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를 믿으세요?

이건 동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by 이현

산타가 없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내 나이 서너 살쯤이었던 것 같다. 어느 추운 겨울날, 자고 일어났는데 옷걸이에 노란색의 하트모양 에나멜 크로스백이 걸려있었다. 그 가방이 예쁜 줄은 잘 모를 나이였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들뜬 엄마의 목소리에 나도 같이 기분이 상기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곧장 종교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크리스마스는 뭔 놈의 크리스마스냐.'며 타박해 오는 아빠 때문에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었다. 그 때 만해도 나는 크리스마스니 산타니 하는 것이 뭔지도 몰랐었다.

그리고 다섯 살 연말에 유아원에서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었다. 빨간색 상하의에 빨간 모자까지 쓴 산타복장을 한 아저씨가 유아원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이름이 불린 아이는 무대 단상으로 달려가 본인 몫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 들고 돌아왔다. 그 자리에서 선물 포장을 북북 찢는 아이들을 곁눈질로 보았었다. 포장지 안에는 예쁜 인형이며 장난감이 가득이었다. 내 이름은 언제 불리나 애타게 기다리다 지칠 무렵,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산타라는 아저씨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니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선물을 내 것이라며 꺼내어 주었다. 선물 크기부터 너무나도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얼른 내 자리로 돌아와 포장지를 북북 찢어보았다. 선물은 우리나라 지도를 맞추는 퍼즐이었다. 경기도, 강원도 등 각 도별로 퍼즐 조각이 있었고 완성하면 우리나라 전도가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 선물은 우리 엄마가 사다가 유아원에 가져다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날부터 산타는 없다는 걸 분명히 알았던 것 같다.


그 후로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건만, 어쩐 일인지 나는 생일보다 크리스마스를 더 기대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리고 서른둘의 11월에 산타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로바니에미 케미강

몰타에선 유럽의 어느 국가든 비행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나마 핀란드 헬싱키는 먼 축에 속하고, 편도 5~6시간 정도가 걸린다. 한국에서 핀란드 헬싱키까지는 시간도 두 배, 비행기표 값도 두 배다. 굳이 이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핀란드가 너무 정적인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에선 시간과 돈을 쓰는 만큼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많기를 기대하는 게 보통이지 않을까.

수도인 헬싱키도 정적인 편이었지만 로바니에미는 더욱더 조용한 분위기였고, 흡사 우리나라 시골 동네를 연상케 했다. '몰타에 머무르고 있으니 그나마 여기에 왔지, 한국에 있었다면 여기에 오는 것은 나에게 여러모로 사치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나는 핀란드가 좋았다. 당해 연초부터 시작해 온 유럽을 누비고 다니며, 문화도 먹거리도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고 다녔었다. 헬싱키에 도착했을 땐 축제 같던 여행들을 뒤로하고 휴양지에 온 느낌이었으며, 로바니에미로 넘어갔을 땐 흡사 집으로 돌아간 듯 한 고요함을 느꼈다. 블록버스터 영화만 줄곧 보다가 서정적인 일본 영화를 보는 듯했다.

심지어 사진 속 로바니에미 케미강 가를 걸으면서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어떤 소음도 듣지 못했다. 저 시야를 가득 메운 하얗게 쌓인 눈들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켜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이 조용한 동네, 로바니에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산타마을로 가는 버스

동네 어귀의 아주 평범하게 생긴 버스정류장에 있으면 산타를 만나러 갈 수 있는 버스가 온다. 버스를 타고 눈길을 15분 정도 달리면 산타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마치 해리포터의 '9와 3/4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현실 세계에서 차원 이동 버스를 타고 판타지의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환상이 들었다.

산타마을

버스에서 내려 산타의 집이자 사무실에 도착했다. 노란 백열등 조명에 목조로 된 건물이라니. 저곳이야말로 산타 할아버지가 아주 오랫동안 세계의 어린이들을 살피며 선물을 마련한 공간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각국에서 산타에게 보낸 편지

산타 할아버지는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또 시간을 써서 답장을 해준다. 벽에 걸린 액자는 아이들로부터 받은 편지이고, 그 밑에는 아이들에게로 갈 선물들이 잔뜩 쌓여있다.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왜 그렇게 떨렸을까. 마치 오래전 졸업한 학교의 은사를 만나러 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산타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는 길. 설레는 마음에 몇 번이나 멈칫대었던 기억이 난다.

산타할아버지의 방은 크고 천장도 높았다. 방이라기보다는 알현실에 가까웠다.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의자를 두고 산타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얼마나 풍채가 좋으신지 키 190cm는 족히 넘으실 것 같았고, 덩치도 나의 세 배쯤은 되어 보였다. 역시 그 정도는 되어야 기세 좋게 세계 각국을 누비며 루돌프와 선물 배달을 할 수 있나 보다. 나는 엘프의 안내에 따라 산타 할아버지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산타 할아버지는 앉은키도 얼마나 크신지, 나는 앉아서도 한참을 올려다보고 할아버지는 나를 한참을 내려다보셨다.

"허허허. 반갑구나. 그래그래, 어학연수는 잘하고 있니?"

세상에 이 양반 돗자리를 까셨나. 눈치가 백단이시네. 엣헴. 아니지아니지. 역시 산타할아버지야. 산타 할아버지 앞에서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섯 살 어린 아이고, 그 아이들이 어디서 뭐 하는지 다 알고 계시는게지.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줄 수 없다며 그리도 꼼꼼히 살피는 분이시니. 그러고 보니 나는 매년 울 일이 있었어서 그간 선물을 못 받았던 걸까?

"네. 맞아요! 지금 몰타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그렇구나. 너는 한국에서 왔지? 집이 그립진 않니?"

세상에, 이 양반 대단하구먼. 내가 한국에서 온 것까지 눈치채다니. 엣헴 아니지아니지. 역시 산타할아버지야. 모르는 게 없으시지.

"아니에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사실 설렘과 얼떨떨함과 놀라움 등으로 압도되어 그 자리에 얼마나 머물렀었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산타 할아버지와 얼마간의 정다운 대화가 더 이어진 후, 보조 엘프의 안내가 있었다.

"자~ 다 같이 사진 한번 찍을게요."

보조 엘프는 엄청난 대포 카메라를 들어 산타할아버지와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허허허. 건강히 잘 지내렴."

산타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를 뒤로하고 나오는 길, 나는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다시 다섯 살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고 떼를 쓰며 살아왔으나, 직접 그와 조우하고 그를 신봉할 수밖에 없게 된 어린아이.

산타 마을 기념품 샵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오는 길은 자연스레 엘프의 사무실로 이어져 있었다. 엘프의 사무실에는 각종 기념품들도 함께 팔고 있었다. 다섯 살의 신봉자이자 서른둘의 지갑을 가지고 있는 나는 기념품들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계산대로 가자 엘프가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와의 사진도 구매하시겠어요?"

이게 무슨 소리지. 사진정도야 그냥 주는 거 아니었나?

"얼마인데요?"

"85유로입니다. 카드 결제도 가능해요^^"

덕분에 다섯 살의 신봉자는 30분 만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1유로에 한화 1,350원 안팎이었으니, 85유로면 11만 5천 원쯤 되는 금액이었다. 사진 단 몇 장에! 나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산타와의 기념사진은 마음으로만 간직하기로 했다.


산타 마을에 있는 각종 산타 모형들

산타 마을답게 곳곳에 산타 모형들이 다양했다. 실제로 본 산타 할아버지는 첫 번째 사진과 가장 흡사했다. 산타의 사무실 외에도 다양한 기념품 가게들과 레스토랑이 있었다. '산타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하나의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크리스마스 소품가게라면 고개가 홱 돌아가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천국 같은 곳이었다. 열성적으로 기념품 가게의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뒤지기도 하고, 눈 쌓인 마을 어귀를 걸으며 눈사람을 하나 만들어 두기도 했다.

딴청부리는 루돌프

산타 마을에는 당연히 루돌프도 있었다. 루돌프는 당장이라도 선물을 배달하러 가려는 듯 썰매를 매고 기다리고 있었다. 루돌프야 안녕. 아는 척을 해보았지만, 피곤한지 열심히 딴청인 루돌프였다. 달 밝은 하늘을 멋지게 날아 세계를 누비었을 루돌프를 생각하니, 홀대가 그리 밉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산타 마을 안의 레스토랑에서는 순록 스테이크를 팔고 있었다. 하하.(같은 글에 적기는 매우 민망하지만, 순록 고기는 양고기처럼 특유의 냄새가 있더라는 짧은 후기를 전한다.)


지금 내 책상에도 산타 모형이 3개나 있다. 산타를 만나고 온 후로부터 산타의 광팬이 된 것은 아니다. 그 전부터 나는 12월을 크리스마스의 달로 여기며 설레는 연말을 보내온 사람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빼곡한 꼬마전구 장식이 주는 따뜻함, 희망찬 선율의 캐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를 설레게 했던 것 같다.

여전히 연말이면 백열등 가득한 도시 야경과 커다란 트리를 찾아다닌다. 그 사이 나와 같은 기분의 사람들이 가득하다면 더욱더 금상첨화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야 하는 나이와 위치가 되었지만, 여전히 연말과 크리스마스는 나를 설레게 한다. 10월 초인 지금부터 벌써 연말엔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는 필자이다.


여담

로바니에미에는 산타 마을(Santa Village) 말고도 산타 파크(Santa Park)가 있다. 산타 파크에서 만난 한 엘프가 나에게 아주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한국인이지?"

"응. 어떻게 알았어?"

"내가 한국을 좋아해. 예전에 여해ㅇ... 아, 아니 선물 배달하러 여러 번 갔었어! 난 특히 전주를 좋아해."

'아, 전주로 여행을 왔던 모양이군.'

한국을 좋아하는 핀란드인... 아니 엘프인 모양이었다. 그는 나를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춤추게 했으나, 아무렴 어떠랴. 나조차도 어디 두고 왔는지 모를 나의 동심을 지켜주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탄복할 뿐이었다.

"다음에도 한국으로 선물 배달하러 갈게. 또 만나!"

고마워 엘프 친구. 너의 가상한 노력과 직업의식도 매우 고마워. 지금은 내가 이렇게 표현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어.

산타 파크의 엘프 친구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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