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등교를 해보다
“오전 반과 오후 반이 있어. 어느 반에서 수업을 들을래?”
처음 어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봤을 때, 그리고 월반 테스트를 할 때마다 들었던 질문이다. 나는 어학연수를 하는 1년 내내 오전반을 선택했다. 오전에 게으름을 부리면 하루가 짧다는 게 나만의 이유였다.
‘인생. 길고도 짧다.’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인간의 삶의 길이는 어떤가. 긴가, 짧은가? 만사 과학 원리마냥 그 정도가 적당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1년 전 오늘과 같은 날,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느냐 물으면 어렴풋하지도 않다. 10년 전 오늘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그보다 과거의 기억은 까마득하다. 매미는 일주일을 산다고 한다. 하루를 산다고 해서 하루살이라 불리는 녀석도 있다. 매미에게 어제를 물으면 어렴풋하고, 5일 전을 물으면 까마득하다 할까. 사람의 인지능력이나 기억력이 지금보다 평균적으로 높아진다면 삶에 대한 태도도 많이 변하지 않을까. 몇십년도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을 수 있는 고지능이 된다면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추론도 예시도 엉터리인 궤변이다. 나도 안다. 다만 내가 공상한 것은 ‘삶에 대한 각성, 인지, 기억, 에너지’에 따라 오늘 하루의 밀도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이 길었다. 결론은 나의 어학연수 1년은 긴 시간이었지만, 하루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어학원 오전 수업을 들으러 갔더랬다. 사서 고생이었다.
몰타에는 라임스톤으로 된 집이 많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시멘트 건물이지만, 오래된 집들은 대부분 라임스톤이다. 그리고 유적지 건물들도 모두 라임스톤이다. 몰타섬 자체가 라임스톤(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섬이기 때문에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건축문화이다.
라임스톤의 매력은 빛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맑은 날 눈부신 햇살에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엔 차분한 노란색이 된다. 그렇게 라임스톤의 집들이 가득 모인 마을은 제법 운치 있다. 집집마다 레몬나무를 심기도 하고 풍성한 꽃나무를 기르기도 하면서 이국적인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는다. 일 년 동안 같은 등굣길을 걸었지만, 같은 풍경에 지루한 적이 없었다. 계절마다 저 집의 레몬나무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궁금했고, 섬 전체를 지배하는 귀여운 고양이 조직이 어디에나 진을 치고 있었으니까.
웬 도로의 사진을 뜬금없이 찍어놨나 싶으시겠지만, 공교롭게도 저기는 버스정류장이다. 버스 정류장이라는 표지판 하나 정도는 길가에 꽂혀있다.(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돌담을 벤치 삼아 앉아서 아침 등교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면, 등 뒤로는 오른쪽과 같은 멋진 바다의 풍경이 펼쳐진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같이 유럽 고전 명화에 그려진 몽글몽글한 구름들은 모두 작가의 상상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지중해에 와보니 정말로 구름들이 몽글몽글한 것이 감탄스러웠다. 아름다운 바다의 절경은 수평선과 맞닿은, 그 위로 이어지는 하늘의 풍경이 완성시켜 주는 듯했다.
여유로움은 여기까지. 지옥버스가 도착하면 고난의 등굣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매일 왕복 한시간 반을 버스를 타고 다녔다. 몰타 버스의 승차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원래도 멀미가 심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도 종류가 뭐든 타이어 달린 것은 기피하고 무조건 지하철, 기차만 이용했다. 몰타에 다녀오고 나서는 멀미에 대한 역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해 한국의 대중교통은 가리지 않고 탈 수 있게 됐다. 몰타살이에서 얻은 것 중 가장 현실적으로 가치 있는 성과가 아닌가 싶다.
몰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를 해 버스 안에 꽉 차 있던 승객들이 앞으로 쏟아지듯 넘어진 적이 있었다. 나도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를 덮치고 말았다. 나보다 키는 머리 하나쯤 작았지만 풍채는 좋으셨던 그 아주머니는 이러한 버스의 만행이 익숙하신지 쓰러지는 나까지 받아내며 꼿꼿하게 서 계셨다. 나는 당황스러움과 창피함과 죄송함이 뒤섞여 엉망인 상태로 연신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를 물었다. 아주머니는 사람 좋게 웃으시며 괜찮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몰타 버스가 좀 험하다는 등의 말을 하며 오히려 나를 달래주려 하셨다. 그리고는 빈 좌석이 생기자 나를 앉혀주기까지 하고는 유유히 내리셨었다. 그 후로는 몰타 버스에서 방심하지 않으려 양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탔더랬다. 하지만 버스 운전기사님들은 승객들을 버스에 태우는 건지 놀이기구에 태우는 건지 헷갈리게 하기 일쑤였다.
‘22nd January Cafe’라고 적고 '아침식사 됩니다.'라고 읽는다. 어학원을 가는 주중에는 나의 아침식사를 책임져 준 카페였기 때문이다.
“One Tuna sandwich and Latte, please.(참치 샌드위치랑 카페라떼 한 잔 주세요.)”
나는 아침마다 참치 샌드위치와 카페라떼 한잔을 주문했다.
그 카페의 참치 샌드위치는 …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아직까진 한 번도 비슷한 맛을 맛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몰타 전통 빵인 프티라를 반으로 갈라, 그 안에 참치샐러드를 투박하게 집어넣어 랩으로 둘둘 말아 판매를 한다. 내 주먹 두 개만 한 크기이다. 참치샐러드의 새콤한 소스가 프티라에 스며들어 빵이 반쯤은 눅눅하게 젖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축축해진 빵에 참치샐러드를 반찬으로 먹는 느낌이다. 조금 거친 빵인 프티라가 눅눅하게 씹히는 맛과, 새콤 짭짤한 소스에 버무려진 참치의 조화가 왜 그리 좋았던지. 대단할 것 없는 맛이었는데, 일 년 동안 질리지도 않고 아침마다 열심히 먹었더랬다.
그 카페의 또 다른 매력은 주인장 아저씨의 커피 내리는 솜씨였다. 카페라떼를 주문하면 30초 만에 커피를 주셨다. 무려 30초 만에! 그의 커피 내리는 솜씨는 핸드드립 커피를 우아하게 내리는 바리스타와는 동일선상에 두고 볼 수 없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몸놀림이지만, 카페의 아르바이트생과 비교하자면 유려하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긴 세월에서 갈고 다듬어진 전문가적인 솜씨였다. 뚝딱뚝딱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의 오늘치 활력을 그 일련의 행위를 구경하는 데에서 얻기도 했다. 몰타의 더위에 지친 날, 버스 멀미에 진이 빠진 날, 괜스레 기운이 없는 날. 카페라떼를 주문하는 것이 마치 나에게 마법 주문을 거는 것과도 같았다. 주인아저씨가 카페라떼 만드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괜히 그 에너지에 감화되어 부정적인 에너지가 툴툴 털어지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커피는 덤으로 느껴지기도 했더랬다. 매일 아침 1.7유로면 커피 한잔과 함께 산뜻한 기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카운터에서 주인아저씨가 주문을 받고 있으면, 안쪽 주방에서 그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분이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를 만들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가끔 주인아저씨의 어린 아들과 그의 어머니가 가게 안팎을 오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 작은 카페가 3대를 먹여 살리다니. 아니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이라니.
'내 자식은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면 좋겠어요.'라는 말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마치 관용어구처럼 익숙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장래희망'을 적으며 누구나 '회사원'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무언가가 되기를 꿈꾸고, 또 그 성과를 계급처럼 여기는 듯한 사회가 익숙한 나였다.(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겠지만, 사회의 톱니바퀴로서 열심히던 서른둘의 나는 그랬다.)
대단할 것 없는, 작은 구멍가게 같은 카페. 매일 똑같은 그 단단한 눈빛으로 주문을 받는 주인과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함께하는 그의 가족들. 카페 안의 주인장네를 포함하여 카페 밖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삶도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어쩐지 시간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절반의 속도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때만큼은 나 또한 그 속도에 편승하고 싶었다. 바쁜 아침시간이었지만 잠시라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그들과 함께 여유를 부리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양팔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아주 단편의 모습만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나름의 치열함도 당연히 존재할테다. 당장 길 건너의 펍&카페에 가는 학생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느꼈던,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 다른, 애초에 개념조차 다른듯한 그 삶에 대한 여유로운 태도는 내가 몰타에서 느꼈던 문화충격 중 단연코 1위가 아닐까 싶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학원에 가던 날. 그날도 어김없이 카페에 들렀었다. 오늘이 마지막으로 오는 날이라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었고 무어라 말할까 멘트까지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결국 나의 마지막 인사는 입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내지 못했고, 여느 날처럼 커피만 받아서 카페를 나섰더랬다.
내가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그 자리에 불변으로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이런 어거지 욕심을 슬쩍 부려 보는 것은 나뿐일까. 내 소중한 추억 속 '22nd January Cafe'의 모든 이들이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이번에도 그저 혼자서 조용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