이 이 표지판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제가 당시에 얼핏 표지판을 봤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간결하게 주의 문구만 있었던 것 같거든요. 표지판도 노란색이었던 것 같고요. 하지만 저는 제 기억을 확신하지 않습니다. H가 표지판에 유령에 대한 주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저는 이미 넋이 나가 도망치듯 차로 갔었으니까요. 하하.


슈타인헬리르(Steinahellir) 동굴이 조금 더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홈페이지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조금 더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이곳은 역사, 전설, 미스터리를 고루 갖춘 장소입니다. 이 동굴은 길이 약 20m, 폭 9-10m 높이는 입구 쪽이 6-7m로 꽤 우람합니다. 예전엔 자연 동굴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에 의해 넓혀지고 또 깊게 손질되었어요.

한때 이 동굴은 양들을 가두어 두는 곳, 농기구 보관소, 심지어 배를 만들던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1818년부터 1905년까지는 Eyfellingar 지역 주민들이 이곳에서 모여 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대자연의 영향이 컸던 것이 이곳의 미스터리 스토리를 만드는 데 한몫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근방은 홍수와 낙석 피해가 여러 차례 있었고, 특히 1888년과 1926년에는 Steinalækur 개울이 불어나 농장 다수와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저기서 귀신 이야기, 숨은 사람(hidden people)의 전설, 그리고 동굴 천장에 자라는 끈적한 양치식물(brittle bladder fern)을 건드리면 불운이 따른다 하는 금기까지—전설의 향이 진하게 퍼져 있는 장소입니다.

방문객들은 사진만 남기고 돌아가며, 탐험가 정신은 살리되 자연과 전설을 존중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하는 곳이죠. 섬뜩하면서도 매혹적인 Steinahellir에선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 전설이 뒤섞여 있답니다.


저의 글을 읽고 이 동굴에 대해 '매우' 호기심이 생긴 분이 계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몇 가지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답니다.

Guide To Ic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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